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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잉크 Jan 05. 2021

영화보다 더한 절망을 안겨주다(2)

대표로 시작해 백수가 되기까지


들어는 봤나? 랜선이사!


2020년이 영화보다 더한 절망을 안겨주었다고 한 건 아내의 암투병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에 빠졌듯이 우리 가족의 일상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일단 설 연휴를 보내기 위해 트렁크 하나 달랑 들고 왔다가 처갓댁에 그대로 주저앉게 되었다. 이렇게 들어올지 모르고 서울 집은 3개월 전 전세로 내주었으니 참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처음엔 가져온 짐으로 최대한 버텼지만 계절이 바뀌니 새 옷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새로 사는 짐이 많아지고 장기화되자 중국 집을 처분하고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이사를 하려니 막막했다. 하늘 길이 막혀 있으니 갈 수는 없고 그래서 고안한 것이 랜선이사였다. 다행히 현지의 직장 동료들이 도와주어 영상통화로 우리 짐과 집주인 짐(중국은 가전과 가구를 기본 제공한다)을 구분했다. 그런 후 우리 짐 중에 한국에 가져올 것을 분류했다. 처음엔 이 작업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대부분 가져오려 했더니 견적이 무려 1천만 원이 나왔다. 천만 원이면 몽땅 새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다시 몇 번의 분류작업을 했다. 



영상통화로는 한계가 있어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OX로 회신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고생하여 분류한 에센스 짐이 오던 날 장모님은 불결한 짐이 온다며 마뜩지 않아하셨다. 아내가 울분을 터뜨리고 집 앞 현관에서 알코올 소독을 한 뒤에야 집으로 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힘겹게 바다 건너온 짐은 이사업체에서 얼마나 꼼꼼히 싸주었던지 3중 4중의 종이포장을 겹겹이 뜯어내서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뜨악! 화장실의 변기솔 꽂이는 왜 온 거야?? 



"나 회장으로 뽑혔어!"


아이들 학교도 다시 한국으로 전학을 시켜야 했다. 둘째는 그나마 한국국제학교를 다녀 큰 문제가 없었으나 첫째는 학기가 달라 쉽지 않았다. 교육청에서 이수학기가 부족해 동급생으로 전학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어차피 온라인으로 수업 중인데 괜히 전학을 추진했나 후회할 때 다행히 학교장의 재량으로 전학을 받아주었다. 우리처럼 코로나19로 인해 갑작스레 귀국한 아이가 많아서였다.


3년 특례를 바라보며 적어도 4년은 낯선 땅에서 버텨보자 했는데 1년을 남겨두고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왔다. 무엇보다 고입을 앞두고 돌아온 첫째가 학교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일 년 중 학교를 간 날보다 온라인 수업이 많았기에... 그렇게 걱정스럽던 아이는 2학기가 시작돼 학교에 간 첫날, "엄마, 아빠! 나 우리 반 회장으로 뽑혔어"라고 소리쳤다. 아내와 나는 그저 멍하니 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대표에서 백수로 곤두박질


조금씩 한국생활에 적응됐지만 중국 회사는 늘 골치였다. 중국 직원들도 재택근무를 하다 출근하게 됐지만 온라인 화상 회의로는 경영에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플랫폼이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수익사업이 원활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추진하던 수익사업이 모두 봉쇄됐다. 


그럼에도 매달 직원들의 월급, 임대료 등의 고정비는 끝이 없었다. 고정비가 무섭다던 어느 스타트업의 대표님 말이 생각났다. 이렇게 작은 스타트업도 버거우니 코로나의 암울한 터널을 같이 지나고 있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기업들이 대단히 커 보였다.


결국 지난 10월,  창업의 주축이었던 동사장과 긴 고민 끝에 회사의 문을 잠시 닫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중국 생활이 어렵게 됐으니 어쩜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법인대표에서 한 순간 백수가 되었다. 아니 다시 직업을 찾아야 하는 취업준비생이 된 것이지. 이 얼마나 알 수 없는 인생인가... 이것이 영화보다 더 큰 반전이 있는 우리네 인생이다.


다시 한번 우리 사무실을 가볼 수 있을까나



*아듀! 2020 뜨거운 안녕~ 시리즈


1. 영화보다 더한 절망을 안겨주다

https://brunch.co.kr/@whiteink/62


2. [간병일기] 그렇게 우리는 성숙해져 갔다

https://brunch.co.kr/@whiteink/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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