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남추녀 Apr 14. 2020

편집자는 신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

아멘

글쓰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물론, 내가 그냥 생각한 원칙이니 공식력은 없지만 아무튼 10년 넘게 소설을 써오며 깨달은 것이 바로 이 두 가지다.


첫째, 소설을 쓸 때에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믿어야 한다.

둘째, 소설을 완성한 후에는 '나'를 절대 믿지 말아야 한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수많은 참견쟁이들이 달라붙는다. 원고를 한 번 보여주면 적절한 조언을 해줄 것처럼 구는 사람도 많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제 막 소설을 쓰기 시작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적절한 조언은 고기를 사주는 것 외에는 없다. 캐릭터가 부실해, 사건이 기발하지 않아, 플롯이 엉성한데 따위의 조언들은 귀담아 들을 필요조차 없다. 거듭 그런 소리를 해대는 작자가 있다면 인연을 끊는 편이 작가 생활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소설, 특히 기나긴 장편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신감이다. 또한 용기 한 스푼. 내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꺼이 그렇게 하리라는 용기가 만났을 때 우리는 장편소설을 완성할 수 있다. 적어도 이 과정 속에서는 타인의 조언을 들을 필요가 없다. 그런 것들에 휘둘렸다가는 자칫 완주의 꿈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축구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구경꾼이나 응원단이 아니라 바로 축구 선수 자신이니까.


자, 이렇게 뚝심을 가지고 소설을 완성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 들고 여기저기 보여줄 수도 있을 거고, 거듭 읽으며 수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마지막 마침표를 찍자마자 편집자에게 보낸다. 그러고는 아예 잊어버린다.(아니, 잊으려 노력한다) 

나는 내 작품의 첫 독자는 사랑하는 배우자나 가족, 혹은 친구도 아니고 다름아닌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적인 감정을 배제한 상태로 내 글을 꼼꼼하고 공정하게 판단해 줄 사람은 편집자밖에 없다.

그들은 이 일을 하러 태어난 사람들이고 내가 쓴 글을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이다. 아니라고? 가족이나 친구가 훨씬 큰 애정을 보일 거라고? 그게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읽은 지 사흘 정도 지나면 내 소설의 제목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편집자는 기꺼이 야근을 하며 내 작품을 바로잡아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방뱧으로 나아갈지 궁리하고 또 궁리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보내온 '수정 의견'이 작가의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빨간 줄이 많이 그어져 오면 괜히 자존심도 상하고 그럴 수도 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내 작품 속 허점을 지적할 때면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이럴 때 나는 기꺼이 두 번째 깨달음을 상고한다.

소설을 완성한 후에는 '나'를 절대 믿지 말 것!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아마 다음 생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고 내가 땀흘려 낳은 자식에 대해 누군가 비판을 했을 때 욱하는 감정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프로라면, 이 일을 통해서 돈을 벌고 싶다면 출판계의 유일신인 편집자를 믿어야 한다.




각자 전문 분야는 따로 있기 마련이고 소설가가 쓰는 쪽 전문이라면 수정하고, 조금 더 좋게 만들고, 결국엔 작품 전체에 마지막 숨결을 불어넣는 건 편집자의 영역이다.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글을 읽어왔으며 그것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나는 편집자의 감상 외에 독자들의 감상은 찾아보지 않는데 그것은 편집자가 재미있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난 셈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가라사되, 이 문장을 빼면 어떨까요?

하면 그냥 군말 없이 빼면 된다. 그들은 잉크값 조금 더 아끼려고 그럴 빼라는 게 아니다.

편집자 가라사되, 이 사건에서 이 캐릭터의 이런 대사는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하면 사건이 잘못되었거나 캐릭터가 잘못되었거나 대사 쓰는 내 솜씨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편집자 가라사되, 후반부의 이 사건은 비약이 너무 심한 듯합니다.

하면 그 사건을 드러내거나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맞추면 된다. 편집자가 우리를 골탕먹이려고 밤을 새가며 그런 지적을 하는 게 아니니까.......


우리나라는 유독 편집자의 역할이 제한적인데, 나는 장르 소설에서 만큼은 편집자 영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져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도 한 해에 한 편 꼴로 소설을 써내는 '진짜로' 무서운 스티븐 킹 옹도 아직 작품에 대해 편집자와 의논을 한다.

내 결점과 약점, 그리고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며 그것을 작품에 어떤 식으로 반영하면 될지 늘 궁리하는 인물. 그런 인물이야말로 우리는 신뢰할 필요가 있다. 아니, 신뢰를 넘어 믿고 의지해야 한다.


나는 지금도 다음과 같이 생각하며 소설을 쓴다.


태초에 편집자가 있었으니 고치라 하니라.

그러니 소설가 전건우가 군말 없이 고치더니 곧 흡족해 하더라.


편집자를 믿어야 한다.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 이 험난한 창작의 세상에서 편집자는 가장 든든한 동앗줄이 되어 준다. 


이 세상 모든 편집자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출간의 허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