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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전의기량 Sep 13. 2021

돈과 명예보다 중요한 것

고집불통 엄마의 어른 연습

회사도 강남, 병원도 강남


어렸을 때부터 돈에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고등학교도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상업고등학교에서도 대학교를 가고 싶으면 그에 맞는 공부를 하면 가능했는데  집안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언감생심 대학교에 가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대학교를 가려고 준비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할 뿐이었고 조용히 취업준비를 한다.

그때 당시. 내가 다니고 있었던 고등학교에서 연계된 회사로 면접을 보러 가는 날이면 난 두 가지 조건을 비교하고는 했다. 첫째,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곳인지 둘째, 연봉은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인지다.  그런데 면접을 보면 볼수록 둘 다 내 맘에 드는 곳은 없었다. 교통이 괜찮다 싶으면 연봉이 별로 였고 연봉이 괜찮다 싶으면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주어진 상황에 나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때 내가 한 선택은 몸은 힘들어도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려했다.  돈에서 자유롭고 싶었기에 집은 인천이었고 회사는 삼성역으로 다니게 되었는데  출퇴근 시간이 편도로 두 시간이 넘긴 했지만 급여는 집 근처에서 보다 거진 배를 넘게 받았다.   한 달에 한 번씩 부서 전체가 청소하는 날  먹는  피자, 강남 유명 식당에서의 회식, 2년에 한 번씩 가는 고객 동반 해외여행 등 마시마로 효과처럼  눈앞에 느꼈던 단맛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증가하였는데 점점 더 빠지게 된다.  살던 동네보다 넓은 동네로 일자리를 구하게 되면 보는 시야도 넓어지게 된다더라 등  달콤한 마시마로는  몸이 힘들지만 점점 더 나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계약직으로 첫 번째 회사를 다니고 2년 후  나는 쉬면서 공부하는 것을 원했지만 일하면서 공부하라는 엄마의 권유에 두 번째 회사를 찾게 되었는데 첫 번째 회사의 연봉금액에  다른 게 들어오지 않아서였을까?

또다시 인천에서 삼성역으로 출퇴근하게 되었다.


7년 후, 나는 회사를 이직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강남을 벗어나지 못했다.   집이 인천이면서 삼성역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4시간을 왔다 갔다 하는 나를 주위에 내 친구들도 대단하다 하면서 힘들지도 않냐고 물어보곤 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돈으로 저축도 많이 하고 했던지라 친구들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시마로는 오랫동안 내 손안에 있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이에 맞는 생각을 해야 하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하며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철없이 마시마로의 단맛에 빠져 있어 돈 말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일하는 거 외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못했다.  28살 첫 번째 유방암 수술도 일을 하기 위해 강남에 있는 병원을 선택했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엄마가 내 집에 와서 같이 사는 동안에도 힘들게 일해서  엄마 월급도  주고 하니 모든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뿐,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소중함,  그 소중함은 엄마가 아이를 더 이상 봐줄 수 없다고 떠나면서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엄마가 뇌경색과 치매로 아프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끼며 알게 되었다.   

작은 것 하나 참고 기다리며 감사할 줄 몰랐던 아이는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느껴보고서야 돈과 명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너무 늦게 안건 아닌지 왜 이제야 알았는지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해 나가는 어느 날 TV 속 드라마에서 어디서 본듯한 상황에  잊고 있었던 기억을 스쳐 지나가게 한다.



내 이혼 서류는 썼어. 당신 것만 써.


광식의 소중함을 잠시 잊고 있었던 오케이 광자매 둘째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가수를 꿈꾸지만 그의 삶 역시 순탄하지 못하다. 가정형편이 좋지 못했고 아들이 둘인 집에 막내아들이나 아버지는 큰아들만 공부시켰다. 형에 밀리고 하고 싶은 공부도 못하니 성인이 되어서도 벌이가 충분하지 못하다.


 이삿짐센터에서 짐꾼을 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못하니 저녁엔 술집에 나가 밴드에서 노래도 부르며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일생을 함께할 광식이도 만나지만 가수의 끈을  이어가는데 끝도 없는 시련이 일어난다. 아버지도 아프시고 병원비 걱정에 가수는 포기했다  하지만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야간 식당일도 마다 하지 않고 일하며 도움을 준 광식 덕분에 가수  입성길에 성공한다.


꿈이 이루어지면 가족과 함께 행복해 질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생각했던 것이라 다르다.  이제 막 성공가도 위를 달리기 시작한 광식 남편 결혼 한지 얼마 안 된 신혼이지만 바쁘기 시작하니 광식은 남편 얼굴도 보기 힘들다.  평생을 함께 행복할 거란 약속도 지킬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꿈도 이루고 가족을 위해 바쁘게 지내는 것을  이해 못해주는 듯 한 광식이 서운한 남편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자신에게 신경 써 주는 1 호팬에게 관심이 간다.  1 호팬이 광식임을 모르는 남편 결국 타툼 끝에 서운함을 가득 안고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나의 경우나 광자 매 둘째 남편 경우를 봤을 때 만약 돈이 풍족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SKY 캐슬이나 펜트하우스의 드라마 속 상류층 사람들만 봐도 가진 돈이 많다고 인생이 평탄해 보이지는 않았다.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 않고 돈이 적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행복은 물질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했다. 행복을 돈이나 물질로 채우는 순간 탐욕의 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하게 된다.  

100세 시대 하루가 다르게 물가는 오르고 돈벌이는 정해져 있어 앞날이 희미해 보인다고 한숨 쉰 적이 있다면 힘들어만 말고  함께 하는 가족과 함께 작은 것 하나부터  감사해보자.


100세 인생을 살아가는데 돈과 명예보다 중요한 건,  타인의 시선보다  인생을 함께 사는 가족과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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