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의 새로운 주역, 크리에이터 브랜드
화장품 업계에는 요즘 다양한 이름들이 떠돈다. '인디 브랜드', '스몰 브랜드', '언더 브랜드', '인플루언서 브랜드'... 그리고 단순히 '중소기업'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이 다양한 이름들 속에서, 이들을 포괄하는 단어가 존재한다. 바로 '크리에이터 브랜드'다.
왜 크리에이터 브랜드일까? 이는 현대 제조업의 본질적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의 제조업은 생산 설비를 가진 자가 주도권을 쥐었다. 하지만 이제는 ODM, OEM 등 생산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창의성과 기획력을 가진 자가 시장을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최근 화장품 업계의 성공 사례들을 보면 이러한 변화가 더욱 분명해진다. 올해 상반기, 중소 화장품 기업들의 수출 비중이 68.7%에 달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창의적인 제품 기획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혁신적인 마케팅이다. 대규모 설비투자 대신 OEM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했다.
이러한 사업 모델은 전통적인 '중소기업'이나 '인디 브랜드'라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들은 단순히 규모가 작은 기업이 아니라, 창의성과 기획력으로 무장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들이다. 마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크리에이터들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콘텐츠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의 성공 방식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 크리에이터들이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듯, 이들은 생산 플랫폼을 통해 제품을 만들고 유통한다. 크리에이터들이 팬들과 소통하며 콘텐츠를 발전시키듯, 이들도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제품을 개선하고 발전시킨다.
실제로 성공한 크리에이터 브랜드 중 상당수는 인플루언서나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이미 소셜미디어에서 확보한 팬층과 콘텐츠 제작 능력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제품 기획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처음부터 브랜드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크리에이터로서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브랜드로 발전한 것이다. 이는 '크리에이터 브랜드'라는 용어가 단순한 비유가 아닌, 이들의 실제 성장 경로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화장품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패션 산업에서도 젊은 디자이너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브랜드를 홍보하고, ODM 업체와 협력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신발 브랜드 마더그라운드는 디자인과 브랜딩에 집중하고 생산은 전문 업체에 맡기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식품 산업에서도 수제맥주, 라면 등을 중심으로 생산 플랫폼이 보편화되고 있으며, 식품 스타트업들이 레시피 개발에 주력하고 생산은 OEM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의식주와 관련된 라이프스타일 산업은 크리에이터 경제로의 편입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의 취향이 더욱 다양화되고 개인화되면서, 창의적인 기획력과 소비자와의 긴밀한 소통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터 브랜드'라는 용어는 단순히 기업의 규모나 설립연도가 아닌, 이들의 본질적인 특성을 잘 담아낸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제품 기획, 플랫폼을 활용한 생산과 유통,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소통 - 이러한 특성들은 현대의 성공적인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물론 모든 크리에이터 브랜드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트렌드의 변화가 빨라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많은 크리에이터 브랜드들이 시장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초기의 성공을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가는 것도 큰 도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성공한 크리에이터 브랜드들을 인수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코스알엑스 인수, LG생활건강의 힌스 인수와 같은 사례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대기업들은 이들 브랜드의 독특한 창의성과 빠른 의사결정 구조를 살리기 위해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크리에이터 브랜드의 또 다른 특징은 사업자에게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준다는 점이다. 빠른 성장을 원하는 기업은 대기업과의 인수합병을 통해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자신만의 색깔을 지키며 작은 규모를 유지하고 싶은 기업은 틈새시장에서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다. 생산과 유통을 플랫폼에 맡기는 구조는 이러한 유연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대규모 설비투자나 유통망 구축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기업은 자신의 비전과 가치에 충실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들을 '크리에이터 브랜드'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다. '크리에이터'라는 단어에는 이미 확장과 고유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모두 담겨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어떤 이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하고, 어떤 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키며 틈새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처럼 크리에이터 브랜드도 각자의 선택에 따라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작지만 강한 브랜드로 남을 수도 있다.
생산 플랫폼의 발달로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더 많은 창의적 기업가들이 시장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산업 전반의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크리에이터 브랜드는 이제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제조업의 새로운 미래와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로 향하는 경로를 보이는 중요한 현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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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모종린,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 김영사, 2024
"대기업도 제친 '인디브랜드'…64조 K뷰티 시장 다크호스로", 중앙SUNDAY, 2024.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