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까치 Jan 20. 2018

책임질 것이 너무 많아 지쳐요

변신 - 프란츠 카프카

○ 증상
     -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데, 솔직히 지쳐가요.
     - 가족 챙기랴, 친구 챙기랴, 업무 챙기랴,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라요.
     -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가족이 답답해요.

○ 처방 책
     - 변신 (프란츠 카프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소중한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할까요? 무조건적인 사랑일까요, 쓸모가 있기 때문일까요. 뭐, 어느쪽이든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사랑받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이 '당신이 아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은 더 이상 소중한 존재가 아닌 걸까요? 


여기 하룻밤만에 '내가 아닌 나'로 변해 버린 소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설 <변신>은 그레고르가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잠에서 깬 그는 황당하게도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신해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당연히 방에서 나가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지요. 그가 진작에 출근했어야 하는 시간임에도 방에서 나오지 않자 그의 가족들과 직장의 지배인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가족들은 그레고리의 방으로 가지만 문은 굳게 잠겨있습니다. 어서 문을 열라는 가족들의 재촉에 결국 그레고리는 어렵사리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를 걱정하던 모두는 사색이 되어 도망치고 맙니다. 그들의 앞에는 커다란 벌레 한마리가 있었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가족을 위해 헌신하던 소중했던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누구든 지칠 때는 온다


그레고리는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건실한 청년이었습니다. 특히 음악에 재능이 있는 여동생을 자신의 힘으로 음악 학교에 진학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부모님의 빚을 갚는데 5년에서 6년이 걸리겠지만, 그 다음에는 대전환점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 긍정적인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레고르가 대관절 벌레로 변신한 겁니다. 왜 그런 걸까요?


그의 목표는 오로지 모든 희망을 앗아가 버린 사업의 실패 때문에 불행을 겪는 가족들을 가능한 빨리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중략) 그가 일한 만큼 즉시 중개료가 들어왔으며 그 돈을 받고 경이로워하고 행복해하는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변신>, 프란츠 카프카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혹시 그 부담이 그를 벌레로 만든 것은 아닐까요? 온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부담이 그를 짓눌러 그 스스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것은 아닐까요? 우리도 가끔 그런 생각할 때가 있지요.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자고 있는 개가 부럽다고 말입니다.

그레고리도 아무 생각 없이 기어다니기만 하는 벌레로 사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며 되뇌며 잠에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퀴벌레가 되는 것이라며 말이지요. 무능하고 혐오스러운 바퀴벌레에게는 가족들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렇게 그는 현실에서 도피한 것일지 모릅니다.



문제는 도피가 아니라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도피 좀 하면 어때요. 잠시 쉬었다가 다시 가면 되지요. 그런데 문제는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그레고리가 죽은 뒤, 가족에게서 어딘지 모르게 활기찬 기운이 느껴집니다. 하필이면 그레고리가 없을 때 말이지요. 그레고리는 적잖이 서운하겠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들(그레고리의 가족)은 시내로 전차를 타고 갔다. 이러한 외출은 세 달 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만이 앉아 있었던 차 안으로 따뜻한 햇살이 비쳤다. 그들은 의자에 편안하게 뒤로 기대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얘기했다. 왜냐하면 셋 다 모두 직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들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딸이 제일 먼저 일어나서 그녀의 젊은 몸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그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꿈이자 멋진 계획에 대한 확인과도 같았다.
<변신>, 프란츠 카프카



하지만 그들을 인정머리 없는 가족이라고 탓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레고리의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이 그들을 망쳐놓고 있었던 것일 수 있으니까요. 그레고리가 만든 그늘이 그들의 자생력을 해쳐 놓은 겁니다. 그 누구도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그레고리만 바라보았지요.


이런 경우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동작이 굼뜬 아이를 위해 옷을 입혀주고, 밥을 먹여줍니다. 공부에 서투른 아이를 위해 대신 공부를 해서 주입시켜 줍니다.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용돈을 넉넉히 챙겨줍니다. 그런 삶이 익숙해진 아이가 사회에 나섰을 때, 부모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그대로 멈춰버립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른 채, 그냥 시간을 보내지요.


그레고리가 되고 싶지 않다면, 가족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당장 헌신과 희생을 멈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당신은 내일 아침 거대한 벌레로 변신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족이 그 벌레를 죽일 것도 물론이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지나간 날을 너무 후회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