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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07. 2018

성공한 골목길엔 문화 준비성(C-READI)이 있다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도시재생과 골목상권 재생이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의 대상 지역은 대부분 골목길로 이루어진 구도심 지역이다. 낙후 도심을 살리는 도시재생 사업에서 골목상권 재생은 핵심 사업이다. 상권 활력 없는 도시재생은 불가능하다.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생산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성공 조건을 먼저 이해하고 이를 통해 현황을 파악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골목길 경제학에서 검토한 국내외 사례를 종합하면, 상권 성공의 조건은 C-READI로 정리된다. 성공한 골목상권은 공통적으로 문화 인프라(Culture), 임대료(Rent),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접근성(Access), 도시 디자인(Design), 정체성(Identity) 등 6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C-READI 골목상권의 전형 연희동


C-READI 모델의 의미


C-READI 개념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6가지 성공 조건의 실태를 평가한 후 부족한 부분에 자원을 투입해 골목상권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는 효율적인 정책으로 C-READI 전 영역에 기여할 수 있다. 골목길의 문화자산을 확충하고, 임대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골목 창업을 지원하고 필요 인력을 훈련·육성, 골목길 연결성과 대중교통 접근성을 개선하며, 골목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공공재에 투자하는 것이다.



C-READI 모델



C-READI 모델은 단순하지만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기존 연구가 문화자원, 임대료, 거리 디자인, 접근성을 강조한다면, C-READI 모델은 기업가 정신, 정체성 등 새로운 성공 요인을 제시한다. 영역별 성공 가능성은 다르다. 저층 건물과 걷기에 편한 거리, 주거지와 상업시설 공존 등의 복합적 공간 디자인과 편리한 대중교통 구축을 통한 접근성 개선은 정부가 비교적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지역 정체성을 드러내는 미술관과 공방, 적정 임대료의 유지, 개성 있는 가게를 창업해 골목문화를 선도하고자 하는 기업가 정신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일궈내기 힘들다. 주민, 상인, 예술가, 청년창업가 등 골목길 주체들의 협력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국내외 성공 사례는 골목상권 지속 성장의 핵심이 골목문화 유지와 이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공동체 의식에 있음을 보여준다.


성공적으로 성장한 골목상권은 공통적으로 뛰어난 창업자(E)가 접근성(A)이 좋고 골목 자원(D)과 문화 자원(C)이 풍부하지만 임대료(R)가 싼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창업하고, 이를 본 다른 창업자가 주변에서 새로 가게를 열어 지역만의 정체성(I)이 뚜렷한 하나의 상권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역으로 C-READI 기준을 만족하는 골목길은 성공적인 골목상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C-READI를 CRE과 ADI로 구분하면, 각각 골목상권의 1단계, 2단계 성공 조건에 해당한다. 1단계 골목상권의 출발은 문화 자원(C)이 풍부하고 임대료(R)가 저렴한 지역에 진입한 기업가(E)의 역량에 달렸다. 2단계에서는 접근성(A)과 골목 자원(D)을 개선하면서 공동체 정체성(I)을 유지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여섯 개 조건의 영어 이니셜을 모아 조합한 C-READI(Culture-Rent-Entrepreneurship- Access-Design-Identity)를 발음하면, ‘문화가 준비돼야 한다(Culture-Readi)’를 의미한다. 모든 조건들 중에서 문화자원과 문화 정체성이 골목상권의 핵심 경쟁력임을 강조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필자가 간결성을 위해 C-READI 6 대항목으로 리했지만 대항목을 다시 분류하면 최소 16 소항목을 도출할  있다. 예컨대 문화예술도 전통적인 문화예술뿐 아니라 공예공방, 생활문화, 소상공인 문화를 문화자원으로 포함할  있다. 상권 분석 툴로 C-READI 모델을 사용할 경우, 소항목 별로 현재 상황을 점검하는 것을 권장한다.


 


광주 동명동의 문화자원 아시아문화전당


골목문화의 기반,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부터


골목문화는 문화예술인, 공방 공예인, 소상공인이 창출하는 도시문화와 주민생활문화의 복합체다. 다양한 문화예술 인프라(C) 중 골목문화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원은 예술가다. 정부는 미술관, 공연시설, 예술가 창작 시설 등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인프라를 조성함으로써 미술가, 디자이너, 작가, 음악가, 건축가 등 문화 생산자들을 집적시킬 수 있다.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 등 서울의 1세대 골목길도 문화예술 인프라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많이 알려졌듯이 홍대 골목상권의 문화기반은 화랑, 미술학원, 예술가 작업실, 인디뮤직 산업이었다. 가로수길도 2000년대 중반 골목상권으로 부상하기 전에는 갤러리, 화방, 건축사무소가 모인 문화 거리였다. 삼청동은 2000년대 중반 서울의 대표적 문화 소비 공간으로 떠올랐지만, 그 이전에는 갤러리가 중심이 된 조용한 화랑거리였다.


새로운 문화예술 시설 건설이 문화 인프라를 공고히 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고풍스러운 옛 건물이나 폐쇄된 공장과 학교 등 골목 역사문화유산을 활용, 예술가가 기술과 재능을 발휘해 골목 정체성에 어울리는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골목문화 형성에 기여한 건물과 공간을 문화재로 지정해 개성 있는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공예공방, 독립 가게 등 상업시설도 중요한 문화 인프라다. 골목문화 정체성을 접목시킨 공방, 갤러리, 편집샵, 북카페 등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상업시설이 골목에 자리 잡는다면, 특정 골목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이들을 유인할 수 있다. 문화자원은 전통적인 문화예술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주민의 생활문화와 라이프스타일도 특색 있는 골목문화를 창출한다. 양양 죽도해변, 홍대, 서교동 문화는 각각 서퍼, 독립기업, 소셜벤처같이 독립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주민들이 만든 독특한 생활문화다.



임대료 안정에 기여하는 공공재 투자


골목상권 활성화 전략은 곧 임대료(R)와 연결된다. 다양하고 독특한 골목문화를 지탱하는 골목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골목상권으로 불리는 도쿄의 기치조지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상생하는 일본 특유의 마을문화가 임대료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공동체 문화가 일본만큼 강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정부가 공동체 강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골목 경제 육성이라는 공통된 비전을 가지고 임대인과 임차인간 파트너십이 발휘될 수 있도록 중재적 역할을 해야 한다. 모범적인 공동체 투자 모델로 서울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들 수 있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골목상권 임대료 안정을 위해 건물주-임차인-지자체 상생협약, 소상공인을 위한 앵커시설 대여, 장기 안심 상가 운영, 소상공인 상가 매입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에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10년 영업 보장, 연 임대료 인상률 제한 등 임차인 권리를 강화하는 임대차보호법을 마련했다.


서촌 지역의 감각 있는 카페


골목길 창업의 유도와 지원


골목문화 인프라 구축 및 임대료 안정화 정책에 이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창업자 지원(E)이다. 매력적인 가게를 창업해 골목 선구자가 되겠다는 개척자 정신을 가진 혁신가들이 골목에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 서울의 1세대 골목상권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지역에서 첫 가게를 연 창업가에 의해 발전했다. 연희동 사러가쇼핑센터가 보여주듯, 이들 첫 가게 중 상당수는 골목상권이 성숙한 후에도 유동인구를 유발하고 지역 거점 상점으로서 골목 발전을 위한 공공재를 제공한다.


가게를 운영하며 고도의 전문기술과 경험을 쌓아 골목 장인으로 성장하는 이들은 곧 골목문화 계승자이기도 하다. 장인으로부터 훈련받는 차세대 장인들은 고유의 영역을 개척해 골목을 이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골목 정체성이 결합된 창의적인 아이템으로 창업을 주도하고, 장인 정신을 토대로 전문성을 길러 다양한 골목 장인을 배출하는 골목 장인 생태계 구축을 위해 창업자들의 유입과 정주 여건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골목상권은 일차적으로 상권으로 기능한다. 골목상권을 다른 상권과 다른 이유는 상권 구성이다. 골목상권은 2-30대가 선호하는 업종이 입점해야 골목상권으로 분류될 수 있다. 기성세대가 선호하는 가게가 모인 상권은 먹자골목이다. 골목상권에서 핵심 업종은 독립서점, 베이커리, 스페셜티 커피, 게스트하우스 등 4개 업종이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이렇게 4개 업종으로 작은 상권을 조성할 수 있다.


서울 상권의 역사를 보면, 골목상권이 활성화된 지역은 순차적으로 문화산업, 창조산업 단지로 진화한다. 1세대 골목상권인 홍대의 경우, 2010년대 중반 복합문화공간, 라운지, 살롱, 코워킹, 코리빙, 로컬 편집숍 등 상권에서 고객, 파트너, 협력회사, 투자회사로 구성된 생태계를 구축하는 업종이 상권의 주축으로 부상했다. 지역자원을 체계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구축해야 하는 이들 업종은 실질적인 커뮤니티 비즈니스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중심의 2단계가 완성되면 창조도시 문헌이 강조하는 콘텐츠, 패션, 화장품, 스타트업 등 창조산업이 들어온다. 현재 홍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리테일, 문화산업 브랜드를 대표하는 도시산업생태계다. 2012년 시작된 성수동도 홍대와 같은 도시산업생태계로 발전한다.    


골목길 창업자를 전통적인 소상공인 창업자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창업지원센터와 코워킹(Co-working) 스페이스를 지원해 도시재생 스타트업, 기술 기반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 문화기획자 등 골목길에 다양한 유형의 창업자를 유치해야 한다. 홍대와 합정 지역 예술가, 스타트업, 소상공인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혁신 창업을 구축하는 홍합밸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예술가 x 스타트업 x 소상공인, 즉 세 그룹의 집접과 콜라보가 사람을 모으는 '힙타운'을 만든다. 힙타운 공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목상권을 직접 개발하는 부동산 개발사와 기업도 골목길 창업문화에 크게 기여한다. 제주 원도심의 아라리오 뮤지엄, 대전 원도심의 성심당은 기업이 주도해 지역 상권의 활성화를 위한 상업시설과 공공시설에 투자한 사례다. 사회적 기업, 문화기획사,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도 로컬 크리에이터 기업과 같이 동네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동네의 중요한 창업자 자원이다.


서울역 지역의 내부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서울로


내외부 접근성의 제고


골목상권 발전에는 접근성(A)을 빼놓을 수 없다. 버스, 트램, 지하철, 기차 등 다양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편리하게 골목을 찾을 수 있도록 교통체계를 확충해야 한다. 골목 어귀 대로변에서 대중교통 수단의 환승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많은 사람이 골목으로 진입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서울 강북 지역의 대표 골목상권이었던 이대 후문 지역의 쇠락에서 볼 수 있듯 접근성 제약은 골목상권 발전에 치명적이다.  


외적인 접근성 향상과 함께 중요한 것은 내적인 거리 구조다. 걸어 다니기에 쾌적한 거리, 자전거 전용 도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탐방할 수 있는 작은 골목길 등 내부적으로 편의성을 제공하면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거리 공간 디자인이 필요하다. 서울시가 야심 차게 추진한 서울로 7017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기능도 서울역 인근의 내부 연결 기능이다. 서울로 구축으로 기찻길과 대로로 단절됐던 서울역 인근이 통합된 상권으로 거듭났다. 일본 도야마시처럼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도심을 순환하는 트램과 편리하게 환승될 수 있도록 교통체계를 정비하는 것도 내부 접근성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다.


한옥자원을 확장하는 전주 한옥마을


골목 자원의 보호와 확장


골목 접근성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공간 디자인(D)은 골목 자원 보호와 홍보에 중요한 요소다. 골목 정체성을 표지판, 간판, 조경 등을 통해 형상화하고 조화로운 건물 양식이나 색깔 등 디자인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복합적 용도의 골목 건물들과 친환경적 골목 풍경을 완성한다면, 골목마다 다양성과 개성이 넘쳐날 것이다. 정부는 특히 대중교통체계 및 문화 인프라 구축, 거리 디자인 등 다양한 지원 정책들이 골목 주체들과 정부 간 협력적 거버넌스를 통해 시너지를 내도록 힘써야 한다.


중국 상하이와 전주 한옥마을 사례가 보여주듯이 정부 주도의 골목 지역 확장도 상권을 활성화시킨다. 골목 자원이 부족한 지역은 경쟁적인 상권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인근 골목 지역과의 연결성 확대, 신규 골목 지역 건설을 통해 골목 자원을 확장하면, 상업시설과 거주민 유치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전주 한옥, 에든버러 고딕 건축 등은 특정 건축 양식이 차별적인 골목문화를 창출한 사례다. 동일한 건축양식으로 건설된 지역은 대규모 문화 인프라 투자 없이도 쉽게 문화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 한국 도시도 전통가옥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에 건축된 건물이 집적된 지역을 문화지역으로 인식해 건축물을 도시문화 자원으로 보전해야 한다.


서퍼 정체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양양 죽도해변 상권 (사진-박민아)


공공재 투자지원과 골목 공동체 강화


C-READI의 마지막 핵심인 정체성(I)은 골목 정책의 구심점이다. 정체성은 골목문화와 전통이 내재되어 골목 유·무형 자원을 통해 드러나는 고유의 분위기와 가치를 의미한다. 문화예술산업 종사자, 주민, 창업자, 장인, 투자자, 골목 시민단체 등은 골목만이 가진 특유의 가치가 있는 정체성을 발굴하고 상품화하기 위해 협력해야 하는 주체들이다. 골목문화와 경제의 지속 발전이라는 공통의 비전을 가지고 공동체를 구축해 함께 번영하는 골목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상권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전통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골목상권의 상인과 건물주들이 상인회를 조직하는 등 상권 전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노력에 동참한다.


골목문화를 토대로 경쟁력 있는 상권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골목 라이프스타일의 생활화가 중요하다. 미국 버클리의 보헤미안, 양양 죽도해변의 서퍼, 홍대의 인디뮤지션과 독립 가게 등이 골목문화를 추구하며 결속력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공동체로 꼽을 수 있다. 안동 하회마을과 선비길이 한국 유교문화의 상징으로 보전되는 것 역시 안동 사대부 정신을 이어가려는 지역 후손들의 공동체 정신 덕분이다.


골목 정체성이 담긴 상품과 서비스의 꾸준한 소비가 뒷받침되어야 혁신적인 골목 장인들이 성장할 수 있다. 골목 정체성 기반 커뮤니티가 골목문화의 자생적인 생산과 소비를 지탱할 수 있도록 정체성 발굴 사업, 골목 사업가 모임 지원, 청년창업자와 예술가 지원 사업 등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상권 현황 분석으로 시작하는 골목상권 활성화


상권 활성화 사업의 시작은 상권 현황 분석이다. 문화지구 성격이 강한 골목상권에서는 유동인구와 동선 중심의 전통적인 상권 분석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골목상권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C-READI 모델을 상권 현황 분석틀로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고 싶은 정부에게 C-READI는 상권 현황의 체크 리스트다. C-READI 각 영역에서 현재 상태가 어느 수준에 와있고, 이를 더만족하려면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서울역 상권의 사례를 보자. 서울시는 현재 문화, 임대료, 기업생태계, 접근성, 공간 디자인, 정체성 등 전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제한적인 자원이 적절하게 배정되고 있는지는 더 논의해야 한다. 서울역 재생 사업에서 가자 아쉬운 부분이 정체성이다. 서울시는 서울역을 어떤 산업을 유치하는 상권으로 키우고 싶은가? 다른 지역에서는 정체성 확립이 어렵지만, 서울역에서는 오히려 쉬운 일이다. 서울역은 중앙역이다. 다른 도시의 중앙역과 같이 마이스산업, 숙박산업, 유통산업, 지방산업(지자체의 서울 오피스 또는 지방 제품의 서울 전시장) 등 중앙역에 자연스럽게 모이는 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   


물론 정부가 C-READI 모든 영역에 개입할 수는 없다. 특히, 기업가 영역은 정부의 지원이 오히려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 청년 창업가들이 지역에서 생존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기보다는 정부 지원 사업 수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기업처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경험을 볼 때 정부가 잘할 수 있는 일은 거리 조성과 문화시설 유치다.


지자체가 매력적인 골목상권을 원한다면 두 가지 일에 집중해야 한다. 걷고 싶은 길을 열어주고, 동네 정체성에 맞는 문화시설을 배치하는 일이다.


더 중요한 일은 골목상권 자체보다는 이를 통해 어떤 동네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비전이다. 코로나 이후 생활 반경이 좁아져 많은 사람이 동네 중심의 생활을 하고 이에 익숙해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지역은 주민이 동네 안에서 직주락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권으로 재편되고 있다. 생활권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경제적 자생력에 달렸다. 홍대, 성수동 골목상권이 단계적으로 도시산업생태계로 진화했듯이, 앞으로 구축해야 하는 동네 중심 생활권도 지역 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로컬 브랜드를 배출하는 단계까지 발전해야 한다.


로컬 브랜드 생태계가 골목상권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다.


C-READI 모델에 의한 골목길 정책은 건축, 디자인, 문화기획, 경제학, 경영학 등 다양한 학문 지식이 접목되는 대표적인 융복합 정책이다. 정부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원한다면 전국 곳곳에 C-READI 조건을 충족하는 골목상권, 즉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골목상권 모델인 장인 공동체가 등장할 것이다. 사회의 관심과 더불어 시장 환경도 C-READI 모델의 확산에 우호적이다. 골목상권과 비 골목상권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골목상권 주체들도 공동체(골목상권 전체) 경쟁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공공재와 골목 가치 투자를 유발하는 공동체 인식의 확산이 궁극적으로 골목상권의 지속 가능 발전에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잊지 말자.



2021년 4월 25일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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