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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잉크 Jan 02. 2021

영화보다 더한 절망을 안겨주다

다행이란 말이 괜찮아지기까지


그토록 기다렸던 2020년이었건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기다리던 해였다. 어린 시절 보았던 애니메이션 탓일까, 2020년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2년 차에 접어든 사업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해외에서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이 지난해 말 플랫폼 개발을 완성하고 이제 본격적인 마케팅을 앞두고 있었다. 


새해 출발이 좋았다. 국내 1위 통신사와 중국 현지의 프로젝트에 조인되었다. 마케팅 비용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적어도 코로나 19의 역풍을 맞기 전까지는 아마 많은 이들이 나처럼 새해에 대한 기대를 품었으리라.  


가족끼리 단출한 파티를 하며 2020년 희망찬 새해를 맞았다. 

지난 1월 코로나 19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 나는 북경에 있었다. 방학을 맞아 가족들은 먼저 서울에 들어갔고, 혼자서 설날을 기다릴 때 우한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북경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 봐야 2명 정도 확진이었으나 미세먼지 농도가 300에 가까워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베이징런이 마스크를 쓰는 모습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며칠 뒤 설 연휴를 맞아 서울에 들어왔고, 서서히 한국도 코로나 팬데믹에 휩싸였다. 


일단 북경 귀국을 미루고 재택근무에 들어갔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일이 지날수록 중국은 해외 입국자에게 더욱 굳게 문을 걸어 잠갔고,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커질 때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안타깝게도 검사 결과 암입니다

아내가 가슴에 멍울이 만져진다며 검사했을 때만 해도 의사는 웃으며 암이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해외에서 거주하니 온 김에 조직검사를 권했는데, 암이라니…

예상치 못한 답에 아내와 나는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내는 그 자리를 나와서야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래도 초기에 발견된 것이라 수술을 잘 받으면 괜찮을 거라는 말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어느 가수가 노래했듯 상황은 더욱 안 좋게 흘러갔다. 당시만 해도 수술 잘 받고 빨리 북경 집으로 돌아가자 생각했고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 뒤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모른 채… 


수술과 함께 진행된 조직 검사에서 나온 암의 성질은 삼중음성. 즉,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수술로 암 덩어리를 떼어내고 원인에 대한 치료를 해야 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표준으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 의사의 설명이었다. 수술 담당의는 4차 항암을 권했는데 종양외과로 가자 6차로 늘어났다. 생각지도 않았던 항암을 6번이나 받아야 한다니 갈수록 태산이었다. 


입원 중 병실에서 아내가 마련해준 내 생일상 이벤트. 

무던히도 시간이 가지 않던 두 계절을 보내고 여섯 차례의 항암과 20번의 방사선 치료까지 그 힘겨운 터널을 지났을 때 이미 2020년은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돌아봤을 때 기억에 남는 것이라곤 알코올 냄새 가득한 병원 풍경이 전부였다. 코로나 19로 여행도 외출도 조심스러운 터라 더욱 그랬다. 



'다행'이란 말이 괜찮아지기까지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은 가족, 친구, 지인들은 아낌없는 위로를 보내주었다. 그중에서 빠지지 않는 말이 '정말 다행이다'였다. 지금은 그 말의 본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지만 괜찮아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들 눈에는 잠시 들어왔다가 초기에 암을 발견했으니 그야말로 다행이었을 텐데 그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게 왜 다행일까? 한 순간에 암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린 것이 어떻게 다행일까... 내가 이러하니 아내는 오죽했을까? 아직도 오진은 아니었을까, 온전히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내는 더욱 힘들어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들어했던 지난 한 해.

우리 가족에게도 영화보다 기막힌 절망을 안겨주었다.



*아듀! 2020 뜨거운 안녕~ 시리즈


2. [간병일기] 그렇게 우리는 성숙해져 갔다

https://brunch.co.kr/@whiteink/63


3. 영화보다 더한 절망을 안겨주다(2)

https://brunch.co.kr/@whiteink/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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