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필요해
너는 왜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지냐?
우리 엄마가 술을 마시면 아빠가 늘 하시는 말씀이다.
엄마는 술의 힘을 빌려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속에 담아두었던 말, 남의 험담, 험한 욕을 하는 사람이다.
평소엔 착하고 순한 엄마가 무서워지는 순간이다.
그런 엄마를 보며 측은하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술을 마셔야 속에 있는 말을 꺼낼 수 있는 건가?
그냥 맨 정신으로 진지하게 대화할 수는 없는 걸까?
이 사실을 깨달은 건 중학교 사춘기 시절이었다.
우리 집은 대화가 안 되는 집이다.
겉으로 보기엔 화목해 보일지 모른다.
서로 장난도 주고받고,
시시콜콜한 잡담을 잘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작 깊이 있는 대화를 하려고 하면
아빠는 얼굴 표정이 굳어지면서
밥 먹자
"됐어, 이제 그만 얘기해. 이미 다 지난 일이야."
라는 태도를 보이셨다.
어느 날은 이런 일이 있었다.
큰아버지 생신 파티에서 다 같이 술잔을 기울였다.
모처럼 축하할 일이니 분위기도 좋아
다 같이 마시는 분위기가 당연한데,
우리 가족은 엄마에게 온갖 레이더가 집중된다.
아빠: 자네는 한 잔만 딱 더하고 말아.
오빠: 엄마, 천천히 마셔.
나: 이제 그만 마셔도 되지 않을까?
가족끼리 모이는 자리에 가면
엄마가 주량을 조절을 못하기 때문에
온 가족이 신경을 쓰면서 한 마디씩 던진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아들이 자꾸 눈치 줘서 못 마시겠네~",
"알았어~ 이거 한 잔만 딱 마실게~"
끝까지 술병을 기울이는 걸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옆에 있던 사촌 언니의 술잔을 몰래 뺏어 마시기도 했다.
아빠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내가 그만 마시랬지?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식당 속에서 우리 가족이 앉은 테이블만 새까맣게 어둠이 낮고 짙게 깔린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아.. 오늘도 술 때문에 다투시겠다.. 말려야지.."
옆에 있던 오빠도 한숨을 내쉰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에 돌아오면서
엄마는 아직 덜 깬 술의 힘을 빌려
아빠에게 큰소리로 얘기한다.
"내가 뭘 얼마나 마셨다고 구박하고 그래!!"
감정이 격해지면서 아빠도 평소에 꺼내지 못할 서슬 퍼런 칼이 든 말을 서로에게 집어던진다.
"내가 없어져야 정신 차리지?"
"오늘 한 번 끝을 보자는 거야?"
아빠는 감정이 격해져 손에 든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깨트리고, 엄마는 세상 다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는다.
그럼 오빠는 엄마를 막아서고 나는 아빠를 막아선다.
진정하라고 아빠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오빠는 아빠 탓만 하지 말고 엄마의 잘못도 생각해 보라며 타이른다.
그렇게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면
꼭 엄마에게 먹고 싶은 걸 묻는다.
우느라 지쳤을 테니
쌓인 감정들을 쏟아내느라 배고플 것이다.
그럼 엄마는 항상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는 노래가 있는데
치킨을 드시고 싶으셔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그리고 맛있는 치킨이 오면 아빠와 엄마를
한 테이블로 불러들인다.
아빠는 먼저 엄마에게 소주 한 잔을 건네며
화해를 시도하고 엄마는 좋아하는 치킨과 술이 있으니 받아들인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두 분이서 평소처럼 농담도 주고받으며 잘 지내신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
아니 내가 보기엔 부부 싸움은
치킨으로 무 베기 일지도 모른다.
늘 그랬듯 부모님이 다투면 중간에서
둘의 사이가 다시 잘 붙을 수 있도록 이야기한다.
"아빠, 엄마가 이제 술 적당히 마시겠대~
그러니 화 풀어 응?"
"엄마! 아빠가 구박해서 미안하대~ 아빠가 엄마가 좋아하는 치킨 사 왔어 먹고 화 풀어 응?"
이렇게 서로의 말을 좋게 번역하며 가정의 통역사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곧 잘 대화를 나눈다.
"당신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어요"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이야기한다.
"저는 이미 불편한 상황들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화해하는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배웠어요."
우리 집은 여전히 대화가 잘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까지 소통이 부족하면 안 되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혹시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그래도 괜찮다.
나 역시도 이런 과정들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소통은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것을 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것, 그거 하나면 된다.
누구나 내면 속에 깊은 상처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함께 이야기 나누기 위해선
꼭 소통이 필요하다.
오늘도 소통하는 하루가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