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을 팔 것인가, 라이프스타일을 팔 것인가?
"요즘 누가 책을 읽나?"
"스마트폰에 다 나오잖아?"
"이제 책의 시대는 갔어."
많이 들리는 이야기다. 지하철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없더라는 말도 이제 너무 자주 들어 질릴 정도다. 실제로 전국의 많은 서점들이 하루가 멀다 하며 문을 닫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모 서점도 기업 이미지 때문에 유지하는 거지 실제 수익성은 별로 좋지 못 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출판사, 서점 등 책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이들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상태에서 거꾸로 올라가려 애를 쓰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웃 일본엔 이런 출판의 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신기한 서점이 있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2011년 도쿄에 처음 문을 연 이 서점은 5년만에 일본 전역에 1,500여 개 매장을 내고 5,000만 명 가까운 회원을 모집하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이요. 저희는 책을 파는 게 아니고 라이프스타일을 팔거든요."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을 운영하는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Culture Convenience Club, CCC) 마스다 무네아키 대표는 자신들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밝혔다.
3.1.1
마스다 무네아키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 대표
츠타야 서점은 기존 서점과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선보였다. 기존 서점이 잡지, 단행본, 문고본 등 유통업자 입장에서 편리하게 기계적으로 책을 진열해 판매했다면, 이 서점은 고객 입장에서 테마별로 모든 상품을 재분류해 제공한다. 예를 들어, 여행이라는 테마를 하나 선정하면 그와 관련된 모든 서적과 CD, DVD를 한자리에 모으고 거기에 덧붙여서 가전제품이나 기타 관련된 여러 상품까지 한꺼번에 제공해 원스톱으로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요리, 디자인 등 다른 테마도 마찬가지다. 즉, 츠타야 서점은 고객이 관심 있는 테마와 관련된 라이프스타일 일체를 한꺼번에 해결해줄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사업의 본질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서점과는 업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다른 것이다.
가전기업 파나소닉도 츠타야 서점과 비슷한 변신을 보여준다. 파나소닉 센터 오사카를 가보면 '숲 속처럼', '친환경', '1인 가정', '신혼을 위해' 등 테마별로 공간이 나눠져 있고, 각 분위기에 맞는 가전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TV는 TV끼리, 냉장고는 냉장고끼리, 세탁기는 세탁기끼리 모아두고 제품을 팔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취향별 테마별로 공간을 꾸미는 라이프스타일 판매로 업의 본질을 옮긴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적 접근은 소비재 기업에서만 가능한 건 아니다. 반도체 기업 인텔은 CPU라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제품을 판매하지만,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로고를 개발해 부착하며 이를 고객의 자부심으로 승화시켰다. CPU가 인텔인지 아닌지에 따라 고객이 느끼는 만족감과 뿌듯함이 달라지게 만든 것이다. 인텔이 선도적으로 보였던 이러한 시도는 후에 스타벅스와 애플 등으로 이어진다.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걸으며 느끼는 뿌듯함, 애플 로고가 새겨진 노트북을 펼치고 카페에 앉아 일할 때 생기는 묘한 자부심 등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브랜드파워가 절묘하게 연결된 사례로 볼 수 있다.
2008년 가전사업 부실로 8,000억 엔의 적자를 내며 위기에 빠졌던 히타치도, 자신들의 사업을 중공업이 아니라 사회 혁신 비즈니스(Social Innovation Business)로 재정의하며 반등했다. 도시, 항만, 철도 등 사회 인프라 건설을 통해 에너지, 환경, 수자원, 안보와 관련된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겠다는, 그래서 더 나아가 인류가 원하는 삶의 방식 실현에 앞장서겠다는 미션을 세우고 나니, 같은 사업을 하면서도 그 성과와 영향력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업의 본질에 대한 반성과 접근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비즈니스는 크게 요동친다.
한국 대기업들은 어떨까?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은 국내에서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드는 자랑스러운 대표기업들이지만, 그들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욕구를 채워주고 있는가 묻는다면 아쉽게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기업이념이다.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인류사회에 공헌하자.'
'고객을 위한 가치를 창조하고 인간존중의 경영을 실현하자.'
여러분은 위 두 기업이념이 각각 어느 회사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가? 아니 그건 고사하고 두 이념에서 어떤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너무나 훌륭한 선언이지만 솔직히 별 차이는 없어 보인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이념이 이렇게 차별성 없고 무난하다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제품과 서비스 또한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이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고객에 대한 관찰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제는 'Customers의 시대가 아니라 Customer의 시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객의 욕구는 분화되어 있다. 기업들은 그런 고객의 욕구를 깊이 파악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테마를 선정하고, 그에 맞춰진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 간 전략적 제휴와 협업의 필요성이 더욱 대두될 것이다. 개별기업이 혼자서 라이프스타일에 필요한 모든 제품, 서비스, 솔루션을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 고객에게 가장 높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찾아주고 골라주고 제안해주는 것, 그게 저희 기획능력의 핵심입니다."
무네아키 대표가 계속 강조한 포인트 역시 그것이었다.
저성장 시대다. 앞으로는 불경기라는 말도 잘 쓰지 않을 정도로 경기침체가 당연시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당연히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해법은 있다.
라이프스타일 위주로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철저히 고객중심으로 기업철학을 바꾸라. 그러면 고객의 사랑이 따라올 것이다.
출처: 모종린, 라이프스타일 도시,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