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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Apr 02. 2020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

호러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

대외적으로는, 특히 방송 쪽에서는추리 소설가로 알려졌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고, 사랑하며, 또 사랑하는 장르는 사실 호러(공포)다. 지금까지 써 온 대부분의 작품 역시 호러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호러 소설가, 그것이 내가 소설 쓰기를 그만둘 때까지 들었으면 하는 수식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서운 이야기를 광적으로 좋아했다. 듣는 것도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좋아했다. 무서운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해서 장르 소설가가 된 건지, 장르 소설가가 될 자질이 어릴 적부터 있었던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이야기들이 내 안에 고이고 고여 창작의 샘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좋아하면, 너무 좋아하면 그것이 내 삶의 침범한다고 했던가? 내게는 유독 오싹하고 무서운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시골 마을에 살았는데 그곳엔 저수지가 참 많았다. 그런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는 게 그때 우리들이 제일 좋아하던 놀이였는데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물에 빠져 거의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었다. 친구는 그 후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자신이 다이빙을 해서 물 속에 뛰어들었는데, 옆에서 누군가가가 같이 뛰어들었단다. 저수지 물은 탁해서 누군지 확인할 수가 없었는데 수면으로 가까워지면서 희미하게나마 보였단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눈구멍이 뻥 뚫린 여자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씨익 웃으며 달라붙더란다. 그 여자는 친구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그러게, 저수지에서 왜 혼자 수영하니?


소설가가 된 후 나는 이 이야기를 꼭 한 번 쓰고 싶었다. 그러니까 물귀신이 나오는 이야기 말이다.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밤의 이야기꾼들> 이후 다른 작품을 구상하다가 '그래. 이걸 쓰자!' 싶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당시에 나는 글쓰기 노동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고 있었고 그래서 다음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초조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매일 밤 조금씩 쓸 수밖에.

초등학교 아이들이 물귀신을 만나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이 소설은 <소용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밤의 이야기꾼들>이 정신없이 쓴 장편 데뷔작이라면 <소용돌이>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집중해 쓴 회심의 작품이었다. 쓰는 동안 무척 신나고 재미있기도 했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어 더 쓰고 싶었던 경험은 <소용돌이>가 처음이었다. 

<소용돌이>를 쓰면서 나는 많은 걸 배우고 체득하게 됐다. 플롯의 개념이 무엇인지, 그걸 짜는 것과 짜지 않는 것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파악한 부분이 제일 큰 수확이었다. 


아무튼 이 <소용돌이>에는 실제로 들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더 들어가 있는데 그건 사이코패스 테스트에서 최초로 만점을 받았다는 '엄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분명 재미있는 작업이기는 했지만 <소용돌이>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일단 너무 오래 붙잡고 있어 힘들었고 초고 분량이 너무 많았던 것도 실수 중 하나였다. 이 실수는 나중에 치명적인 독이 되는데......




살다보면 누구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거나 경험하게 된다. 그런 경험이 잦은 사람들은 반드시 다른 이에게 그 이야기를 풀어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야기꾼이 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가가 직접 이야기를 발굴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생명력이 있어 소설가를 찾아온다고 믿는다. 즉, 소설가는 이야기에게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존재고 선택을 받았다면 그걸 풀어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야기, 그 중에서도 무서운 이야기라는 녀석의 선택을 받았다. 누군가는 로맨스의 선택을, 또 누군가는 판타지의 선택을 받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선택 받는 일을 '그 이야기를 하는데 타고 났다'고 해석한다.


장르 소설가라면 여러 장르를 다 쓸 수 있어야 한다. 기술적인 차원에서 말이다. 하지만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장르,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장르를 가지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소용돌이>를 발표하면서 호러 전문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두 작품 연속으로 호러 장편 소설을 썼으니 어쩌면 당연한 말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불리는 게 참 좋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소용돌이>가 세상에 나온 것은 참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쉽지 않은 과정에다가 출간 직전까지 여러 진통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통해 나 역시 많은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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