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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moon Mar 25. 2017

혼자 여행한다는 것

Day 7-1, Paris, France



#나 혼자만이 보는 색다른 시야

낡은 가방 속 이야기를 위한 이 여행

에픽하이  (Feat. 알렉스,호란)

- 혼자라도 中 


    

프랑스 이튿날 아침.

터질 것이 터지고야 말았다. 동행한 친구의 디스크가 도졌다. 진통제에 의지하여 겨우겨우 일정을 소화하던 친구는 더 이상은 무리라며 손사래를 친다. 날벼락인지 기회인지. 그 애매함을 저울질하며 저녁쯤에 만나자는 불분명한 기약을 뒤로 하고 홀로 밖으로 나선다.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이별 택시'의 노래 가사와 같은 마음이다. 행선지는 이미 정해져있건만 마음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매번 여행 계획을 거의 홀로 짜고 늘 여행지에서도 저 멀찍이 앞장서 걷던 나였는데, 막상 홀로 내놓이자 그 쉬운 길을 가는 것에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기분 탓인가. 자꾸만 휑한 거리를 돌아본다.


그들이 사라진 공간은 큰 여백으로 남아 두루뭉술한 쓸쓸함을 자아내고 있다. 내가 가는 길 그대로 잠자코 따라와 주던 사람들이, 이따금 그 방향이 아닌 것 같다며 나를 불러주던 사람들이 이젠 더 이상 없다.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 나를 지치게도 했던 존재들이, 반대로 알게 모르게 많은 힘이 되었나 보다.


모빌리스를 끊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동한다. 마침 외국인이 시크한 표정으로 옆에 앉는다. 이제 좀 혼자라는 것이 생생히 실감 난다.


정말이지 혼자구나.

처음이다.





차창 밖으로 멍한 시선을 던지며 그동안의 여행을 되짚어본다. 12번의 여행, 그리고 정확히 16명의 사람들. 중고등학교 친구에서부터 대학교 선후배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성별도 다양하다. 이렇게 꽤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꼭 누군가와 함께였다.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좋은 점이 참 많았다. 공용 화장실과 도미토리를 죽어도 싫어하는 내 성격상 늘 홀로 감당하기엔 만만치 않은 숙박비를 나눌 수 있었고, 1인분만 주문했을 식당에서는 여러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었다. 매일 밤, 같이 떠들고 취하면서 심심할 틈이 없었고 현실로 돌아와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다.



20년 우정의 죽마고우도 싸우게 만든다는 여행이라던데. 이렇듯 신기하게도 나에겐 늘 좋은 기억만 남아있다. 뭐 투닥투닥 거린 자잘한 다툼 외에는 큰 싸움도 없었고, 그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대부분 잘 지내고 있으니. 그리고 다시 모인 술자리에서 함께했던 여행 이야기를 그리워하며, 웃으며 나눌 수 있으니.


그래서인지 난 늘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꼭 한번 여행 가자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혼자 여행지를 정하고 사람들을 모으기도 했고, 술자리에서 우연히 나온 여행 이야기에 떠났던 적도 있다.


그렇게 항상, 난 늘 누군가와 함께 여행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다. 혼자 음악 듣고, 책 보고, 영화 보고, 카페 가고, 밥 먹고. 요즘엔 가끔 혼자 술까지. 다른 사람들을 피한다기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고 표현하고 싶다. 내 자유를 침해받지 않으며 주변 누구의 자유도 침해하지 않는 그 정도의 선, 그리고 그런 시간. 그게 나에게 필요했을 뿐이다. 물론 그 시간이 남들보다 조금 더 길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수 있겠다.


이런 나를 아는 사람들은 종종 물었다. 혼자 여행해볼 생각은 없냐고.


그럴 때마다 언젠가는? 이라는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해왔다. 늘 함께였기에 혼자 있는 나를 상상하기 어렵기도 했고, 매우 독립적인 외적 성향에 감춰져 있는 의존적인 내적 성향이 드러날까 봐 스스로를 걱정하기도 했다.


결국, 나 혼자서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가장 컸던 것이다. 그리곤 그 의심을 애써 외면하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꼭 혼자 여행을 떠나고 말리라고.


그리고 오늘. 그 반발적으로 시작되었던 바람이 부분적으로나마 이루어졌다. 예기치 못하게 하늘에서 떨어진 딱 하루 동안의 시간. 그 선물과 같은 자유를 만끽하기로 한다. 마치 부모님의 곁을 떠나 처음으로 외박을 하던 초등학교 5학년의 수학여행의 그날처럼, 잠시의 걱정과 의심은 이어폰 속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이내 사그라져 버린다.


이제 평소의 내 걸음걸이만큼 마음껏 빨리 걸을 수 있고, 하루 종일 이어폰을 꽂고 다닐 수 있다. 한 곳에서만 사진을 수십 장 찍을 수도 있고, 식사를 거르는 대신에 여행지 몇 곳을 더 방문할 수도 있다. 온갖 이기심을 팍팍 부리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마음이 무겁지가 않을 것이다. 왜냐, 혼자니까.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 귀속되어 있던 자유에서, 가장 직접적인 바로 옆의 사람이 사라졌으니 오죽할까. 오늘 하루만큼은 멋대로 기질이 아주 꽃을 피울 것만 같다.


이제야, 옆에 있는 외국인이 조금은 낯설지 않아졌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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