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은 '제2의 제주'라고 불린다. 제2의 제주란 문화적으로 제주와 유사한 양상으로 변화한다는, 그리고 제주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제주를 모델로 삼는다면, 제주와의 비교가 불가피하다. 제주의 성공 요인은 크게 접근성, 거점 도시, 그리고 마을 단위 관광으로 볼 수 있다.
접근성 면에서 남해는 아직 부족하다. 서울에서 남해읍에 오는 데 5시간 걸린다. 사천과 여수에 공항이 있긴 하지만, 남해 자체에도 공항이나 거점 철도역이 필요해 보인다. 심리적으로 남해는 5시간, 제주는 1시간 거리로 느껴진다.
거점 도시 측면에서 남해읍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 제주에는 제주시, 서귀포시, 한림읍, 조천읍 등 규모 있는 도시들이 있지만, 남해에는 그만한 존재감을 가진 도시가 없다. 남해읍이 그 역할을 해야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남해읍을 거치지 않고 아난티, 다랭이마을, 독일마을 같은 관광지로 직접 간다.
마을 단위 관광에서도 제주와 비교된다. 제주에서는 세화리, 종달리, 사계리 등 리 단위 여행이 인기다. 남해군에도 상주면 상주리, 상주면 양아리, 삼동면 지족리 등이 있지만, 더 많은 마을이 2박 3일 체류가 가능한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과제다.
남해군은 '1+3 체제'라고 한다. 남해읍이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상주면, 미조면, 삼동면이 면 단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지역들이다.
남해읍이 더 큰 구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업 중심지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남해를 대표하는 상권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한다. 현재 남해읍의 중심 상권은 북변리다. 북변리를 관광객을 남해읍으로 유인하는 거점 상권으로 육성할 것을 제안한다.
북변리는 조선시대 행정 중심지에서 만날 수 있는 전통도시 특유의 단아함을 간직하고 있다. 질서 정연하고 차분하며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군청과 경남도립남해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에는 전통 노포와 청년 상점이 공존하고 있다.
골목길과 구축 건물이 풍부한 건축환경도 골목상권 조성에 적합하다. 독립서점 '흙기와' 등 이미 골목상권 콘텐츠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 청년 창업자는 북변비에 상가 건물이 부족함을 토로한다. 건물주들이 재개발을 기대하는지 상가 임대를 꺼린다고 한다.
상주면 상주리는 은빛모래비치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상주리의 전성시대는 1970-80년대 바캉스 시대였다.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되면서 바캉스 인파가 남해로 몰려왔다. 1990년대 초 바캉스 문화가 변화하면서 상주리는 쇠락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귀촌인의 유입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상주초등학교와 상주중학교가 대안학교로 인가를 받으면서,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들이 모여 교육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교육공동체는 동고동락협동조합을 중심으로 경제공동체로 확장되고 있다. 현재 마을에서는 남해 특산물인 시금치를 상품화하려고 한다.
상주리는 전국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공동체 마을의 하나다. 교육공동체와 더불어 생태, 기후, 퍼마컬처, 인권, 젠더, 동물권, 돌봄 등 대안적 아젠다를 실천하는 전환마을을 지향한다.
삼동면 지족리는 또 다른 매력적인 지역이다. 지족해협을 사이에 두고 창선도와 본섬이 나뉘며, 남쪽 삼동면 지족리에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지족구거리' 또는 '지족거리'라고 불리는 메인 도로와 그 사잇길에는 독립서점, 베이커리, 디자인숍, 샤퀴테리, 이탈리안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가 모여 있다. 이들 중 '아마도책방', '기록의밭', '팥파이스', '트리퍼라운지' 등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로컬 브랜드다.
지족항이 멸치 수산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멸치쌈밥이 유명하다. 특히 '죽방렴멸치'가 유명한데, 죽방렴은 남해의 전통 멸치잡이 기법이다. 다랭이농법, 죽방렴 등 남해에는 전통 농업과 어업 기술이 잘 보존되어 있어, 로컬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남해의 로컬숍들은 라이프스타일형 로컬 비즈니스의 특징을 보인다. 정부 지원이나 상권개발에는 큰 관심이 없고, 자연과 가까운 장소에서 좀 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대표적인 예로 팜프라를 들 수 있다. 팜프라는 현재 스테이와 목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라운지에서 다양한 굿즈를 판매한다. 새로운 농촌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하면서 도시 청년의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팜프라는 단행본 수준의 책이 나올 정도로 로컬 비즈니스의 중요한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또 다른 예로는 돌창고가 있다. 지역 문화기획으로 시작한 복합문화공간인 돌창고는 업계에서 유명한 로컬 스폿이다. 특히 남해 로컬푸드 프로젝트가 돋보인다. 수산물, 농산물 등 남해의 주요 식자재를 활용한 메뉴와 제품을 개발하는 사업으로, 카페에서는 남해 식자재를 활용한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돌창고는 필자가 지금까지 접한 로컬푸드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음식과 디자인을 선보이는 곳 중의 하나다.
이처럼 남해의 로컬숍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역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있다. 팜프라가 농촌 라이프스타일을, 돌창고가 로컬푸드를 재해석하듯이, 다른 로컬숍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남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개성 있는 시도들이 모여 남해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남해군은 '제2의 제주'가 되기 위한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접근성 개선, 거점 도시 육성, 마을 단위 관광 인프라 확충이라는 과제가 있지만, 이미 곳곳에서 시작된 변화의 움직임들이 희망적이다. 특히 로컬숍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문화는 남해군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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