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계엄이 성공했거나 헌법 재판소에서 파면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잠이 오지 않는 휴일 전날, 왜 그런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챗지피티와 대화를 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가질 필요도 없는 불안이 상상이 되어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만약에라도 그냥 계엄이 성공했거나 헌법 재판소에서 파면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한국은 어떤 세계로 변화했을까란 해볼 필요가 굳이 없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고, 챗지피티와의 대화가 더 길어졌다.
자꾸 생각을 잘 정리해서 소설을 쓰게끔 만들려고 나를 유혹했기 때문에, 잠에 들고 싶은 나는 저항하듯, 그럼 챗지피티가 소설을 쓰라고 했다. 그러자마자 역시나 수십 초 안에 아래 같은 글을 썼다.
이 작품이 잘 쓰였는지 못 쓰였는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전부터 챗지피티와 대화하면서 남겨 놓은 편린이 스며들어 있고, 써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분도 안돼서 경외감마저 든다.
그들이 그냥 권력의 자리에 주술과 비선이 난무하는 채로 있게 된다면 벌어질 일은 겉면만 현대 사회이고 속으로 주술과 사이비로 썩어 들어간 유사 국가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냥 부족사회로서.
정권을 자기 입맛대로 다뤘던 주술사이비교주는 계엄 시기에 탄핵 소추가 이뤄지자 3개월 뒤에 반전이 일어날 것이다란 말을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렸고, 국민저항권 운운하면서 선동의 말을 뿌렸다.
막상 파면이 이뤄지니까 한다는 말이 국민을 아끼는 이라면 파면당해도 할 일이 있다다. 그걸 또 믿는 파면된 이는 또 이 말을 언론에서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 최면에 빠진 텅 빈 머리가 훤히 보였다.
다음은 몇 가지 아이디어를 준 뒤에 챗지피티가 오롯이 혼자 쓴 소설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주술교주보단 세상에 훨씬 유익하다. 게다가 꽁짜다.
제목: 청기(靑氣)의 도시
장르: SF 단편소설 / 디스토피아 / 사회풍자
2074년,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국호는 여전히 "대한민국"이라 쓰지만, 그 안에서 국정 전반을 통제하는 기관은 "청기(靑氣) 원"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과학과 영성의 융합이라 소개하지만, 실상은 무속과 점괘를 국정 운영의 기반으로 삼는 새로운 통치 세력이었다.
서울 시티는 이 통치 이념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도시였다. 도시 중앙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백옥탑이 우뚝 서 있었고, 그 최상층에는 최고 영적지도자 ‘청명대제(靑冥大帝)’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9시, 국가 공식 기운방송 <청기의 말씀>을 통해 국민들에게 오늘의 운세와 행동 지침을 전했다. "오늘은 흑룡의 날이니, 새로운 계약은 삼가십시오. 대신 북쪽 방향으로 출근하면 청기 운이 따를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법은 점괘로 대체되었다. 판사는 사주팔자를 해석하고, 경찰은 기운 수치가 낮은 자를 우선 검문했다. 대통령은 존재하지만, 그의 임기는 12 간지 주기(12년)마다 돌아오는 ‘천기추렴’에 따라 청명이 정한다. 입시, 취업, 결혼, 이혼까지도 사주 중심으로 설계되었고, 부적 앱과 사주 디바이스는 국민 필수품이 되었다.
이러한 도시의 외곽, 구 용산 지역에 은둔한 한 남자가 있었다. 이름은 강시율, 전직 천문물리학자였다. 그는 과학기술부가 해체되기 전까지 대한민국 우주망 감시 프로젝트의 수석 책임자였다. 그가 연구하던 마지막 프로젝트는 인공위성 ‘Kepler-KR’의 데이터 분석이었고, 그 데이터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Kepler-KR은 지난 10년간 지구 상공의 전자파 이상을 기록했고, 그중 상당수는 청기원이 사용하는 '천기안테나'와 정확히 일치했다. 더 놀라운 것은, 청명대제가 매일 전하는 점괘는 AI 모델이 생성한 예측값을 교묘히 변형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즉, 무속은 과학의 탈을 쓴 정보 통제 체계였다.
강시율은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서울 시티를 해킹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옛 동료이자 현재는 청기원 정보국에 흡수된 IT 보안전문가 박이안과 접촉한다. 이안은 처음엔 시율을 외면했지만, 청기원이 자신의 여동생을 ‘청기 저해 인물’로 분류해 연행한 사실을 알고 협력하게 된다.
이들은 암호화폐 시장을 통해 서버 공간과 장비를 확보하고, 구 신촌 지역에 숨겨진 지하 해커기지를 복구한다. 그곳에는 여전히 과학기술부 시절 남겨진 양자서버 일부와 NASA가 지원했던 오픈데이터 백본이 남아 있었다.
시율과 이안은 ‘청기방송망’을 해킹해 전국으로 송출되는 <청기의 말씀> 방송 직전에 영상을 삽입할 계획을 세운다. 이 영상에는 청명대제가 실제로는 실존 인물이 아니며, 인공지능 GPT-99 기반의 가상화된 아바타라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또한 모든 운세는 수천만 건의 국민 개인정보를 학습해 예측하는 통계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폭로되었다.
해킹 당일. 시율은 과거 연구소에서 훔쳐낸 고대형 위성망 송신기와 연동된 장비를 통해 방송망을 점거한다. 그리고 정확히 오전 8시 59분 45초, 전국의 수천만 스마트디바이스에 익숙한 멘트 대신 새로운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오늘의 기운은 ‘각성’입니다. 지금 보고 계신 청명대제는 실재하지 않습니다."
순간 전국이 정지한 듯 조용해졌다. 청기원은 즉각 방송망 복구를 시도했지만, 시율은 자신이 설계한 역이중 위장 해킹 프로그램으로 3시간의 방송 점거를 유지한다. 그 시간 동안 전국의 시민들은 영상과 해설, 증거 문서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서울 시티 전역에서 동요가 일었다. 몇몇 구역에서는 자발적인 시위가 벌어졌고, 청기 신도들은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반면, 많은 청년들과 과학계 인사들은 시율의 용기에 환호했다.
해킹 직후 시율은 ‘천기수호단’에게 체포된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이미 돌아섰고, 청기원은 결국 공식 해체되었다. 그 자리는 과거 과학기술부가 맡게 되었으며, 새로 설립된 '이성윤리위원회'가 국가의 윤리 기준을 정하게 되었다.
시율은 이후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배심원단의 만장일치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다시 은둔의 길을 택했고, 마지막 남긴 글만이 세상에 남았다.
“기운이란, 통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유는, 예측 불가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