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여대생의 여행이야기
내가 처음 홀로 떠난 여행도 '유럽배낭여행'이었다. 당연하지만 홀로 떠난다는 이야기에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정확히는 의외로 엄마가 반대를 했고 아빠는 중립을 유지했다. 하루 이틀 아닌 두 달의 여행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상대적으로 가부장적인 아빠의 중립 선언은 의외였다. 고교시절 10시까지 진행되는 야자(일명 야간자율학습)를 못마땅해하셨고, 야자 안 한다는 내 얘기에 잘 생각했다 하셨던 아빠였다. 대학생 되고 나서도 10시가 되면 전화가 와서 어디냐고 묻던 아빠였다. 물론 힘들다면 힘든 공대를 다니면서 수업이 10시 이후에 끝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아빠의 통금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수업도 아빠와 같은 학과를 진학하여 이해한 것이지 내가 공대가 아닌 다른 과를 갔다면 아빤 그마저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 배낭여행은 흔치 않은 이야기이다. 아빠 역시도 유럽 땅을 밟아 본 경험이 없다. 가깝게 일본을 다녀 온 정도가 전부라고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아빤 홀로 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다. 나이 서른 넘어 떠난 아빠의 첫 '배낭여행' 이었던 것이다. 남녀 공동 생활을 하며 호스텔을 처음 이용하며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아빤 여행이 결정되었을 때 웃으면서 방에서 누가 속옷만 입고 자도 너무 충격받지 말라는 말을 하기까지 했다.
엄마는 여전히 걱정이었지만 난 여행을 강행했다. 항공권 프로모션이 곧 끝나니 지금 예약해야 된다며 엄마에게 허락을 닦달 했다. 환불 불가라고 못 박으면서 말이다. 엄마는 매일의 생존신고, 여행 전에 계획서 제출 등을 내걸며 마지못해 허락을 해주셨다.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도 아빠의 배낭여행 경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던 거 같긴 하다. 사실 상황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나는 도피성 여행을 했고, 그런 나의 상황이 안타까웠던 엄마는 반대하고 싶었지만 반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이후는 순조로웠다. 유럽 두 달도 다녀왔는데 짧게는 2박 3일 길게 9박 10일 가는 여행을 막을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때때로 함께 가기도 했지만 사람들에 덜 알려진 곳을 좋아하던 난 홀로 가는 것을 선호하곤 했다.
그럼에도 날 걱정한 것은 동남아인 베트남 여행이었고 베트남여행마저도 무사히 마치면서 더 이상 걱정거리도 그리고 막을 핑계도 사라졌다. 게다가 오히려 여행을 권유하기까지 했다. 사실 난 지금 혼자가 아닌 동생과 함께 여행 중이다. 그리고 그 여행을 제안한 것이 엄마였다. 졸업을 앞둔 어쩌면 중요한 시기에 거의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을 해외서 보내게 된 것은 나와 달리 여행을 두려워하는 동생도 넓은 세상을 보았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홀로 다니는 것보다 신경 써야 할 거리도 많지만 이 기회도 동생 역시 홀로 여행을 떠나길 바라본다.
용감하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홀로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하지만 사실 나는 겁쟁이이다. 말 그대로 겁쟁이. 무서워하는 것도 많고 싫어하는 것도 많다. 높은 곳도 무섭고 어두운 곳도 싫다. 놀이공원의 놀이기구 하나 제대로 못 타고 혼자 잠들 때면 괜히 음악을 들으며 두려움을 쫓는다. 그렇지만 여행을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당연하다. 내가 가는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한국, 서울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물론 낯선 이방인이 되어 피해 보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선한 현지인들이 더 많다. 홀로 밥을 먹는 것도 무섭지 않고 숙소에서 새 친구를 사귀는 것은 오히려 즐겁다. 높은 곳이 무섭다면서 계단을 뺑뺑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풍경에 취해 전망대로 향하고는 한다.
외국이 두렵고, 언어를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나라는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영어는 외국어이기 때문에 영어를 못한다고 아무도 질타하지 않는다. 발음 지적도 우리나라에서나 있다. 지나가는 노란 머리 외국인이 어눌한 한국어로 인사하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어눌한 영어에도 그들은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집에서 허락받는 것이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겁 먹을 건 없다고 본다. 조심해야 할 필요성은 있지만 움츠려 들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난 제멋대로인 영어를 쓰며 여행을 다니고 있다.
오늘도 그랬다. 보스니아의 커피가 유명하다는 말에 커피숍을 찾아 처음으로 보스니아 커피를 시켰다. 독특한 커피포트에 멍하니 바라보다가 숟가락을 들고 설탕을 휘젓자 서버가 이내 웃으며 옆으로 왔다.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며 알려준다. 그냥 그렇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