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도시 모델, 크리에이터 타운

by 골목길 경제학자

한국의 도시 모델, 크리에이터 타운


한국의 산업정책 패러다임은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특정 산업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전통적 산업정책 모델은 탈산업화가 진행된 현 경제구조에서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산업정책의 부진은 1990년대 이후 정부 주도로 성공적으로 육성된 산업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오늘날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한류 콘텐츠, 뷰티, 패션, 푸드 등의 산업은 정부의 전략적 계획이 아닌, 플랫폼을 통한 창의적 개인들의 혁신과 기업가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현실 인식에 기반할 때, 한국의 산업정책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서 '어디서 만들 것인가'로 초점을 전환해야 한다. 즉, 개별 산업을 직접 육성하기보다 창의적 생태계를 갖춘 도시를 조성하는 데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이 이미 '크리에이터 타운'이라는 창의적 도시 모델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의 홍대, 성수동, 망원동, 연남동과 같은 지역들은 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유형의 도시 공간으로, 그 발전 속도와 다양성 측면에서 글로벌 선도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크리에이터 타운은 대기업 자본이 아닌 개인 창작자들의 집적과 협업이 공간과 문화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문화지구나 상업지구와 구별된다. 크리에이터 공간과 지역은 탈근대 도시의 특징인 (직장(職), 주거(住), 여가(樂)가 가까이 위치하는) 직주락(職住樂) 근접성과 복합 용도 공간, 커뮤니티 기반의 문화 생산을 가장 잘 보여준다.


서울은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크리에이터 타운이 자생적으로 성장한 도시이다. 스톡홀름의 소더말름(Södermalm), 뉴욕의 브루클린, 도쿄의 시모키타자와와 같은 지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의 사례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욱 두드러진다. 홍대, 성수동, 이태원 등 서울을 대표하는 거대 상권으로 성장한 지역뿐만 아니라 을지로, 익선동, 서촌, 해방촌, 문래동, 연희동 등 다수의 크리에이터 타운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부산의 전포동, 광주의 양림동, 전주의 풍남동 등 지방 도시로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이 서구 도시와 달리 이민자, 난민, 저소득층 밀집 지역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서구에서는 주로 임대료가 저렴한 노동자 계층 거주지나 이민자 밀집 지역에 예술가들이 진입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서울의 대표적인 크리에이터 타운인 마포구(서교동), 서대문구(연희동), 용산구(이태원, 한남동), 성동구(성수동), 종로구(서촌)는 서울에서 주택 가격이 높은 중상층(Upper Middle Class) 주거 지역이다. 즉, 중상층 주거 지역이 창의적 상업 공간으로 전환되는 독특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거 지역의 상권화 현상은 일본의 다이칸야마, 시모키타자와나 대만의 타이베이 용캉제(永康街)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부분적으로 관찰되지만, 서울만큼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은 그 규모와 분포, 그리고 중상층 이상 지역에서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글로벌한 차별성을 가진다. 이러한 서울의 독특한 크리에이터 타운 모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도시 모델이 될 수 있다. 하나는 새로운 도시 기반 문화산업 모델이며, 또하나는 직주락이 가능한 크리에이터 타운 모델이다.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에 형성된 서구의 크리에이터 타운은 중산층이 선호하는 주거 지역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생활권 규모의 크리에이터 타운은 새로운 도시산업정책의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종합적인 도시 중심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도시의 행정 단위가 확장됨에 따라 - 시군구, 광역단체, 초광역 지역 단위로 - 기업도시, 스타트업 클러스터, 혁신 생태계 등 보다 다양하고 규모가 큰 산업 생태계가 함께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된 도시 체계에서도 혁신의 기본 단위는 여전히 크리에이터 타운이다. 미래 대도시의 새로운 모델은 단일한 대규모 산업단지나 중앙집중식 상업지구가 아닌, 다양한 크리에이터 타운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대기업, 금융기관, 스타트업, 콘텐츠 기업들이 크리에이터 타운이라는 미시적 생활권 생태계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도시 전체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에서는 생활과 생산이 통합되고, 대기업과 소상공인, 첨단기술과 전통 제조업이 공존하는 새로운 도시 생태계가 형성된다.


크리에이터 타운의 경제적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크리에이터 인구를 정의하고 측정할 필요가 있다. 도시 공간에서 문화적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는 전통적인 예술인 범주(예술가, 디자이너, 공예가, 메이커 등)를 넘어 창의적 활동을 하는 소상공인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집단이다. 이들은 물리적 공간 운영, 독립 브랜드 경영, SNS를 통한 콘텐츠 마케팅 등의 공통된 특성을 보인다. 아직 정부 통계에서 이러한 크리에이터를 독립된 범주로 분류하여 조사하지는 않지만, 그 규모를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지표들이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 플랫폼에서 스마트플레이스(사업장 미니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사업자가 전국적으로 약 230만 명에 달하며 이들 중 상당수가 소상공인으로 추정되는 것을 고려할 때, 한국 크리에이터 경제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음을 시사한다.


1. 수요 요인: 크리에이터 타운의 문화적 소비자

서울의 크리에이터 타운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크리에이터 상권이 문화 콘텐츠와 경험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이를 문화산업의 한 형태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법을 취하면 문화경제학의 분석 방법론을 활용하여 크리에이터 타운의 발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화경제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문화산업의 성장을 결정하는 요인을 크게 수요, 공급, 중개자라는 세 가지 핵심 축으로 분류한다. 이 프레임워크를 통해 한국 크리에이터 타운의 독특한 성장 경로를 분석해 보자.


크리에이터 타운의 성장을 분석할 때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수요 측면이다. 어떤 문화산업이든 성공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규모의 안정적인 소비자 기반이 필수적이다.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수요 요인이 작용했다. 하나는 문화적 소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MZ세대의 등장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 도시의 독특한 건축 환경이다. 이 두 요소가 결합하여 크리에이터 타운에 대한 강력하고 지속적인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수요 요인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고학력 MZ세대의 문화적 소비 성향

한국 사회의 높은 교육 수준은 문화적 취향과 소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진 소비자층을 형성했다. 특히 MZ세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문화적 소비를 중시하며, 대량생산된 상품보다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로컬 브랜드와 경험을 선호한다.


현대 소비자들은 단순한 제품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한다. 크리에이터 타운은 카페, 독립서점, 편집숍, 공방 등 다양한 공간이 결합된 복합적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수요에 부응한다. 코로나19 이후 로컬 중심의 소비 패턴이 강화되면서, 근거리에서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발견한 브랜드와 공간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SNS에서 화제가 된 장소를 직접 방문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소비 행태는 크리에이터 타운의 성장을 뒷받침한다.


체류형 관광과 로컬 경험에 대한 수요 증가는 크리에이터 타운을 관광의 중요한 목적지로 부상시키고 있다.

이현덕의 해방촌 분석에 따르면, 크리에이터 타운의 수요층은 국내 MZ세대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까지 확장되고 있다. 해외 관광객들은 대형 쇼핑몰보다 현지인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로컬 상권과 문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파트 중심 신도시 개발과 대안적 공간에 대한 갈망

MZ세대 성향은 한국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특별하다면, 그것은 그들이 성장한 건축환경이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중심의 신도시 개발로 인해 수도권 청년의 대다수는 획일화된 주거 환경에서 성장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청년 세대는 아파트 단지의 표준화된 환경과 대비되는 골목길, 저층 주거지, 리모델링된 오래된 건물 등 개성 있는 도시 공간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인간적 스케일의 건축 환경, 다양한 역사적 층위가 남아있는 구도심 공간은 신선한 문화적 경험의 대상이 되었다.


2. 공급 요인: 크리에이터 타운의 생산자들

크리에이터 타운의 형성과 성장에는 수요 측면뿐 아니라 공급 요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다양한 창작자와 소상공인들이 도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들의 활발한 시장 진입과 창의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공급 측면의 요인으로는 참여자들의 전문적 직업 배경, 활용 가능한 상업 공간의 공급 현황, 한국 소상공인 산업의 구조적 특성, 그리고 청년세대의 높은 교육 수준과 창의적 역량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공급 요인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국 크리에이터 타운만의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예술가보다 소상공인 주도의 도시 콘텐츠 생산 구조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은 베를린과 같은 서구 도시와 비교했을 때 큰 차별성을 보인다. 베를린에서는 예술가와 이주민 커뮤니티가 도시 변화를 주도하며, 소상공인은 문화적 주체로 부각되지 않는다. 베를린의 소상공인은 전통적인 독일식 중소기업(Mittelstand) 구조에 속하며, 장인정신(Handwerk)의 계승자로 존중받지만, 창조적 혁신의 주체로는 인식되지 않는다.


반면 서울에서는 소상공인과 크리에이터가 결합하여 도시문화를 선도하고, 미디어와 SNS를 통해 자신을 브랜드화하며 도시 담론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제도화된 예술 활동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대신 소상공인이 주도적으로 도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기존 예술 기관과 창의적 소상공인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오히려 음식점, 카페, 편집숍 등 상업 공간이 핵심적인 문화 생산 공간으로 기능한다. 제도권 예술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환경에서, 창의적 소상공인들은 독자적인 문화적 주체로 부상하며 도시 공간을 재편하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용도규제 완화와 주거지역의 상업화 용이성

한국에서 크리에이터 타운이 활성화된 중요한 공급 요인 중 하나는 용도규제 완화를 통한 저층 주거지역의 상업 공간 전환 용이성이다. 서울에서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동네의 절대다수는 크리에이터가 주택을 근린생활공간으로 전환해 진입한 지역이다.


법적으로 제1종이나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의 용도 변경은 비교적 간단한 신고 절차만으로 가능하며, 이는 크리에이터들이 기존 주거 건물을 카페, 레스토랑, 편집숍, 공방 등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제도적 유연성은 홍대, 연남동, 성수동과 같은 주거지역에서 창의적 상업 공간이 빠르게 확산되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주거지역 내 상가와 주택이 혼재된 '무지개떡 건축(상가아파트)' 형태의 복합용도 개발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생활 반경 내 다양한 상업 활동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복합용도 건축물의 공급은 대규모 상업지구 개발이 필요 없이 기존 주거지역의 유기적 변화를 통해 크리에이터 타운이 형성될 수 있는 제도적 배경이 되었다.


소상공인의 높은 비중

한국에서 소상공인의 역할이 부각되는 구조적 특성은 주목할 만하다. 현재 한국의 소상공인은 약 700만 명으로 전체 고용의 30%를 차지한다. 소상공인이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도시 변화를 이끄는 주체로 기능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한국에서 소상공인 비중이 높은 이유는 제도적, 문화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 연금 등 사회 복지와 보험이 개인 중심으로 공급되어, 굳이 기업에 취업하지 않아도 자영업자와 프리랜서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연공서열 중심의 조직문화는 노동시장의 수평적 이동을 어렵게 만들어, 조기 퇴직자에게는 자영업이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사장님'이 되고자 하는 열망, 즉 스스로가 보스가 되길 원하는 한국 고유의 평등 의식도 자영업 규모에 기여한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창의적 소상공인이 크리에이터 타운의 주요 공급 주체로 부상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형성했다.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을 이끄는 주체들은 단순한 소매상이 아니라, 공간을 창조하고, 브랜드를 구축하며,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복합적 정체성을 가진다. 이들은 카페 운영자이자 디자이너, 편집숍 운영자이자 콘텐츠 제작자 등 다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높은 교육 수준과 창의적 자본

한국의 소상공인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추고 있으며,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창업에 활용한다. 대기업이나 전문직에서 경력을 쌓은 후 자신만의 브랜드를 창업하는 경우가 많아, 단순한 생계형 자영업이 아닌 창의적 자본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다.


한국의 크리에이터들은 제한된 도시 공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한옥, 적산가옥, 오래된 단독주택, 폐공장 등 다양한 건축 자산을 재해석하고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이러한 공간 재생은 크리에이터 타운의 독특한 정체성과 매력을 형성한다.


디지털 환경에 능숙한 한국의 크리에이터들은 제품과 공간을 넘어 콘텐츠와 브랜드 스토리를 생산한다. SNS를 통한 적극적인 브랜딩과 커뮤니케이션은 오프라인 공간의 가치를 확장시키고, 지속적인 고객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다.


3. 중개자(Intermediary): 디지털 플랫폼과 로컬 경제의 연결

문화산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수요와 공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리처드 케이브스(Richard Caves)가 강조한 중개자(Intermediary)는 문화산업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에서는 다수의 중개자들이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지도 서비스와 위치기반 플랫폼의 중개 역할

한국에서는 네이버맵, 카카오맵과 같은 지도 서비스가 크리에이터 타운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핵심 중개자 역할을 한다. 이러한 지도 서비스는 단순한 위치 정보 제공을 넘어 리뷰, 평점, 실시간 방문 정보, 콘텐츠 큐레이션 등 하이퍼 로컬 정보를 제공하며 소비자의 방문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망리단길'(망원동+경리단길)이나 '연리단길'(연남동+경리단길)과 같은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지도 앱 기반의 검색과 탐색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지역과 공간을 발견하는 중요한 경로가 되었다. 이러한 하이퍼 로컬 서비스는 크리에이터 타운의 형성과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디지털 플랫폼의 지원 역할

한국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대형 IT 기업들이 소상공인과 로컬 브랜드를 지원하는 중개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네이버의 '스마트플레이스', '네이버 쇼핑라이브', 카카오의 '카카오맵' 등은 로컬 비즈니스의 디지털 가시성을 높이고,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다.


이들 플랫폼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소상공인을 브랜드와 메이커로 성장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예를 들어 네이버의 '파트너스퀘어'는 소상공인을 위한 디지털 교육과 인프라를 제공하며, 카카오의 '메이커스' 프로그램은 로컬 브랜드의 제품 개발과 마케팅을 지원한다. 네이버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소상공인을 브랜드로 지원하는 '프로젝트꽃'을 추진한다.


SNS 인플루언서와 로컬 미디어

한국은 콘텐츠 크리에이터 산업이 강한 국가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은 로컬 브랜드와 공간을 발굴하고 소개함으로써 중요한 중개자 역할을 한다. 또한 '어반플레이', '성수바이블', '재주상회'와 같은 로컬 미디어들은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브랜드를 소개하고,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스토리를 발굴하는 데 기여한다.


4. 한국 사회의 과제: 크리에이터 타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원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은 현재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일반 상권과 마찬가지로 이들 지역도 흥망성쇠의 순환 주기를 피할 수 없으며, 성공적인 지역일수록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경리단길과 가로수길 같은 대표적 사례는 이미 초기 크리에이터들이 떠나 상업화가 가속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구조적 문제는 크리에이터 타운의 지리적 편중이다. 현재 대부분의 성공적인 크리에이터 타운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창의적 잠재력을 가진 지방 중소도시들은 유사한 모델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국형 크리에이터 타운 모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소상공인을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닌 문화적 가치 창출의 주체로 인식하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현재 소상공인 중심의 담론에서 나아가 예술가와 이민자 커뮤니티까지 포용하는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셋째, 로컬 브랜드가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소상공인의 크리에이터 정체성 강화와 지원 패러다임의 전환

한국 정부는 현재 소상공인을 주로 경제적 취약계층 또는 한계 기업으로 인식하고, 구조조정과 하드랜딩을 저지하기 위한 연명성 금융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소상공인이 가진 창의적 잠재력과 문화적 가치를 간과하는 한계가 있다.


모든 소상공인이 아니더라도, 창의적 역량과 문화적 잠재력을 갖춘 소상공인들은 단순한 생계형 자영업자가 아닌 '크리에이터'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공간을 디자인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하며,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복합적인 창조 활동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러한 소상공인들에 대한 정책적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잠재력 있는 소상공인과 상권을 단순히 경제적 취약계층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을 '크리에이터'와 '크리에이터 상권'으로 재정의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패러다임 전환은 단기적인 금융 지원이나 임대료 보조를 넘어, 창의적 역량 강화, 브랜드 개발, 디지털 전환, 국내외 마케팅 지원 등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한 종합적인 지원 체계를 의미한다.


크리에이터 소상공인 정책은 기존의 단일 부처 접근법으로는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복합적 성격을 지닌다. 효과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산업 지원 역량, 문화체육관광부의 콘텐츠 육성 노하우, 행정안전부의 지역 발전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소상공인의 대다수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할 때, 중앙정부 주도의 획일적 정책보다는 읍면동 단위의 미시적 관리와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다층적이고 통합적인 정책 혁신을 통해 소상공인들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 지역 경제와 문화를 이끄는 창의적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주체를 포용하는 통합적 담론 구축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은 현재까지 소상공인 중심으로 담론이 형성되어 왔으나, 예술가와 이민자 커뮤니티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태원과 같은 서울의 일부 크리에이터 타운은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음식점, 바, 문화 공간 등을 운영하며 지역의 다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크게 기여해 왔다.


향후 한국 사회가 더욱 다양화되고 글로벌화됨에 따라, 서구와 유사하게 예술가와 이민자 서사가 크리에이터 타운 담론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소상공인, 이민자, 예술가를 통합적으로 포용하는 새로운 담론 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통합적 담론은 각 주체의 고유한 기여를 인정하면서,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적 가치와 창조적 시너지를 강조해야 한다. 또한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취약계층과 소규모 창작자들을 보호하고, 다양성이 지속가능하게 유지될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예술가를 위한 창작 공간 지원, 이민자 커뮤니티의 문화적 활동 장려, 다양한 주체 간 교류와 협업을 촉진하는 프로그램 개발 등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이 단일한 주체가 아닌 다양한 창의적 주체들의 생태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로컬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확보

크리에이터 타운의 핵심인 로컬 브랜드가 지속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자금 조달, 공간 확보, 기술 지원 등 종합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초기 성장 단계를 넘어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의 지원이 중요하다.


크리에이터 타운의 성공은 종종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져 원래의 크리에이터들이 떠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임대료 안정화 정책, 로컬 크리에이터 보호 조치, 공공 소유 공간 확보 등 적극적인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


크리에이터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술 교육과 디지털 마케팅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대형 플랫폼과 소상공인 간의 상생 관계를 구축하여,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적인 브랜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단순한 개별 지원을 넘어, 크리에이터들 간의 협업과 네트워킹을 촉진하는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동국대학교 한광야 교수가 제안한 '대학도시' 개념처럼, 대학과 원도심을 연계하여 지식과 창의성이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로컬 브랜드 생태계는 지역의 건축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국의 모든 크리에이터 타운이 한옥, 적산가옥, 단독주택 등 크리에이터들이 선호하는 건축물이 집적된 지역에서 생성되고 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역소멸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크리에이터 타운의 건축적 기반이 약한 지역에서는 도시재생을 통해 건축마을을 공급해야 할 상황이다.


황두진 건축가가 제안한 '무지개떡 건축',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가 주장하는 '동네 개방형 상가(오픈계단과 중정 활용 상가)', 필자의 '건축마을(크리에이터 친화적 건축환경)' 개념처럼, 직주락 통합형 복합용도 건축과 보행환경을 확산시켜 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 아파트 단지형 개발에서 벗어나, 상업, 주거, 문화, 생산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도시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서울에서 성공한 크리에이터 타운 모델을 지방 도시로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소도시, 특히 군청 소재지를 중심으로 기존 도시 골격을 활용하고, 창의적 상업과 문화가 융합된 크리에이터 타운을 조성하여, 관광객이 2박 3일 이상 머물 수 있는 체류형 도시로 발전시키는 접근법이 유효할 수 있다.


5. 결론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은 단순한 상업 공간이나 문화 지구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산업 모델로 발전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 문화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공급 측면에서 창의적 소상공인이 증가하며, 중개자로서 디지털 플랫폼의 적극적 역할이 결합되어 독특한 한국형 모델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크리에이터 타운 모델은 기존 문화산업 중심(1세대 창조도시), 창조계급 중심(2세대 창조도시), 문화기획 중심(3세대 창조도시)을 넘어, 상업 기반 크리에이터 타운을 중심으로 하는 4세대 창조도시 모델로 발전할 수 있다. 한국은 이를 통해 근대 산업도시 모델을 넘어 크리에이터 타운이라는 탈근대 도시 모델을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향후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 연구는 더욱 정교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 크리에이터 인구와 경제적 규모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크리에이터 타운의 발전 단계별 특성 연구, 그리고 글로벌 사례와의 비교 분석이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소비 패턴과 디지털 전환 가속화가 크리에이터 타운에 미치는 영향, 지방 소멸 위기 지역에서의 창조적 재생 가능성, 그리고 소상공인-대형 플랫폼 간 상생 모델 구축 등은 시급한 연구 과제다.


무엇보다 한국형 크리에이터 타운 모델이 해외에서도 적용 가능한 보편성을 가진 '문화적 수출품'으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과 방법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와 정책적 지원이 결합될 때,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은 단순한 문화적 현상을 넘어 글로벌 도시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종석, "건축적 변화로 만드는 마을의 지속가능성," 무브먼트C 세미나 발표자료, 2025.

모종린, "제4의 창조도시론," 골목길 경제학자의 브런치, 2024.

모종린, "장사하기 좋은 동네의 건축환경: 3단 구조론," 골목길 경제학자의 브런치, 2025.

모종린, "도시와 소상공인: 베를린과 서울의 차이," 골목길 경제학자의 브런치, 2025.

이현덕, "장사하기 좋은 동네, 해방촌 10년 분석." 이현덕의 브런치, 2025.

포틀랜드스쿨, "Movement C 3차 포럼 후기," 네이버 블로그, 2025.

한광야, 도시의 진화 체계, 2022, 커뮤니케이션북스

황두진, 무지재떡 건축, 2015, 메디치미디어

Caves, Richard E. (2000). Creative Industries: Contracts between Art and Commerc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New York Times, "Five Places to Visit in Stockholm", December 20, 2019.


keyword
이전 12화베를린 정체성: 절제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