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는 수많은 도시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영혼을 지닌 '영원히 있는 소도시들'이 있다. 이들은 대도시의 화려함은 없을지 모르나, 그들만의 독특한 정체성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곳들이다. 내가 분리주의적 성향이 강한 소도시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러한 도시들에서 독자적인 지역 산업이 발견되기 쉽기 때문이다. 중앙으로부터의 독립 욕구는 종종 자생적인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런 관점에서 일본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는 내가 항상 가보고 싶던 도시였다. 2024년 10월 23일 드디어 삿포로를 거쳐 하코다테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하코다테가 독립심이 강한 도시인가? 하코다테의 도시 정체성은 막부가 1859년 개항도시로 지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하코다테를 주목한 이유는 1869년 하코다테 전쟁이다. 1868년 보신전쟁에서 패한 막부의 일부 부대가 하코다테로 피신, 1869년 독립국가 에조공화국을 선포한다. 비록 6개월 후 정부군에 의해 진압됐지만, 막부 반란군의 에조공화국 사건은 도시의 독립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코다테 전쟁의 의미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 막부 반란군과 이를 진압한 유신세력 모두 외부 세력이었으며, 아이누족과 같은 원주민의 자발적 독립운동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독립전쟁은 아니다. 그러나 반란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한 요새 고료카쿠 앞에 세워진 고료카쿠타워의 하코다테 전쟁 전시를 보면, 이 전쟁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도시 정체성 형성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코다테의 현재 모습은 네 가지 중요한 역사적·환경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었다. 19세기 후반의 신개발 도시라는 태생적 특성은 도시의 기본 골격을 결정했으며, 미국의 직접적 영향으로 인한 서구식 도시계획은 도시의 외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여기에 강한 바닷바람으로 인한 잦은 대형화재의 영향이 더해졌다. 2차 세계대전의 폭격 피해는 다른 일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이로 인해 개항기의 역사적 건축물들이 상당수 보존될 수 있었다.
현재 하코다테는 크게 두 개의 도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양 교회와 영사관 등 근대문화유산이 집중된 하코다테 원도심, 그리고 비즈니스 중심지인 고료카쿠 지역이다. 이러한 이중 도심 구조는 개항도시로서의 역사성과 현대 도시로서의 기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전통 건축물의 부재와 미국식 건축물의 우세는 도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가 되었다.
도시 설계상의 여백의 미학은 계획도시로서의 특성을 잘 보여주며, 자동차 중심의 도시구조는 근대화 과정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개항도시의 유산으로서의 서구 건축물군은 도시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며, 방재를 고려한 도시 공간 구성은 자연환경에 대한 도시의 적응 과정을 보여준다.
하코다테의 경제 구조는 도시의 독립적 성향과 역사적 특성을 반영한다. '작은 도시 큰 기업'의 후보지로서 아직 주목할 만한 기업 배출은 확인되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대기업의 지역 마케팅이다. 삿포로맥주, 코카콜라, 스타벅스와 같은 대기업들이 홋카이도 지역 한정 제품을 출시한다.
유명한 로컬 브랜드로는 외식 기업 '럭키삐에로'가 있다. 햄버거가 아닌 치킨버거를 중심으로 한 차별화된 정체성을 구축했으며 하코다테에서만 17개의 매장을 운영한다. 주류산업도 인상적이다. 맥주, 사케, 소주, 위스키를 아우르는 완결된 홋카이도의 로컬 주류 생태계는 도시의 경제적 자립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이러한 독자적 산업 생태계의 형성은 과거 분리주의적 성향이 남긴 긍정적 유산으로 볼 수 있다.
하코다테의 음식 문화는 홋카이도의 신선한 식재료와 일본 전통 요리의 정수를 모두 맛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오모5호텔 근처에서 맛본 징기스칸은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으로, 이 지역의 신선한 양고기의 품질을 잘 보여준다.
고류카쿠 부근의 이자카야에서는 4만 원 정도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준 높은 갓포 요리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차갑게 서브되는 게살과 밤밥 같은 세심한 요리는 하코다테 요식업계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마지막 날 아침에 들른 자유시장에서는 하코다테의 또 다른 특산물인 이쿠라로 만든 덮밥을 맛보았다. 이처럼 하코다테는 홋카이도의 식재료와 일본 전통 요리의 조화를 통해 독특한 식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방문해보고 싶은 '영혼 있는 소도시'들이 많다. 유럽에는 빌바오, 칼리닌그라드, 오데사, 볼로냐, 오르후스, 웁살라, 보르도, 리옹이 있으며, 아시아에는 타이난, 가오슝, 말라카, 고아가 있다. 북미의 버링턴, 서배너, 콜럼버스(인디애나)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역성을 지키며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어온 도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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