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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an 17. 2018

변: 심

보통의 인생에 양념 한 스푼


변: 심

명사: 마음이 변함


한남동에 있는 <디 뮤지엄>에들렀다.

젊음을 주제로 한 전시는 사진과 그림, 설치물, 그래픽, 영상 등을 미술관 내에 자유롭게 배치하여 입구에서부터 한걸음 걸음을 내딛는 때마다 신이 났다. 근 삼 년 간은 독일과 영국에 머무르면서 틈틈이 미술관을 다녔는데, 그 때마다 그들의 전시 구성이나 작품에 대한 접근에 대해 '한국은언제쯤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나는 한국에 돌아왔고,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전시회를 찾아 다니며 한국의 전시 산업에의 변화와 발전에 새삼 놀라고 감동받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1.

나는 내 스스로 나의 이 미술관에 대한 관심의 변화가, 또 그 시간을 따라 다른 모습을 갖게 된 내가 흥미롭다.

어릴 적은, 그러니까 언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시점으로 생각을 되짚어 떠올리면, 위로 넘기는 길다란 수첩과 목에 거는 볼펜을 가지고 작품 앞에 쓰여진 작품의 설명과 해석을 베끼면서 '왜 이렇게 글이 많아 팔 아프게'라는 원망만 내심 늘어 놓았던 추억이 있다. 방학이 되면 학교에서 정해 준 몇 군데의 박물관이나 미술 전시회 중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일정이 맞는 곳을 골라 나, 아니면 친구들 중의 한 명의 어머니가 보호자가 되어 따라가 전시를 관람하고 그 앞에서 패스트 푸드 가게에 들어가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얼음이 잔뜩 들어간 콜라를 마시는 게 초등학교 몇 년간 여름과 겨울을 반복되는 경험이었다. 


2.

그 때 그 시절의 ‘띄엄 띄엄’ 남은기억의 조각은 온통 내가 주체가 되어 무엇을 했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한 것일 뿐, 정작 내가본 작품과 전시물품에 대한 건 야속할 정도로 기억이 없다. 방학 숙제로 감상문을 내야 하기에 감상문에 절 반 분량은 채워줄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정보를 기재하기 위해 팔이 빠져라 글씨를 썼던 기억은 선명한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작품에 시선을 마주쳤는지도 갑자기 의심스러워졌다. 기억이 전혀 없다. 고개를 숙이고 눈은 오로지 작품 앞에 놓인 글에 고정되어 바닥에 무릎을 괴고 허벅지에 수첩을 올려 둔 채 글씨를받아 적었으니 아마도 나는 작품을 바라보기는커녕 감흥을 느끼는 그 고귀한 순간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1관과 2관을 서둘러 돌아보고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생존의 열망만 키웠을 게 분명하다.


3.

스물 세 살 때였나, 이제는 가물가물 해 정확한 나이의 기억은 없지만 서울시립박물관에서 <모네(Monet)>의 작품전이 열렸던 적이 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의지로 네 번이나 관람을 했던 미술 전시회였다. 미술에대한 지식이 해박하지도 않고, 미술 시간에 시대별 미술 화풍과 유명한 화가, 그리고 그들의 유명 작품에 대해 기말고사를 위해 벼락치기로 암기하던 것이 전부였던 내가 두 번도 아니고 세번, 네 번을 찾아간 건 다름 아닌 모네의 <수련>을 보기 위함이었다. 웅장한 크기에 모네가 작업을 하던 순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생생한 붓 터치 하나하나가 모여 그의 집 정원에 있는 연못의 생명력을 불어 넣은 건 가만히 작품을 마주하고 있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내가 꽤나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4.

내 나이 서른. 다니고 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연차들을 이어 붙이고는 서류 상의 퇴사 일자 전에 휴가를 내고 이 주 동안 파리에 넘어가 머물렀다. 어느 날은 한 없이 걸었고, 또 어느 날은 루브르 박물관 앞에 있는 피라미드 조형물에 앉아 발을 담근 채(피라미드조형물 주위는 사람들이 벤치처럼 이용할 수 있게 턱이 있고, 여름에 분수처럼 물이 나온다) 한국에서 챙겨 간 책들을 읽기도 했다. 그 때 내가 원 없이 봤던건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는 모네의 수련 작품들이었다. 그는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반복되지만 햇볕과 바람, 구름 따위의 개입으로 하루 하루가 공통점 없이 흘러가고, 그 속에서그의 눈에 담기는 연못의 모습을 그려냈다. 감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모네의 생가로 향하는 기차에 무작정 오르기도 했다.


5.

미술관을, 또 예술 작품을 대하는 나의 모습이 바뀌었다.

어차피 사람이란 존재가 간사하기 짝이 없는데 마음 하나 바꾸는 게 대수겠나 싶다가도 분명 나의 이 변심은 내게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폭과 범위를 커다랗게 만들어 주고 있다. 또 이 것이 작품을 향한 시선을 넘어내가 어떤 무언가, 누군가를 향해 보내는 시선과 자세와도 결부가 되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 열 살의 내가 기억하는 미술관의 풍경과 삼십 대의 내가 가진 의식과 시선은 상이하다. <변심(變心)>했다. 아직 모른다. 지금의 내가 십 년 뒤, 수십 년 뒤에 또 어떠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 말이다. 나의 변심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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