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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Aug 10. 2015

영화관 속 플리마켓

당신에게도 용기가 필요할까?


당신에게도 용기가 필요할까?


  영화관에서 하는 플리마켓은 처음이었다. 참여했던 플리마켓은 기껏해야 소소시장 밖에 없지만 아무래도 좋다. 나는 여전히 플리마켓 초짜라 뭐든지 처음이고 그래서 매번 떨린다. 유명한 멀티플렉스 홈페이지를 구경하다가 플리마켓을 여는데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메일을 보내면 된다는 공지를 보고 바로 메일을 보냈다. 다섯 권의 그림책을 독립 출판했고, 플리마켓에서는 캘리도 써드려요. 영화관에서 여는 행사고, 영화에 관련된 행사라 좋아하는 영화 대사들로 채운 캘리엽서도 열심히 만들어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답변은 그 주 주말이 지나자마자 왔고, 참가팀이 많아 행사를 더 크게 바꿔 행사 날짜도 바뀐다는 내용이었다.


  바뀐 날짜는 일정이 있어 하루 종일 플리마켓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두 시간만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전날 미리 캘리엽서도 많이 써놓았고, 그림책까지 미리 잔뜩 싸놓은 짐을 들고 플리마켓 시작 전부터 영화관에 도착했다. 주말 영화관이지만 오전이라 한산했고 나는 조급해진 마음으로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캘리 엽서가 계속 테이블 위에 놓여있기만 하니 잘 안 보이는 것 같아 작은 액자도 몇 개 사들고 가 엽서를 끼워 넣고, 책도 잘 보이게 놓았다. 지켜보시던 주최 측에서 곧 책을 세워놓을 수 있게 소품도 챙겨주셨다. 여러 번 이리저리 배치를 바꾸고 잠시 자리를 맡아주는 친구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그 날은 하루 종일 영화관에 사람이 많이 없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손님은 거의 없었고, 내가 돌아왔을 때도 사람이 없어 옆 테이블에 있었던 소시민워크분들과 이야기를 꽤 나누고, 가져오신 책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셀러분들의 제품도 구경하며, 무엇을 살까 고민도 하고 캘리엽서도 써드렸다. 그러다 아주 조용히 어느 학생이 다가왔다. 정말 조용하게 캘리엽서를 가리키며 내게 원하는 문구도 써주는지 물어보았고, 나는 당연하다고 답했다. 원하는 문구가 있으면 써달라고 잘라놓은 종이를 건네주었는데 - 이제는 따로 캘리 문구를 적어서 받을 수 있는 종이도 마련했다 -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럽게 적어 건네준 문구가 마음이 아려왔다.


  나도 하루에 16시간씩 쉼 없이 공부만 하던 고3을 보냈다. 그래서 학생이 종이에 조심스럽게 써주었던 대학에 대한 소망이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그때는 그게 내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얼마나 숨죽여 품고 있던 꿈일까. 그 친구가 고른 엽서는 <용기를 보다듬는 레시피>의 어느  한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캘리엽서를 쓰기 위해 엽서를 고를 때는 원하는 문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엽서를 고르기 마련이었다. 그 학생에게도 용기가 필요했을까? 엽서처럼  마음속 용기를 잘 보듬어주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쓴 캘리 엽서를 건넸다. 꼭 될 거예요   힘내세요라는 말도 덧붙여서. 플리마켓 내내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서 그 학생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학생이 이번 겨울에는 꼭 꿈을 이루기를.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은 하루에도 이렇게 작은 사건이 켜켜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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