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판치는 세상에서 인간의 직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역량
2020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현상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고 개인과 기업은 모두 빠르게 적응해야만 했다. 우리가 적응했던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나델라는 "2년 걸릴 디지털 전환, 2개월 만에 이뤄졌다"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나게 빠르게 디지털화가 이루어졌다. 한 층 빠르게 다가온 디지털 시대에 따라 변화한 사람들의 행동과 인프라 기술의 발전을 보았을 때, 디지털 시대의 핵심은 데이터와 AI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꽤 오래전부터 우리는 로봇들이 인간의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느낌의 의견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전산 처리, 반복 사무 업무 등의 영역에서는 이미 많은 것들이 로봇들에 의해 대체되었다. 변화에 더디고 무거운 산업으로 알려져 있는 의료, 의료기기 산업 역시 원격진료 시장의 확대 등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최근에 삼청동의 블루보틀에서 드립 커피를 주문했는데, 예전에 보았던 로봇 바리스타가 생각이 났다. 드립 커피는 균일한 속도와 정확한 리듬으로 물을 내리는 것이 핵심인데, 이 과정은 로봇 바리스타가 우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환의 흐름 속에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직장 동료와 로봇 바리스타 얘기하던 중 '역시 드립 커피는 감성이지'라는 문장에 우리 모두 동의하게 되었다.
흔히 감성, 아날로그라는 영역을 AI가 판치는, 로봇들이 세상에 많은 것들을 이끌어 가는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해답으로 생각하곤 한다. 특히나 2020년은 레트로 뉴트로 아날로그, 캠핑 등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 것 감성적인 것으로 회귀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 한 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감성으로 AI에 대응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중에 정말로 로봇이 감정을 갖고 우리의 감성을 흉내 낼 수 있게 되는 시대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미 심리 상담가와 같은 직업 역시 로봇들이 많은 부분에서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아날로그, 감성의 연장선에서 분명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영역이 앞으로 인간이 밥벌이를 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고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다. 우리가 얼마만큼의 시간을 고민하느냐는 다를 수 있지만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중 어떠한 의사결정은 매우 중요하고 결과를 완전히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결단이 따르기도 한다. 나는 인간이 월등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이 의사결정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직감적으로 전체 맥락을 파악해서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 – ‘센스 메이킹’ 능력이다.
센스 메이킹이라는 상황의 맥락을 파악하고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 말은 처음 미시간대학교의 칼 웨인 교수가 만들어 낸 단어이고, 단어 그대로 인간이 생각하기에 ‘말이 되는 (makes sense)’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말이 된다'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어쩌면 우리가 계속해서 개발해야 하는 역량일 수도 있다. 우리의 경험, 감각, 관념, 내적으로 의식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센스 메이킹의 핵심이다.
덴마크 기반의 컨설팅사 레드 어소시에이츠의 창립자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는 그의 저서 센스 메이킹에서 인문학으로 비즈니스의 문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 센스 메이킹의 다섯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그 행동 자체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자라온 배경, 그 지역의 문화, 사회의 통념 등이 모두 혼합되어 나온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저 개별적인 행동으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전체적인 맥락을 놓칠 것이다. 이것을 현상의 탈맥락화(decontextualizing)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모든 행동의 원인이 되는 것, 진실을 놓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이 어떠한 논리와 이유 속에서 특정 행동을 했는지 좀 더 깊게 탐구해야 한다.
Thin data가 아닌 thick data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데이터가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만큼 한계가 있다. 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기술 역시 함께 발전했지만 여전히 더 깊은 근원을 탐구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의 지혜를 더해 한 단계 더 깊은 인사이트를 도출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동물원은 사무실이고 초원은 현장이다. 흔히들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많이 하는데, 그 이유는 현장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고, 대화를 하다 보면 그 현장의 분위기, 그 시장의 문화를 알 수 있다. 이것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어딘가에 축적이 되어 우리의 센스 메이킹을 도울 것이다.
세 가지 추론법 연역, 귀납, 가추적 추론 중 가추적(귀추적, abduction) 추론을 의미한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방법들이나 완전한 정보가 아닌 상태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바라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때 어느 순간 창의성이 발휘되고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GPS로 단순화된 세계가 아닌 복잡한 세상의 북극성을 두고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알고리즘의 연속으로 개발된 내비게이션을 따르다 보면 스스로 어디 있는지, 본인의 위치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명확하게 우리의 위치, 향하고자 하는 방향점을 설정하고 따라가는 것이 핵심이다.
다섯 가지 원칙이 완전히 정교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국의 이 다섯 가지의 원칙은 생각이라는 것에서 발전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과 같이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고,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으로 세상에 접근하는 것이 우리의 best form, 즉 인간이 인간으로 가장 빛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센스 메이킹이라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다 아니다. 단지 우리의 강점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우리가 일상 속에서 '차가운 음식은 데워 먹어야 맛있다.'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 역시 센스 메이킹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데워서 맛있게 먹었던 경험일 수도 있고, 직감적인 느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주관을 바탕으로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에 출간된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센스메이킹을 실리콘 밸리식 사고방식, 디자인 싱킹, 빅데이터 분석 방법 등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다른 방법론들의 불완전함을 강조하면서 인간적인, 인문학적인 의사결정 방법론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지금 2021년에는 그 당시와는 많은 것들이 변해 있으며, 위에 언급된 방법론들이 시장에서 스스로 효과성을 증명하고 있다.
동시에 디지털화가 본격화된 2020년에 센스 메이킹의 힘이 약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데이터가 수집되고 알고리즘은 더욱 정교해져 AI의 가능성은 무한해졌다. 여러 가지 방법론이 혼합되어서 사용되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결국에 모든 것들은 의사결정으로 마무리지어져야만 한다. 우리의 주관적인 의사결정 역량인 센스메이킹은 이러한 디지털 시대를 오히려 레버리지 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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