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 온지 정확히 세 달 만에내 나이는 두 살이 늘었다. 그리고 몇 밤을 지새우고 나면 삼십 대 중반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우리 나이로 서른 셋. 드디어 계란 한판 됐다며 ‘인생은 서른부터’를 외치던 서른 살 때부터 지금껏 삼십 대 초반의 반열에서 정체 모를 위안을 삼아왔던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단어에서부터 중후함이 느껴지는 삼십 대중반이 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를 때면 가슴이 콩닥거린다.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이다.
24일에 가장 많이 판매가 되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할인 행사에 들어간다, 또 폐기 처분 된다.
스물 넷 겨울에는 이런 얘기를 들으며 스물 다섯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먹고 살 걱정이 없어서 이런 하찮은 레퍼토리를 걱정이랍시고 했나 싶다. 이십 대의 중반은 그야말로 어디서든 골칫거리였다. 스무 살 대학생들에게 같이 조 과제를 하고 싶지도 않고 도서관 자리는 어떻게 저렇게 부리나케 맡아버리나 싶을 정도로 도서관 자리를 차지해버리는 골칫거리이자 줄줄이 취업 낙방에 학과 교수님들의 골칫거리, 머리가 컸다고 부모님 얘기는 콧등으로도 들을 생각을 안 하고 가치관이 맞지 않다며 밥 한끼를 친 오빠와 마주하지 않던 가정에서의 골칫거리였다. 나는 문과 체질이 결코 아닌데 엄마에게 떠밀린 등살에 대학교에 갔다며, 잊을만하면 부모님 핑계를 대며 좀처럼 전공 과목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니 성적은 웬만한 대기업에 서류 한 장 겨우 낼 수 있는 성적의 <컷트라인>이었다. 코스모스 졸업을 하고 취업이 되지 않으니 잉여의 삶이라 자조하며 생각은 더욱 날카로웠고 양쪽 입 꼬리는 중력에 무너지며 밑으로 추락했다.
나는 스물 여섯 가을에야 어렵사리 신입사원이 되었다. 에스 전자 영업마케팅으로 취직하여 중남미 시장의 백색 가전 영업을 담당하고 싶다는 생각은, 교환학생으로 브라질을 다녀 온 직후인 대학교 3학년 때 부터였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던 시험전형을 붙고도 최종 면접에서 두 번이나 빛의 속도로 탈락하는 나는 그들의 재목이 아니었다. 더욱이 내가 그렇게도 염원하던 자리를 꿰차는 순간을 나의 친한 후배에게 한 번, 또 대학 동기 녀석에게 한 번. 옆에서 축하의 인사만 읊조려야 했다. 지금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매한가지일 테지만 수십 장, 아니 수백 장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고 어느 회사에 어느 직무로 지원을 했는지도 엑셀파일로 만들어 기록해두지 않으면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 중 한 군데에 나는 최종합격을 했고 신입사원이 됐다. 에스 전자와는 인연이 없었으나 그와 사촌격의 기업에서 해외에 전자제품을 파는것이 아닌, 해외 시장에 한식당을 열어 음식을 파는 사람이 되었다.
아는 동생들이 스물 아홉이 되면 어디서 수업이라도 들은 건지 하나같이 서른에 대한 걱정을 늘어 놓는다.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그저 나이 한 살 더 먹는 거라는 것을 어떻게든 나긋나긋 이야기해도 두려움에 찬 얼굴색은 바뀌지 않는다. 정확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서른이 되며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로 떠났으니 삼십 대 초반은 오로지 내가 누구이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나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보냈다. 삼십 년을 살아 오면서 끊임없이 머리로 생각이란 걸 하고 몸으로 행동이란 걸 이어갔음에도, 정작 나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허전함은 한없이 무기력한 터널로 나를 잡아 끌었다. 터널의 끝에서 <히키코모리(引き籠り),회피성 인격 장애>의 삶이 아닌 세상을 배우는 경험을 선택했다.
초라한 규모라도 사업이라는 걸 삼 년 넘게 폐업으로 마무리 짓지 않은 채 이어가고 있고 독일과 영국에서 지내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전에 비해 안정적인 수입이라곤 없고 내가 마음처럼 날개를 달고 부풀어 오를 것 같던 사업은 좀처럼 빛을 보지않아 은행 빚을 지게 되니 경제적으로는 삶이 꽤나 단조로워졌다. 결국 단조로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서른 중반을 맞으며 나는 매 달 고정적인 돈이 은행 계좌에 찍히는 월급쟁이로 복귀하였다. 금전의 보호막이 생기고 나니 다시 행복과 꿈에 대한 조급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나이가 몇인지, 초반인지 중반인지를 따질 겨를 없이 나는 또 꿈을 좇아 기분좋은 조급함을 즐기게 됐다.
초반보다 나은 하루, 이십 대 중반보다 분주한 내가 되어 시간과 세상에 쫓기지 않고 좀더 여유로운 서른 후반의 나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