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준 친정엄마의 집밥

엄마와 나눈 소박한 점심과 따뜻한 마음

by 행복수집가

나는 친정이 가까워서 한 번씩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긴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생각보다 자주 가진 못한다.


그런데 이번엔 문득, 그냥 나 혼자 친정에 가서 점심 한 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생각이 든 날, 바로 저녁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내일 점심에 집에 가서 밥 먹어도 돼?"

"응 오면 되지. 뭐 먹고 싶어?"

"나, 탕국."

"알겠어 탕국 해놓을게. 다른 거는? 족발 사놓을까?"

"아니, 난 탕국만 있으면 돼~"

"알겠어~ 내일 회사는?"

"회사는 가지~"

"그래, 내일 점심에 와~"


평일에 점심 먹으러 친정에 간다고 한 적이 처음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내 연락에도 엄마는 이유도 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 말을 받아주고 오라고 하셨다. 순간, '맞아. 엄마는 나에게 항상 열려있는 존재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참 편안했다.


다음날, 엄마 밥 얻어먹으러 가는 길에 빈손으로 가긴 좀 그래서, 마트에서 키위랑 떡 하나를 샀다. 친정집은 내가 오래 살았던 익숙한 곳인데 이날은 가는 길이 평소와 다르게 조금 설렜다. 결혼하고 나서 점심에, 그것도 혼자 그냥 밥 먹으러 가는 게 처음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왔냐고 인사를 하고 빨래만 널고 올 테니 조금 기다리라고 하셨다.


엄마가 빨래를 너는 동안, 나는 부엌에서 자연스럽게 식사를 챙겼다. 엄마가 1인분씩 나누어 용기에 담아 놓은 잡곡밥을 레인지에 데우고, 엄마가 미리 뜨근하게 끓여놓은 탕국을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수저를 놓고 있으니 엄마가 빨래를 다 널고 부엌으로 오셨다.


엄마는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몇 개 꺼냈다.

멸치볶음, 진미채, 열무김치 등.


소박하고 평범한 반찬들인데 특별한 한상처럼 느껴졌다. 잡곡밥과 탕국, 소박하고 정갈한 반찬들을 보는데 너무 좋았다. '내가 이런 집밥을 참 먹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의 탕국 한 숟갈을 먹는데, "이게 몸보신하는 거지" 란 말이 절로 나왔다. 온몸에 기운이 퍼지는 것 같았다. 요즘 왠지 몸에 기운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 엄마 밥이 참 먹고 싶었던 것 같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다가도, 문득 엄마 밥이 그리울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운이 조금 없을 때다. 신기하게도 내 몸에 기운이 없다는 건 내 정신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것 같다.

그리고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너에겐 지금 엄마 밥이 필요해!' 하고 말이다.




이 날 점심은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밥 한 숟갈, 국물 한 숟갈에서 내가 그리워했던 엄마의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한입 한입 먹을 때마다 온몸에 기운이 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서 엄마랑 쉬지 않고 계속 대화했다.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으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둘이 밥 먹으면서 얘기해 본 게 얼마만이지?' 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까마득했다. 엄마랑 단 둘이 밥을 먹은 게 참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이 순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엄마랑 나누는 대화도, 엄마 밥만큼이나 맛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대화가 즐겁게 이어졌다.


우리 가족들 이야기도 하고, 우리 삼 남매 학창 시절 이야기도 하고, 사랑스러운 내 딸이자, 엄마의 이쁜 손녀 수지 이야기도 하면서 여러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여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엄마 아빠가 우리 남매를 키우면서 가졌던 가치관이나 태도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는 우리 남매를 키우면서 단 한 번도 성적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고, 압박도 전혀 없었다. 성적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강압적으로 시키거나 혼을 낸 적이 없었다. 엄마 아빠는 부모로서 해야 할 기본 역할을 묵묵히 하시면서, 우리 남매의 삶에는 특별히 간섭하지 않고 늘 자유롭게 지켜봐 주셨다.


나는 학창 시절동안 부모님의 간섭으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 어떻게 보면 무관심했나 싶을 수도 있지만, 결코 무관심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우릴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냥 느껴졌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챙겨주셨다. 학교 준비물, 학비, 급식비, 교재비, 참고서 등 학교 생활에 필요한 것은 빠짐없이 다 챙겨주셨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부터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용돈도 꼬박꼬박 주셔서 군것질도 할 수 있었고, 내가 사고 싶은 것도 소소하게 살 수 있었다. 한 번도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밖에서 친구 만나고 온다고 해도 몇 시에 올 거냐고 묻지도 않으셨고, 몇 시까지 들어오라고 하신 적도 없다.

우리는 친구를 만나도 알아서 늦지 않게 들어왔고, 공부도 알아서 스스로 했다.


내 역량만큼, 하고 싶은 만큼 그렇게 했다. 성적을 못 받은 날에는 공부가 좀 부족했다고 생각해서 좀 더 노력했고, 성적이 잘 나온 날에는 부모님께 자랑도 했던 것 같다.


이렇다 보니 부모님 앞에 숨길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었다. 그냥 자유로웠다. 부모님은 우리 남매의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셨고, 우리가 하는 그대로 그저 지켜봐 주셨다.


이렇게 믿고 지켜봐 주신 덕분에 우리 남매가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이 넉넉한 형편은 결코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부족하게 자란 것 같지도 않다. 부모님은 항상 최선을 다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해주셨다.


이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우리 남매는 각자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고, 하고 싶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지금도 각자의 성향과 모습에 맞게 잘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 수 있게 된 건 간섭대신 우리에게 자유와 믿음을 주신 부모님 덕분이다. 그저 감사하다.


이런 대화를 엄마와 하게 되면서, 엄마에게 넌지시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 시절을 지나고 보니 고마운 것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엄마와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엄마랑 한참 대화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벌써 회사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더 할 이야기가 많았지만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에 다시 채우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내가 시내버스를 타고 회사로 갈 거라고 하자, 엄마는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어디쯤 왔는지, 언제 나가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사실 내가 확인해도 되는데, 엄마가 챙겨주니 그 챙김 받는 게 좋아서 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내가 탈 버스를 알려주는 엄마를 보니, 꼭 학창 시절의 어린 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이 왠지 좋았다.


친정에 있었던 잠깐의 시간으로 몸과 마음에 기운을 잘 회복했다. 회복된 정도가 아니라 충만하게 충전했다.


나도 한 아이의 엄마지만, 내 엄마 앞에서는 나도 아이가 된다. 엄마 앞에서는 굳이 어른스럽지 않아도, 그저 아이 같은 모습으로 있어도 거리낌 없이 편하다. 내가 어른스럽지 않아도, 연약한 아이 같은 모습으로 있어도 엄마는 넉넉한 품으로 나를 감싸줄 마음의 자리가 항상 있는 것 같다.


버스를 타고 회사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버스 잘 탔다고 문자를 보냈다. 엄마는 다음에 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오라고 했다. 그 짧은 한마디에 담긴 엄마의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을 오래도록 느꼈다.


몸이 지치거나 마음이 허기질 때, 내가 집에 간다고 하면 이유도 묻지 않고 사랑과 정성이 담긴 소박한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려주는 엄마를 생각하면 그저 힘이 난다. 엄마가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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