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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Oct 19. 2015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나는

이 순간을 리플레이 한다면


이 순간을 리플레이 한다면


  무주에서 함께했던 보따리단에서 연락을 받았다. 아는 분께서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플리마켓을 담당하는데, 괜찮다면 그분께 연락처를 전달해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정말 좋아요! 라고 얼른 답장했다. 영화제 플리마켓분들과 여러 번 메일과 연락을  주고받다 확정을 받은 후에, 나는 또 열심히 마켓에 가져갈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처음에 비해 마켓용 가방 싸는 솜씨도 훨씬 능숙해졌고, 예전보다 긴장하지 않아 나 스스로 한 뼘 성장했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새로 가지고 갈 캘리엽서도 집에서 한가득 썼다. 유명한 글이 아니라 좋아하는 글을 넘치게 담았다.


  재미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부천판타스틱영화제도 꼭 한 번 오고 싶었는데, 이렇게 올 줄은 몰랐었다. 약간 이르게 도착해 테이블에 그림책과 엽서들을 잘 펼쳐놓고 여기저기 구경하기 시작했다. 플리마켓은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제품이 많아 나는 매번 언제 또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제품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이걸 살 수 있는 기회가 평생 여기 딱 한 번이라면 어떻게 하지? 내가 가져가는 그림책과 그림공책, 엽서와 캘리엽서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딱 하루 열리는 플리마켓이라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보는 게 참 재미있었다.


  어느 예쁜 여성분은 내게 연인에게 보내는 사랑스러운 편지를 캘리로 써달라 말하셨고, 어느 친구는 우연히 만난 내가 반가워 정말 좋아하는 글귀를 써달라 하기도 했다. 어떤 분은 친구분들과 함께 플리마켓을 구경하셨는데 그림책 제목이 마음에 든다고 선물을 꼭 해주고 싶다며 한 권씩 사가셨다. 고3 동생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며 한참이나 엽서를 고민하다 사간 스태프분도 계셨다.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내 그림책과 엽서를 사가셨다. 나에게는 모두 귀중한 순간이었는데, 그 예쁜 마음을 받게 되는 분들 모두 내 마음과 선물을 하는 분의  마음속 따뜻함을 느끼셨을까?


  마켓 폐장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급하게 어느 할아버님께서 조금만 더 있다가 짐을 싸면  안 되느냐 물어보셨다. 나는 마음껏 구경하시라고 답하고 할아버님을 기다렸다. 할아버님은 내가 써놓은 모든 캘리엽서를 하나씩 아주 꼼꼼하게 읽어내려 가셨다. 천천히 엽서에 적힌 글귀마다 어떤 내용인지 낱낱이 읽으시면서, 엽서 몇 개를 계산해달라고 하셨다. 글씨가 좋아 꼭 사고 싶다고 덧붙이셔서 나는 웃으며 포장을 시작했다. 곧 오늘 하루가 나의 기억에서 예쁜 추억으로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캘리 엽서를 쓸 때 나의 가슴을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만들어 주는 글을 소중히 품고 있다 한 글자씩 그 마음을 담아 쓴다. 할아버님이 그런 나를 알아주신 것만 같아 기뻤다. 지친 날이 찾아오면, 이 순간을 여러 번 리플레이 해야겠다. 머리와 마음으로, 그 대화와 웃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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