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주입니다. 이번에 실망하며 빠져 나가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주주 명부가 많이 변경되었을 것 같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주식 꽤나 하신다는 분들 중 삼성전자를 안 들고 계신 분들은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통계는 연합뉴스에서 제시한 2023년 12월 기준 주주 현황입니다.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주식 투자자 중 520여만 명의 선택을 받은 이른 바 국민주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파이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국민주로 불리던 삼성전자의 부진이 심상치 않습니다.
물론 삼성전자가 모바일 붐과 메모리 슈퍼 사이클에 제대로 편승하면서 주가가 급등하던 2010년대 초반에도 언론들의 공격은 있어 왔습니다. 삼성전자 주식은 당시 코스피 상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급격한 상승 곡선을 이루면서 급성장 하고 있었고, 언론들과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에 대한 장밋빛 미래와 거품론 사이의 첨예한 대립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위기론 내지는 거품론을 주장하던 언론들을 번번이 삼성전자는 넘사벽의 역량과 실력으로 잠재워 버렸습니다. 다른 주식들은 몰라도 적어도 삼성전자는 투자하면 손해 보지 않는다는 마인드는 삼성전자의 최전성기에 쌓인 명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을 보면 그때의 영광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고, 연일 미래가 어두워지는 전망들만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왜 국민기업이라 불리는 삼성전자는 동네 북으로 전락했을까요?
저는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두 사례들을 차례 차례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삼성전자의 최근의 위기는 차세대 먹거리로 지정한 사업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상황과 궤를 같이합니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파운드리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본래 삼성전자 SYSTEM LSI 사업부 안에 속해 있는 팀 중 하나였습니다.
주로 내부 물량을 소화해 왔고, 소수의 국내 시스템 반도체 수요를 충당하면서 명맥을 유지해 왔었습니다.
하지만 영광의 한 때도 있었습니다. 삼성 파운드리 팀은 한때 애플의 A 프로세서 물량을 독식했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본래 A 프로세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주요 고객 중 하나였습니다.
아이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삼성전자는 꾸준히 애플에 AP를 납품해 왔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삼성전자가 갤럭시 S를 출시하면서 애플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진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적과의 불편한 동침은 A10. 즉 아이폰 7 시리즈가 출시되면서 종료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애플은 삼성 파운드리에서 TSMC로 파운드리 사를 변경하면서 삼성과의 인연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파운드리 균형추는 급격하게 TSMC로 기울게 됩니다.
물론 이 당시 삼성의 파운드리는 중요한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독립 사업부도 아니었고, 시스템 사업부 안의 팀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당연히 설비투자 우선순위도 메모리 반도체에 밀려나 있었던 변방의 사업이었습니다.
이런 변방의 사업을 메인 스트림으로 끌어올린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이재용 회장입니다(당시는 부회장이었죠).
이재용 회장은 2017년 5월 12일 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파운드리를 독립 사업부로 승격합니다.
본격적인 TSMC와의 한판 승부는 이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당시 삼성전자에는 캐시카우인 메모리 사업부가 경기 사이클을 심하게 탄다는 약점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제고하기 위하여 파운드리 사업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었습니다. 팀으로 존재하던 파운드리가 사업부로 독립하고 메모리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현금을 파운드리에 재 투자하면서 삼성파운드리는 급성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당시 뉴스 중에는 "파운드리 사업 6년차 삼성 엄청난 성장을 이루다" 등등 파운드리 사업을 대대적으로 띄우면서 차세대 먹거리로서의 기대감을 증폭시킵니다. 하지만 결과는 보시는 것처럼 TSMC와의 승부는 고사하고 생사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며칠 전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된 바, 평택의 파운드리 라인 중 일부가 셧다운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반도체 공장이 감산을 하면서 생산량을 조절하는 사례는 있지만 아예 공장 자체를 세우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공장을 셧다운 하는 이유는 더이상 적자를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도체 공장은 하나의 프로세스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라인을 세운다는 것은 곧 프로세스를 멈춘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곧 설비를 세운 뒤 손해를 보게 될 감가상각, 장비 유지비, 그리고 재가동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등 삼성전자가 떠안아야 할 유 무형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적자를 막아보겠다는 고육책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왜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사업부 독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이한 것일까요?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관련된 악재만 정리를 해도 이 글을 다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1. 엑시노스 2500 갤럭시 s25 탑재 불발!?
2. 구글 차세대 ap 삼성 파운드리에서 TSMC로
3. 퀄컴 3나노칩 전량 TSMC 행
4. 삼성-네이버 합작 마하 프로젝트 좌초
5. 테일러 제 2공장 보류
6. 평택 P4 전 라인 메모리 전용으로 변경
7. 평택 파운드리 라인 30% 가량 셧다운
줄줄이 악재만 터지고 있는 삼성 파운드리 정말 괜찮은 걸까요? 제 결론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호재 하나 없이 악재만 줄줄이 터지지만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이유는 파운드리 사업이 삼성 반도체의 미래 먹거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파운드리를 사업부로 독립하면서 내세웠던 논리 중 하나는 메모리 사업이 사이클을 타는 경기에 민감한 커머디티 성질의 사업이라면 파운드리는 경기 사이클의 헤지가 가능한 비교적 안정적 사업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즉 메모리가 다운 사이클을 타면서 적자를 내더라도 파운드리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보전이 가능한 사업 구조를 만듦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경기 사이클에 상관 없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는 조직으로 건강하게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파운드리 사업이 순항할 것이라고 여긴 배경에는 충분한 내부 물량, 그리고 발빠른 기술개발을 통한 빅테크 고객 유치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2019년 세계 최초로 7나노 EUV 공정 양산을 성공시키는 등 나름의 의미 있는 투자 성과들을 내기도 했습니다. 3나노 GAA도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하는 등 삼성 파운드리는 꽤 여러 가지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10나노 이하 공정으로 가장 먼저 치고 달렸던 것도 삼성전자였으니 기술 개발 역량에 대해서는 꽤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삼성파운드리는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기술을 개발해 놓으면 고객사가 알아서 붙을 것이라는 사고 방식은 메모리적 사업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메모리는 JEDEC에서 선정한 표준 스펙에 맞추어 개발이 진행됩니다. 어느 정도 레퍼런스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 표준에 따라 제조사마다 약간의 커스텀을 하여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메모리의 사업 방식입니다.
그래서 공정 설계도 구성 자체가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어느 회사가 수율을 빨리 안정시켜 많은 물량을 뽑아 냄을 통해 단가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얻는가가 메모리 사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삼성전자가 잘해 왔던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대량 생산체계를 빨리 갖춰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삼성의 사업 방식은 메모리에 특화된 사업 방식입니다. 우리가 상대 회사보다 더 단가가 싸고 더 고급 공정에서 생산한 메모리를 판매하고 있으니 우리 것 사가세요! 하면 고객이 몰려드는 것이죠.
하지만 파운드리는 다릅니다. 표준에 따라 기술 개발해 놓고 양산하면 가지고 가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저히 고객 특성에 맞춰 고객이 원하는 물량을 고객이 원하는 날짜에 고객이 원하는 스펙으로 공급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파운드리 사업의 특징입니다. 메모리가 갑의 사업이라면 파운드리는 철저한 을의 위치에서 진행되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삼성은 창사 이래 을의 위치에 놓였던 적이 별로 없는 기업입니다. 대기업으로 성장한 후에는 하청 후려쳐서 단가 낮춰서 대량 생산하는 데에 특화된 갑 기업이었습니다. 삼성이 기술을 개발해 놓고 상대적인 우위에 서서 고객사들에게 "우리 이 기술 있으니 우리 라인 활용하세요!"하면 고객사들이 혹하고 밀려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패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삼성의 갑 마인드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네이버 - 삼성 합작 마하 프로젝트 좌초 사건'입니다.
네이버는 자체 개발 칩으로서 마하를 생각하고 있었고, 설계 또한 네이버 클라우드의 특성에 맞춰서 진행되길 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하 칩은 보도가 나올 당시부터 판매불가칩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오로지 네이버만을 위한 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NPU 기반 AI 가속기가 이런 형식으로 생산됩니다. 오로지 자사의 특성에 맞춘 설계를 하여 자사만 사용하는 주문형 반도체의 끝판왕이 바로 AI 반도체입니다.
그러나 삼성의 생각은 달랐죠. 마하를 대량생산하여 다수의 저렴한 AI 가속기를 원하는 다수의 고객에게 팔기 위해 마하를 개발부터 범용칩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삼성이 고객인 네이버의 요청을 묵살했다기 보다는 삼성 파운드리 입장에서는 물량을 대량으로 뽑아냄을 통해 수율 안정화와 수익률 견인을 꾀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파운드리 사업의 본질은 얼마나 많은 물량을 뽑아내서 얼마나 많은 고객사들에게 뿌릴 것인가에 있지 않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스펙의 반도체를 고객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물량을 공급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운드리를 통해 생산되는 칩은 물론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와 같은 범용칩도 있지만 대부분 고객사의 특성에 맞춘 ASIC 즉 주문형 반도체입니다.
물론 파운드리 사업이 절대 갑도 절대 을도 존재하지 않는 상호 협력의 사업모델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칩 생산을 의뢰하는 팹리스 쪽에 무게중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삼성이 욕심을 버리고 네이버에서 의뢰한 1조원 상당의 마하 프로젝트를 네이버 요청에 맞추어 진행했다면 1조원 확정수익은 물론이며 마하가 성공사례로 기록될 경우 더 많은 팹리스들이 삼성과의 협업을 진행할 수 있는 물꼬가 되었을 겁니다.
결국 삼성 특유의 군림하는 갑 마인드를 버리지 않는다면 파운드리 사업은 앞으로도 쭉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들이 가진 기술과는 별개로 사업에 임하는 마인드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너무나 유명한 이슈입니다. HBM, AI 반도체, DDR5 등 현재 반도체 씬에서 핫한 이슈에 전혀 편승하지 못하는 삼성전자의 문제가 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두 축인 메모리와 파운드리 중 파운드리가 죽을 쑤고 있다면 본 사업인 메모리 사업이라도 잘 한다면 그나마 파운드리에서 새는 바가지를 메모리가 막는 구조로 파운드리가 완전히 자리를 잡기까지 좀 더 버틸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메모리조차 사업의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전의 메모리 사업이 JEDEC 표준에 맞춰 대량 생산을 해 놓으면 고객 사에서 대량으로 물량을 받아가는 커머디티 형 사업이었다고 한다면 현재의 메모리 사업은 고객 맞춤형 사업 모델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즉 반도체 산업이 점차 AI 반도체로 이행하면서 반도체가 수행해야 할 연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이를 위해 고사양의 메모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각광을 받는 것이 D램 여러 장을 적층하고 이를 TSV로 연결한 HBM입니다.
D램을 적층하고 이를 TSV로 연결한 후 이를 프로세서 바로 옆에 어드밴스드 패키징으로 조립하는 형태의 반도체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엔비디아의 H100, H200, 블랙웰 GPU 시리즈 등이죠. 뒤늦게 AMD에서도 MI 시리즈로 AI 가속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그 점유율이 미미한 상황입니다.
중요한 것은 SK 하이닉스에서 HBM이라는 이슈를 선점하고 10년 동안 중단 없이 꾸준하게 기술개발에 매진하여 그 과실을 지금 획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SK 하이닉스는 엔비디아라는 대형 고객을 잡았고, 그들과 함께 A100에서부터 HBM 협력을 거의 독점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2019년 GDDR과 파운드리에 집중하면서 HBM 사업부를 일시 해체하는 정책 실기를 저지릅니다. 그리고 삼성전자 HBM 사업은 지금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객과 협력하면서 고객사가 원하는 스펙을 맞추어 상호 협력하에 제작해야 하는 HBM 사업의 특성상 삼성전자가 주로 해 왔던 메모리 사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의 사업입니다. 고객과의 긴밀한 소통이 HBM 사업 성공의 열쇠일 것입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역시 바뀐 사업 구조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대응력에 문제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휘둘리는 형국입니다.
이야기를 정리하겠습니다.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 현재의 이슈 편승 실패는 기업의 명운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래도 현재도 실패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이유는 딱 한 가지인것 같습니다. 사업 방식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일방적으로 찍어낸 뒤 우리 것 사가세요 하던 시기는 갔습니다. 이젠 고객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내 것을 내려놓고 상대방과 상호 배려와 조율을 하며 사업을 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 했습니다. 더이상 갑 마인드는 설 곳이 없습니다. 찍어낸 물건을 팔아 제끼던 시대는 갔습니다.
삼성전자가 사업 생리의 변화를 적응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몰락한 일본 전자 기업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이미 그들의 사업은 상당부분 중국 업체들에게 추격을 허용하거나 추월당하고 있습니다. 사업 생리의 변화를 캐치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갑 마인드를 내려놓지 못한다면 삼성의 앞날도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 마인드의 변화는 경영진이 이끌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 경영진에게서 사업 마인드의 변화를 바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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