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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차 호러 소설가의 기쁨과 슬픔

나는 변태가 아니다

by 전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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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선잠>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2008년에는 새로운 세기의 흥분과 기대감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었고 그 덕에 사람들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들 새로운 걸 보고 싶어 했다는 뜻이다. 일본 장르 소설이 그야말로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오던 때도 비슷한 시기 즈음이었다. 영미권과 일본의 수준 높은 미스터리 계열 작품이 독자의 눈높이를 한껏 올려준 그 시절, 한국 호러를 보여 주려는 야심 찬 작가들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 호러라고 하면 <전설의 고향>이나 초등학생을 겨냥한 ‘오싹오싹 괴담’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전설의 고향>을 좋아했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괴담집을 사서 두근대며 읽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호러는 한국 독자에게 꽤 친숙한 장르였다. 그걸 단순히 괴담이 아니라 하나의 소설, 달리 말해 문학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매드클럽’이라는 작가 집단이 만들어지면서 하게 된 것이었다.

단편소설 선잠은 당연히 호러 장르였고 이것이 <한국공포문학단편선 3>에 수록되면서 나도 소설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스티븐 킹은 되지 못하더라도 한국을 대표하는 호러 소설을 써내며 단숨에 이름을 알릴 수 있겠다는, (정신 나간) 희망을 품었다.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호러 장르가 문학의 반열에 오르기까진 했지만 지속성이 문제였다. 소설가는 많았어도 꾸준히 장편을 발표할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내 주위 작가들 절반은 다른 업에 종사 중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전업이라 쓰고 ‘백수’라 읽는 처지였다. 당장 벌어먹고 살기가 힘든 마당에 소설 쓰기에 전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어땠느냐고?

이걸 말하기 전에 시간을 뒤로 돌려 대학생 시절 이야기를 좀 하겠다. 나는 무려 ‘한국해양대학교’ ‘해운경영학과’를 나왔다. 중요한 건 전공이 소설 쓰기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점이었다. 다만 그래도 대학 생활은 무척 즐거웠다. 내가 지금껏 망하거나 죽지 않고 돈 벌이를 하며 살아오는 건 그때 배운 경영학 수업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수업 중에 모의 주식 투자를 하는 과목이 있었다. 조별로 모의 주식 투자를 한 뒤 수익률이 제일 높은 조에 점수를 주는 방식이었는데, 난 그때를 기점으로 주식 투자는 절대 하면 안 되겠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선택한 종목은 어김없이 곤두박질쳤다. 교수님은 내 선택에 문제가 있다고 하셨다. 미래를 보지 않고 감정에 휩쓸려 당장 지금만 본다고.

자, 이렇게 밑밥을 깔았으니 대충 감을 잡았으리라.

나는 호러의 열풍이 한풀 꺾이다 못해 혹한기로 접어들 딱 그때쯤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역시…… 내 선택은 꽝이었다. 호러는 주류가 되지 못했다. 언제나 그랬다. 단 한 번도 주류의 대열에 합류해 당당히 그 이름을 날리지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아주 단순했다. 그건 바로 이 나라의 현실이 훨씬 더 무섭기 때문이다. 내 삶이 퍽퍽하고 섬뜩하고 아슬아슬한데 굳이 호러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라는 근원적인 의문을 독자는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덜컥 직장부터 그만뒀으니…….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왜 다른 장르에 도전하지 않았느냐고. 물론 나도 해봤다. 그러면서 내게 맞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SF를 쓰기도 했지만 과학적 지식이 정밀하게 들어가고 훨씬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써야 하는 그 장르는 낯설기만 했다. 추리, 그중에서도 본격 추리는 트릭을 짜는 데 재미를 붙어야 하는데 난 그게 영 어색했다. 그나마 스릴러는 쓰는 게 재미있었다. 로맨스는…… 할 말이 없다.

어쨌든 난 첫 장편소설을 쓰면서 돈벌이를 위해 대필작가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니까, ‘고스트라이터’ 말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든 “아!” 하고 알만한 전문가의 에세이를 대필하기도 했고, 역사물을 대필하기도 했다. 대필은 보통 한두 달 안에 마감해야 한다. 그래야 정해 둔 돈을 받을 수 있다. 밤잠 설쳐가며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지금도 빨리 쓰고 있다.

되짚어 보면 소설, 특히 호러 소설 쓰는 걸 그야말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 시절을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 소설을 쓰지 않아야 할 이유는 수백 가지가 넘었다. 반대로 써야 하는 이유는 거의 없었다. 그때는 내 팬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작품이 다수에게 읽힌 적도 없기에 당시의 나는 상당히 외로웠다.


외롭게 소설을 쓰는 것보다 더 스트레스가 됐던 건, 왜 하필이면 호러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이었다.

소설 쓰는 거 좋아, 장르 소설도 괜찮지, 근데 왜 하필이면 호러야? 그런 거 아무도 안 좋아해!

내가 호러 소설을 쓴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한 마디씩 비슷한 질문과 조언을 건넸다. 진심으로 걱정 어린 표정이었기에 나는 거기 대놓고 화도 내지 못했다.

“호러가 제 운명인걸요. Horror is my Life!”

라고 외치며 여유롭게 ‘후후’ 웃어 줬으면 좋았으련만 내는 애먼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나는 호러라는 장르가 왜 재미있는지 그걸 설명하는 게 어려웠다. 사실 그건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호러는 감성의 영역이고, 자기가 그 재미를 체험하기 전에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장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어디서나 들려줄 수 있을 만한 괴담 몇 개를 항상 준비하고 다녔다. 그래서 도대체 왜 호러를, 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괴담을 들려주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이 중 태반은 무서워했고 흥미로워했다. 그러면 다음 이야기를 하기가 쉬워진다. 거봐요. 그런 재미를 주기 위해서 호러 소설를 쓰는 거라니까요!

그렇게 해서 거의 1년을 고생한 끝에 <밤의 이야기꾼들>이라는 첫 장편을 발표했다. 책을 받아보고 솔직히 조금 울었다. 내 책인데, 너무나 낯설었다. 한편으로는 또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 안에 담은 이야기는 끔찍한 것들이었지만 어쨌든 내 새끼니 사랑스러울 수밖에. 그때도 나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밤의 이야기꾼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나는 단숨에 인기 작가로 발돋움하고…….

아, 부질없는 상상이여!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삶에서는 내가 주인공일지 몰라도 출판 시장의 주인공들은 따로 있었다.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는 신중하게 가려봐야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쨌든 주인공은 호러 장르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

그럼에도 비관적인 미래만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었다.

이 땅에도 호러에 목말라하던 소수의 독자가 있었고, 그들이 내 책에 반응해줬으며 그건 간신히 다음 작품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내가 ‘팬’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도 그때쯤이었다. 나는 모종의 이유로 내 이름이나 작품 제목으로 검색하지 않는다. 즉, 서평 자체를 읽지 않는 것이다. 독자의 반응은 출판사가 내 책을 계속 내어주느냐 마느냐로 어렴풋이 파악한다. 계속 내준다는 건 아직은 독자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뜻. 그렇기에 나는 내 소설을 읽는 독자, 나아가 팬에게 한없이 큰 감사를 품게 되었다. <밤의 이야기꾼들>을 발표한 후 내가 세운 목표는 이거였다. 다작 작가가 되겠다는 거. 독자가 내 책을 원할 때 매번 신간이 나와서 매대나 책꽂이에 꽂혀 있길 나는 바랐다. 지금까지는 잘해 오고 있는 듯하다.

17년을 같은 일에 종사하면 이제 좀 요령도 생기고 눈치도 빨라질 법한데,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품을 쓴다. 우직하게.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하게. 그래서일까? 한 권씩 장편을 낼 때마다 마음속 짐을 덜어낸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릿속. 누구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은퇴 전까지 50권 이상의 장편소설을 발표하겠노라고 장담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 오늘도 쓴다. 내일도 쓸 것이고, 모레도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매일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매일 누군가를 무섭게 만들고 오들오들 떨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기쁘다.

변태 아니냐고?

안심하라. 적어도 내 작품을 읽는 동안에는 ‘내일 출근’이나 ‘다음 달 카드값’ 같은 현실의 공포를 잠시 잊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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