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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14. 2018

연예인처럼 기획사가 필요한 골목 가게들

문화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기획사의 중심적 역할이다. 대중음악,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산업에서는 연예기획사, 미술 분야에서는 갤러리, 저술 시장에서는 출판사가 예술가를 시장으로 데뷔시키고 스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기획되지 않은 스타는 없다고 할 정도로 스타 양성 과정에서 기획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골목 산업도 문화산업의 성격이 강한 분야다. 창의력과 독창적 예술성이 골목 장인으로서의 성공을 좌우한다. 예술가, 셰프, 디자이너, 혁신적인 창업가 등 골목문화를 주도하는 이들은 모두 문화산업 종사자이기도 하다. 도시사회학과 대중문화학에서도 골목 장인이 창출하는 거리 문화를 씬으로 부르며 문화산업의 일종으로 분류해 연구한다.


골목 산업이 문화산업이라면 골목 장인을 발탁하고 스타로 키우는 기획사 기능을 누가 하고 있을까? 만약 기획사 비즈니스가 활발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골목 산업을 육성하려면 여타 문화산업 업종에 존재하는 기획사 모델을 장려해야 할까?  


골목상권에 대한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고 축적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문화경제학은 단순히 정부 지원에 의한 체계적인 문화산업 육성은 어렵다는 교훈을 던진다. 지속 가능한 골목 장인 육성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골목 장인을 양성해 수익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골목 기획사의 역할이 필요하다.


사회적 기업을 '기획'하는 성수동 카우앤도그



골목 장인 육성, 주먹구구식으로는 안 될 일


현재 초밥 전문점 등 창업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의 보편적인 창업 과정은 ‘발탁’이다. 여유 있는 자산가가 자신의 단골 가게 초밥 셰프를 발탁해 창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자산가에 의해 발탁되지 못한 셰프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창업 방법은 개인 창업이다. 자신의 자금을 투자하고 가족, 친지의 돈, 금융권 자금을 빌려 가게를 연다.


자금 조달이 순조롭게 이뤄지더라도, 가게 운영을 위한 스킬, 현장훈련, 경영 기술 등은 장인의 몫이다. 케이팝(K-Pop) 스타를 제조하는 연예기획사처럼, 훈련, 데뷔, 커리어 관리 등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지원하는 기획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골목 장인 육성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학교, 백화점과 쇼핑몰, 지자체 상업시설, 청년창업몰이다.


① 학교 모델


한마디로 장진우 모델이다. 경리단길을 개척해 유명해진 기업가 장진우는 미래 창업자를 위한 학교를 운영한다. 장진우 가게에서 일하는 경험 많은 요리사들이 학생들을 직접 교육한다. 장진우 학교는 졸업생 중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그들의 창업을 지원한다. 교육-훈련-창업으로 이어지는 전형적 도제 양성 시스템을 구축했다.


장진우 모델의 한계는 규모와 종속성이다. 창업을 지원하는 학생의 수가 제한적이고, 장진우 대표가 창업 기업에 투자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창업 기업을 독립 가게로 보기 어렵다. 용산 열정도를 기획한 청년장사꾼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창업 학교를 운영하지만, 독립 가게 창업을 지원하지는 않는다.


② 백화점 식당가 모델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신규 지점을 오픈할 때 식당가를 맛집으로 채우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독립 가게에 새로운 유통 채널을 제공함으로써 성장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골목 장인을 발탁 또는 기획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발탁된 가게는 이미 유명 맛집이기 때문에 시장에 입문한 장인을 훈련해 창업시키는 고전적인 기획 모델과는 거리가 멀다.


③ 지자체 상업시설 모델


지자체가 청년창업자나 청년창업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사업도 일종의 기획 사업이다. 중소기업청이 전통시장에 청년창업몰을 건설해 청년창업자를 유치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주 남부시장, 서울 뚝도시장, 강원 원주시장, 부산 국제시장 등이 청년몰로 특화해 시장 활성화를 시도한 전통시장이다.


공폐가를 활용한 상업시설 유치 모델인 광주 쿡 폴리도 혁신적인 지자체 상업시설 모델이다. 하지만 공익사업의 일환인 지자체 상업시설 유치 사업은 지속 가능한 골목 장인 기획사 모델이 아니다. 골목 장인 기획 시스템에서 정부가 생산적인 기여를 할 수 있지만 정부 예산으로 창업자를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제 실적도 좋지 않다. 전주 남부시장, 대구 방천시장 등 청년창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가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시장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 청년창업을 유치한 전통시장이 이미 활기를 잃은 점이 가장 큰 장애 요인이다. 설상가상으로 창업자의 경험 부족, 기존 상인과의 마찰 등이 더해져 많은 청년창업 가게의 경영을 어렵게 만들었다.



전주 남부시장의 청년창업몰



식당업 투자 분야의 최신 실리콘밸리 트렌드


실리콘밸리에서 식당 창업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털이 생기고 있다. 워싱턴 DC의 한 사업가는 벤처 캐피털(이하 VC) 펀드를 조성, 다양한 식당을 동시에 기획하고 이들 식당에 투자한다. VC 펀드의 운영으로 이 기업은 다수의 식당에 투자해 위험을 분산시키고, 식당 경영에 대한 전문 지식을 축적한다. 한국의 부동산 운용 기업인 이지스운용도 최근 청년 셰프가 창업하는 식당에 투자하는 펀드를 시작했다.


VC의 독립 식당 투자는 예외적인 사례다. 대부분의 VC는 개인 식당이 아닌 프랜차이즈 기업에 투자한다. 독립 식당으로는 벤처 투자가 요구하는 수익률을 맞춰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푸드테크(Food Tech) 분야에서 상당 규모의 VC 투자를 유치한 기업은 원거리 맛집 배달 서비스, 온디맨드 배달 서비스 스타트업들이다.


크라우드펀딩도 VC의 푸드테크 투자는 아직 초기 단계다. 상당 규모의 VC 투자를 유치한 온디맨드 배달 서비스 분야도 실적 부진으로 인해 추가 투자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성공적인 골목 장인 기획사 모델의 조건


한국 상황에서 골목 장인 기획사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기획사가 직접 도제 교육, 즉 현장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한국 골목 장인 양성 시스템의 가장 큰 약점은 도제 교육이 제도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획사가 직접 재능을 평가해 연습생을 선발하고 가수로 훈련시키는 케이팝 기획사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둘째, 독립 가게로 발전할 수 있는 창업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기획사가 골목 장인을 육성해 독립시키지 않고 계열사의 직원으로 고용한다면 기획사 진입으로 기대할 수 있는 골목상권 활성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독립기업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라면, 배출한 가수들을 전속 가수로 고용하는 케이팝 기획사와는 또 다른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독립 가게 모델에서는 기획사 색깔보다는 고유의 가게 특성을 가진 자생력을 길러주는 데 힘써야 한다.


골목 산업에서 VC형 기획사가 진입할 가능성이 낮다면, 대안은 소셜벤처가 될 수 있다. 골목 산업의 공익성에 기반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골목 장인을 지원하는 소셜벤처를 육성하는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도 골목상권 소셜벤처 사업이 시작됐다. 카우앤독, 루트임팩트 등의 성수동 임팩트 투자기업과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등 소셜벤처 지원 기관의 뒷받침으로 성수동 옛 공장지역에 소셜벤처들이 들어섰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음식점, 소품, 디자인 등 골목 업종에 종사한다. 청정재료를 사용한 한식당 소녀 방앗간, 스토리텔링 디자인이 담긴 소품 판매와 카페를 운영하는 마리몬드 라운지 등 개성과 가치를 담은 독립 가게들의 창업을 지원했다. 임팩트 투자자가 사실상 장인 기획사로서 골목 장인을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성수동 임팩트 투자자가 지역 경제 활성화와 독립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골목상권에서 영업하는 일반 독립 가게를 지원하면, 이상적인 골목 장인 기획사 모델에 가까운 기능을 하게 된다. 지속 가능한 골목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골목 장인 기획사와 지원받는 골목 장인 기업들이 한 지역에 정주해 특화되어야 한다. 근거리에서 협업하고 연대하고, 지역 자원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지역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해 골목문화 리더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골목 장인 기획사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골목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전국의 기획자와 창업자들이 나서서 다른 지역과 나라가 벤치 마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획사 모델을 개발, 지역과 골목 경제 발전의 주역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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