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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Apr 05. 2022

2022 취침 독서기록 1

<숨>, <밀크맨>,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2022년에 읽은 책 중 일부를 기록합니다.


<숨> 테드 창, 김상훈 옮김, 엘리, 2019

    읽다 만 책, 사두고 안 읽은 책 읽기에 조금 더 힘을 내고 있다. 읽고 있는 책 목록에 있는 책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양으로 늘어난 것이 압박을 주기도 했고,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잘해야지 하는 다짐으로 <숨>도 마저 읽었다. 테드 창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후로 오래간만에 다시 집었다. 구매는 두 권을 같이 했으나, 각 중단편의 세계가 워낙 다채롭고, 몰입이 충분히 필요한 작가라고 느끼기도 했기에 연달아 쉬운 마음으로 읽기는 어려웠다. 편하게 다시 집을 수 없어서, <숨>이 읽다 만 책 목록에 있던 것이겠다.

    수록작 중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부분은 길기도 길고 몰입할수록 피곤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 많았던 터라 한 번에 많은 양을 읽기 힘들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가상 세계에서 반려 동물을 키우며 그 책임감과 미래를 계속 고민하는 관리자 및 유저, 아바타들의 이야기이다. 서비스의 시작부터 원치 않는 굴곡까지 모두 세세하게 다루기 때문에 소설이 주는 무게감이 압도적이어서 읽고 난 후에는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현실 관련 내용은 한동안 한 글자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과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도 인상 깊었다. 나는 테드 창을 읽을 때마다 작가가 '기술이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위 두 개의 단편은 기술을 통해 자신을 어떻게 마주 볼 것인가, 또는 어떻게 왜곡하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나도 기술로 나를 왜곡해서 바라보고 있겠지. 아니, 정정해야지. 기술이 아니어도 사람은 스스로를 마주 보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단편 속 인물들처럼 기술을 통해 나 스스로 어떤 부분을 왜곡하는지 깨닫게 된다면 서서히 무너지지 않을까?


<밀크맨> 애나 번스, 홍한별 옮김, 창비, 2019

    김명남 번역가의 추천을 보고 읽기 시작했다. 좋은 번역가는 책 추천도 잘한다는 강한 믿음이 있고, <밀크맨>도 그렇게 시작했다. 책은 세상과 자신에게 일어난 일, 주변의 반응을 쉼 없이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유쾌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도 읽다만 책 목록에 있었다. 감정적으로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졸리는 느낌에 지쳤다.

    그래서 책이 아주 잘 쓰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매 순간 원치 않는 상황이고 바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지도 않을 만큼 몰입하게 하고 고통을 느끼게 한다. - 하지만 주인공은 시종일관 적당히 무디고 건조해서 이 공포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 내게는 공포가 너무 생생했다.  

    책의 배경인 아일랜드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읽었기 때문에 읽는 중간중간  역사들에 대해 찾아보았다. 물론 역사적 사건들을 정확히 알지 못해도 책을 읽는 데에는 문제없다. 주인공의 시선으로도 아주 많은    있게 되기 때문이다.  상황 안에서 개인에게 강요되는 삶과 태도, 감내해야 하는 고통들이  쓰여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주인공은 건조하고 유머러스하다.  덕에 공포에 질려가면서도 어찌어찌 읽어냈다. 다시 읽을 자신이 있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김은령 옮김, 김영사, 2020

    호프 자런의 <랩 걸>을 기대하며 읽었지만 <랩 걸>처럼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인간이 지구를 어떤 방식으로 망가뜨리고 있는지 알고 싶은가? 이 책을 추천한다. 인간은 온갖 방법을 통해서 지구를 착취하고 탐욕을 퍼트린다. 그럼 개개인으로서 지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고 싶은가? 마찬가지로 이 책을 추천한다. 아무리 적어도 한 개 이상의 방법에 대해서는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각기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간다. 각자가 무거운 추를 놓고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다를 것이다. 내게 중요한 것을 포기하라는 말은 윽박지르는 것처럼 들리더라도, 다른 조건이나 항목이 조금이라도 덜 중요하다면 그것을 조금 덜 누리는 방식으로도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호프 자런은 책에서 다양한 소재로 촘촘히 나누어 숫자와 추억을 적절히 섞어가며 세상의 변화를 짚어간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조금 덜 누리더라도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자'는 바람이라고 이해했다.

    최근에는 환경에 대한 책을 많이 읽게 된다. 일부러 찾아 읽는 것은 아닌데, 읽고 있는 대부분의 책 - 기후, 지질, 동물 등 많은 분야 - 에서 환경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곳이 지구이기 때문이겠다. 다만 '이 지구가 없다면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정신 차리자'는 말로 가득한 책을 읽고 있으면 기운이 쭉 빠진다. 나 혼자 무엇을 할 수 있겠어. 호프 자런의 책에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 호프 자런은 그들을 다독인다. 각자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하자. 손 놓고 있지 말자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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