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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moon Mar 24. 2017

오사카 성, 봄의 벚꽃을 추억하며

분홍의 '봄' 이야기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버스커 버스커 - 벚꽃엔딩 中



#1. 문득 / 2017.03.24


마음까지 꽁꽁 얼리던 동장군의 기세가 한 풀 꺾이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점심시간, 사무실을 나서는 마음이 입고 있는 옷만큼이나 가볍다. 이 반가운 따스함. 얼마만인지.


기다림은 왜 이렇게 지루한 걸까. 늘 성급한 것은 바라는 마음뿐. 아예 먼발치에 있었다면 좀 더 차분했을까. 손에 잡힐 듯 말 듯 하자 더욱 보채고 싶어 진다.


길을 걷다 앙상한 나무 가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봄과는 어울리지 않는 짙은 갈색의 가지들. 오랜 시간을 추위에 혹사했던 탓인지 뻗친 가지가 꽤나 날카롭고 매섭다.


잠시 한 달 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건조한 가지들을 사이사이 꽃, 그리고 이파리들. 조금 있으면 너를 포근히 감싸줄 녀석들. 그것을 떠올리자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봄의 색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거진 녹음과 함께 초록을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바로 분홍색이 떠오른다. 그 이유는 바로 벚꽃이다.


이것은 음악 사이트의 순위만 봐도 알 수 있다. 버스커 버스커가 부른 '벚꽃 엔딩'이 무섭게 순위권으로 치고 올라오면, 그것이 바로 봄이 오는 신호이다. 나풀거리며 흩날리는 벚꽃만큼 매년 피고 지는 기억들.


이 벚꽃이라는 기억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을 뽑으라면 나는 바로 오사카 성이 떠오른다. 쨍쨍한 햇빛을 등지고 길을 걷다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다. 작년 이맘쯤이었을 것이다.






2016년 04월.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남은 것이라곤 같이 예약했던 나고야로 향하는 비행기 표뿐이었다.

너무 일찍이 예약했던 탓인지, 이별 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날짜는 다가왔다.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상당히 옅어졌을 무렵이었다. 취소할까 하다 부랴부랴 사람들을 모으고 모아 떠났다.



큰 미련이 없는 여행이었다. 일정 대부분은 오사카였고, 오사카는 내가 이미 여행했던 도시였기에.


나는 그저 벚꽃을 보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소녀 감성을 지닌, 어떤 감성적인 사람이라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 사람에게 그렇게 자랑스레 이야기하던 벚꽃. 이 날짜에 가면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을 거라 이야기하던 것이 자꾸 생각이 났다.


이것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자조도 아니었고 후회도 아니었다. 그 사람이 그리웠던 것은 더욱이 아니었다. '그냥' 그랬다. '그냥'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하지만.


나고야 주부 공항에서 나고야역으로, 그리고 나고야 역에서 '긴테츠 레일 패스'로 두시간여를 달려 오사카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약 5시간 흐른 후다. 어느새 깜깜한 밤하늘이 드리워질 무렵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뭐에 홀린 듯 오사카성을 찾아 나섰다. 경복궁 야간 개장 한번 안 가본 사람이 이럴 때는 또 분주하다.



4년 만에 만나는 모습, 그리고 그때와는 또 다른 색다른 모습. 반가움과 낯섦 그 중간 어디쯤에 나는 서있었다.



오사카 성




오사카성 초입에는 하도 벚나무가 많아서 '사쿠라 몬'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이다. 깜깜한 밤하늘과 은은한 조명. 그곳에서 빛나는 분홍의 벚꽃.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 같은 분홍의 향연. 이것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벚꽃을 본 적이 있었을까. 심호흡을 하듯 털어낸 숨. 벅차오르는 느낌으로 눈을 타고 들어오는 분홍의 색에 온 몸이 금세 젖어들었다.





수많은 현지인들. 하긴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오사카성이 우리가 여의도 가는 것 정도의 일일 테니.


유채꽃은 가족이 떠오르지만 벚꽃은 연인들이 떠오른다. 확실히 벚꽃은 연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 틈에서 남자 3명으로 구성된 우린 외로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말없이 조용히, 때론 수다스럽게. 미리 음식을 준비해 온 사람들은 벚나무 아래에서 자유롭게 앉아 여유를 즐겼다. 맥주와 오니기리, 샌드위치 등. 4월의 선선한 날씨는 과하지도 않았고 유하지도 않았다. 딱 그 정도의 기온으로 그들을 자연스레 꼭 붙어있게 했다.


이윽고 그들은 아이처럼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저렇게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남기려 했다.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의 표정이, 사진을 찍는 대상의 사람보다 더욱이 미소 짓고 있었다. 이런 게 사랑일까 싶었다. 이별한 사람의 입장에선 조금 씁쓸했다.



빛을 받은 벚꽃은 눈부시게 빛이 나고 있었다. 마치 하얀 전구들이 다닥다닥 붙어 빛을 내는 일루미네이션처럼, 새 신부의 곱디 고운 하얀 웨딩드레스처럼. 더욱이 고풍스러운 건물과 겹친 벚꽃의 모습은 몽환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걸음을 가다 멈추다, 가다 멈추다. 잠시도 똑바로 걸을 수 없었다. 분홍의 빛은 그런 힘이 있었다.


문득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머리가 마구 헝클어지더라도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서 머리에 이파리 몇 장이 아른거리도록 가만히 서있고 싶었다. 혹은 누군가를 세워두고 가지를 힘껏 흔들어 주고 싶었다. 그 찬란한 모습을 담고 싶었다.





한 바퀴를 다 돌았음에도 한동안 성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 여운은 너무 강력했다. 분홍의 빛은 이별한 사람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했다. 3개의 그림자는 2개의 그림자보다 단순한 개수론 많았지만 공허함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주어 없이 그저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어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꺼낼 수 없는 그런 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그때가 기억난다. 아니 기억이라는 표현보다는 생생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 색감과 사람들 모두. 그리고 전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딱히 없었다. 시간은 삶에 슬며시 끼어들어 '작용'하지 않았다. 시간은 단순한 촉매제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 촉매제의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은 나의 마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향이 있고 옅어지는 향이 있다. 그런 식으로 난 시간을 여기저기에 촉매제로 썼나 보다. 이전의 그 사람은 흐릿해졌고, 벚꽃의 분홍빛은 더욱 진해졌다.


그때가 문득 그리워졌다. 그렇게 난 작년과 단 하루 차이는 날짜로 똑같이 나고야 주부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날의 벚꽃을 다시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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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2016년 4월 1일의 기록. 오사카에서 벚꽃의 개화와 만개시기는 보통 4월 초이다. 3월 중순의 기온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보통 저 시기를 만개 시기로 꼽는다. 더욱이 이 시기에는 축제와도 연계가 되어 있어, 맥주 한잔 들고 타코야끼 하나씩 입에 물고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오사카 성 야간 개장의 시기는 매년 바뀌며 입장료는 약 500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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