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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r 09. 2020

[영화 리뷰] - <젠틀맨>

무릇 이야기는 포장하기 나름

  모두들 살면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한 번쯤은 보지 않았을까 한다. 세상 재미있는 얘기를 재미없게 하는 사람, 반대로 재미없는 얘기도 세상 재미있게 풀어내는 사람. 어떻게 어떤 부분을 강조하여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색깔이 달라지곤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그 부분을 잘 살려내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영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이야기라도 어떻게 연출하고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그 재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젠틀맨>은 그런 점에서 그 '어떻게'를 아주 잘 풀어낸 영화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 포장하는 방식이 과하게 화려해 이야기 자체보다 눈에 들어오지만 그 포장 덕분에 신나는 한바탕 해프닝이 완성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들만의 잔인한 전쟁을 다룬 범죄 영화는 이미 수도 없이 봐왔다. <젠틀맨>은 그 세계의 냉혹함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가진 영화지만 이야기 자체가 주는 깊이감이나 고찰이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젠틀맨>이 확고한 색깔을 가지는 이유는 이 이야기를 아주 영리하게 재구성하고 재구성한 내용을 시각적으로도 화려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이 리치 감독의 장점이고 <젠틀맨>은 <알라딘> 등, 대규모 프랜차이즈에서는 가려질 수밖에 없었던, 감독의 고유한 색깔이다.

  영화의 대부분을 플레처[휴 그랜트 분]와 레이먼드[찰리 허냄 분]가 이야기를 하듯 풀어내는 방식이 그러한 색깔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순서를 단순히 시간 순서가 아닌 논리적인 흐름에 따라 재구성을 하고 그러한 논리를 내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데 종종 사용되는 슬로우 모션이나 동일한 컷의 반복, 혹은 어떤 사건의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되감는 효과를 보여주는 등 시각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어떤 장면은 불필요한 장면임에도 들어가곤 한다. 드라이 아이[헨리 골딩 분]와 믹키 피어슨[매튜 매커너히 분]의 첫 대면 장면에서 영화는 폭력적으로 즉각 대응하는 믹키 피어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건 사실과 다르다'라는 레이먼드의 말과 함께 플레처 역시 '이야기에는 역시 자극적인 게 들어가야 한다'라며 동의하고 다시 실제 일어났던 사건으로 돌아간다. 논리적으로 따졌을 때 폭력적인 믹키의 모습은 영화 안에서 전혀 필요가 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를 영화 안의 인물들의 입으로 인정하고 다시 시간을 역행해(이를 시각적으로도 되감기 효과를 통해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플레처의 말마따나 이야기의 자극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사용을 잘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리적인 지적 역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들의 입장을 통해 충분히 변호하고 있다. <젠틀맨>은 이러한 디테일한 부분까지 재구성 및 시각화 작업을 해 놓은 작품이다.

  이것이 <젠틀맨>의 재미이다. 필요가 없고 반복적인 부분이 많을지라도 이를 통해 시간 순으로 배열했을 때보다 보다 풍부하고 확실한 색깔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복잡하게 오가는 플롯, 여러 인물들의 상관관계 등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연상되는데, <젠틀맨>은 그 복잡한 포장으로 알맹이(이야기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그 포장에 보다 집중하면서 영상으로서 보는 재미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알맹이가 약하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치더라도 그 알맹이 역시 기본 이상은 하고 있는 작품이며 오히려 화려한 포장도 영화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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