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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Apr 11. 2020

소설 출간의 허들

보조를 맞춰서 재빨리 휙!

소설, 특히 한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비생산적인 일이다. 그 비생산적인 일에 작가며 편집자, 그리고 출판사까지 뛰어드는 판이니 허들이 높을 수밖에.


지금도 거의 비슷하지만 내가 <소용돌이>를 출간할 때까지만 해도 국내 장르 소설을 취급하는 출판사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유명 출판사 몇 군데서 너그러운 손길을 내밀어 주었는데 그러다 보니 국내 작가의 작품들이 그런 곳들로 몰리게 되고, 또 그러다 보니 출간 순서가 뒤로 밀리는 경우도 허다하게 발생했다.


물론 내가 이영도나 이우혁이었다면 모른 작가들에 앞서 출간을 했겠지만 나는 이제 막 첫 번째 장편소설을 내고 오랜 시간 공백기를 가진 여전히 초보 작가일 뿐이었다.

당시에 나는 <소용돌이>를 끝까지 완성한 상태였다. A4로 300장이 넘는, 그야말로 엄청난 분량의 야심작이었다. 그때는 쓰는 게 너무 즐겁고 재미있어서 정말 마음껏 쓰자고 생각했고 그 결과가 바로 <소용돌이>였다.


문제는 한 권으로 내기에는 너무 두껍고, 두 권으로 나눠 내기에는 작가 인지도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이 애매한 분량의 소설을 받아주는 데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내가 제일 책을 내고 싶었던 출판사는 원고를 보냈지만 오랜 시간 감감무소식이었다. 거기는 바쁘기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그래서 애써 이해를 하자 싶었지만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거의 1년이 지나갔다. 


<소용돌이>는 제목 그대로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 되었다. <밤의 이야기꾼들>의 출간은 비교적 쉬웠기에 나는 한 권의 책을 만드는데 이렇게 높은 허들이 있다는 걸 그때 체감했다. 더 빠르게 뛰어 더 정확한 타이밍에 더 높이 점프를 했어야 했다고 자책하곤 했다.


1년이 다 되 갈 무렵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계약을 하자는 말이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는데 그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출간은 하되, 지금의 분량은 너무 기니까 3분의 1 정도를 줄여서 한 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출판사 입장이었다.

나는 정신이 아득했다. 아니, 이야기의 3분의 1을 덜어내면 어쩌란 말인가? 다시 쓸 수도 없고......


 



나는 고민 끝에 일단 줄여보자고 생각했다. 이것 또한 허들이라고 여기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더 높이! 이제는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눈물의 다이어트가 시작됐다. 

온힘과 정신력을 갈아넣어 쓴 문장과 사건들이 뭉텅뭉텅 날아갔다. 안 돼! 이건 절대 못 빼!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말이야, 라고 한 번쯤은 소리칠 법도 했건만 줄이는 작업은 이상할 정도로 순조로웠다. 나는 단숨에 허들 몇 개를 넘었다.


문장이며 사건을 빼면서 알게 된 것은 내 글의 군더더기였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문장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나무에게도 미안한 일이고. 

300페이지가 넘던 비대한 소설은 얼마 안 가 3분의 1의 군더더기를 드러내고 나름 날씬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다시 읽어 보니 이 편이 훨씬 매끄럽고 긴박감도 있었다. 그제야 나는 출판사의 깊은 뜻을 이해하며 파주 쪽으로 깊게 허리를 숙였다.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아까도 말했다시피 소설 한 권을 출간하는 데는 수많은 허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 제일 높은 허들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나 애정이 너무 과하다 보면 내 역량과 허들 높이 사이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분명 넘을 수 있을 것 같아 점프를 했는데 딱 급소에 걸렸을 때의 그 고통과 민망함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을 모르리라.


우선은 자신이라는 허들부터 넘자. 글쓰기 싫어하는 허들, 수정하기 싫어하는 허들, 자신감이 너무 없는 허들 같은 것들을 차례차례 넘다 보면 허들의 높이가 조금씩 낮아지는 걸 경험하게 된다. 아니, 허들의 높이보다는 내 점프력이 상승하는 것이라 말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지.


아! 그리고 이 허들을 넘는 일에는 아주 좋은 도우미가 있다. 바로 출판사 편집자다. 나는 후배 작가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편집자와 좋은 사이를 유지하라고.


사실 이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

나는 내 글을 맡긴 그 순간만큼은 편집자가 신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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