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스페인 친구인 가리(Gari)가 살고 있는 바스크 지방(Basque country)과 독일인들의 파라다이스 휴양지인 <마요카(Palma del Mallorca)>를 다녀온 게 내 생에 첫 스페인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깨끗한 자연경관, 풍부한 햇볕과 세상 등지고 살고 싶을 정도의 삶의 여유가 내가 그 곳에서 느낀 스페인이다. 넘쳐나는 관광객과, 돈에 혈안이 된 상인들의 예의를 개나 줘버렸을 법한 바가지 물가의 온상 한 가운데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아시아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고 그래서인지 상업적인 발달은 더디다. 느리게 그러나 즐겁게. 오히려 현지를 더욱 현실적으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스페인 남자들이 제일 매력적이라는데. 젊고 매력 있는 스페인 남성들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에나 있는 걸까. 아니면 청년 인구 거진 절반이 되는 청년 실업에 일자리가 풍부한 독일과 영국으로 떠난 걸까. 신체 건강한 젊은 여성의 입장에서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은 건 매력적인 스페인 젊은 남성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거다.
입국심사는 간단했다. 대충 여권을 한 두 페이지 넘겨 보더니 입국 도장을 쾅쾅 찍는다. 출구로 바로 나가면 시내로 가는 버스 타는 곳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참 간단하게 찾아가게 만들어 놨다. 바르셀로나 공항은 공항에서부터 공항리무진인 <아에로버스(AERO BUS)>까지 와이파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나아가 바르셀로나 시내에도 곳곳에 공공 와이파이인 ‘바르셀로나 와이파이(Barcelona wifi)’를 이용할 수 있어 로밍을 하지 않아도 데이터 사용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10-20분 간격으로 공항에서 바르셀로나 시내로 이동하는 공항버스가 있으니 언제든 쉽게 이용이 가능하다. 24시간 운행이라니.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매 번 업그레이드 한다는 바르셀로나의 모습은 확실히 관광객 유치를 고민하는 국가나 도시라면 참고할 만 하다. 25분 가량 공항버스를 타고 움직이니 시내 종점인 까딸루니아 광장에 다다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의 명동 롯데 백화점 앞 정도라고 해도 얼추 느낌이 비슷하다. 수많은 관광객과 그만큼 줄지어 노점상들,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거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선진 관광도시이다. 작년 여름쯤에 처음 스페인 여행이라고 갔었던 북쪽의 시골 풍경을 머리 속에 장착하고 도착한 터라 어안이 벙벙해진다.
세상은 정말이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음을 새삼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다. TV나 인터넷 기사, 여러 곳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들을 통해 상상한 스페인의 대도시가 나의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낯설었다. 절반 가까운 청년 실업률과 경제구조 불안으로 수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는 암울한 이야기를 소재로 나만의 바르셀로나를 그려봤다. 당대 유럽을 장악하고 중남미를 식민 통치했던 에스파냐의 명성은 까맣게 잊고 말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상점들과 끊임없는 환경미화원 분들의 분주한 움직임, 고딕 건축과 모더니즘의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법한 건축물들의 조화는 어느 거리를 걸어도 짜릿하다.
축구팬의 설렘, 바르셀로나
축구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 희열을 느끼는 나에게도, 의외로 전세계 그 많은팬을 거느린 FC바르셀로나팀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반전이 있다. 축구야 대학생 때 브라질에서, 영국에서, 독일에서 또 대한민국에서. 물론 공짜표나 값이 저렴한 2부리그 경기였지만 나름 라이브 관람을 좋아하곤 했었다. 그런 내가 독일 월드컵인 2006년에 브라질에서, 브라질 월드컵인 2014년에 독일에 있었던 상황이 나름 아이러니했지만 어째 됐든. ‘바르셀로나에 왔으니 축구는 봐야지?’하는 중에 신의 한 수로마침 머무는 기간에 프리메라리그 경기가 있었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
숙소에서 지하철로 5정거장 떨어진 <캄프 누(Camp Nou)>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경기 하루 전날 밤에 FC바르셀로나 공식 웹사이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티켓을 가지고 찾은 경기장은 이미 맥주로 샤워할 정도로 술을 마셔대고 분위기를 즐기는 축구팬들로 가득했다.
또 다시 딴 길로 흘러서, 작년 월드컵 때 축구에 열광하는 나에게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를 물으면 주저 없이 팀은 독일이요(바이에른 뮌헨), 선수는 브라질(네이마르, 다비드 루이스 등)을 꼽았다. 워낙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에 집중된 이목에서 브라질 선수들이 빛을 못 보고 있는 시절이지만 그래도 팀플레이 못하고 개인기를 부려대는 브라질 선수가 왠지 모르게 좋다.
시대의 영웅 급인 메시의 부상으로 메시의 경기를 직관할 수 없으나 나의 사랑 네이마르의 경기를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8만 관중을 채울 수 있는 거대한 캄프 누 경기장에 이 날의 관객은 점유율 90%가 넘는 7만 4천여 명. 다시금 한국과 비교되는 축구장의 분위기를 체감하며 아주 시원한 경기를 관람했다. ‘제발 내가 보는 앞에서 네이마르가 죽을 쑤지 말길.’
결과는 다행히도 네이마르 2골, 수아레즈 1골로 FC바르셀로나의 3:0 대승이었다. 마지막에 양 발로 끼를 부려 상대를 한 순간 바보로 만들어 버리며 세 번째 골을 만든 네이마르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이 곳에서 처음 본 재미난 광경들이 있다.
하나, 바르셀로나 축구팀의 골수 팬으로 보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들이 서로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내 주위 자리에 앉으셨다. 동시에 검정색 이어폰을 한 쪽 귀로 착용하시는 폼이 가만 보면 보청기를 끼는 걸로 착각할 정도였다. 알고 보니 스페인 축구 방송의 중계를 들으면서 라이브로 축구를 관람하고 계셨다. 저게 200% 축구를 즐기는 꿀 팁이겠거니. 또 새삼 배운다.
둘, 태어난 지 두어 달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아기에게 유니폼을 입히고 축구장을 찾는 젊은 부부와 가족, 주말에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장인어른이 바르셀로나 팬이라, 마침 홈경기가 있는 주말에는 경기장으로 집합해야 한다는 사위,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집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바르샤 유니폼을 풀 착장하신 할머니 모임 등. 축구 사랑이 대단하다.
셋,메시는 부상 당했으나 경기장에. 너도나도메시. 한 1만명의 메시가 경기장을 매운 느낌으로 유니폼을 착용한 팬들이 많았다. 그 뒤를 이어 네이마르, 이니에타 등의 이름도 보였고 한 때의 전설이었던 옛 선수들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자랑스럽게 꺼내 입은 골수 팬들도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