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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힐라 Mar 05. 2021

지금, 나를 만나는 용기

직장을 떠난 뒤 만나게 된 나에게  



21년간 직장 생활의 마무리는 시시한 영화의 앤딩 같았다. 크게 슬플 일도 감동을 주는 기쁨도 없이 흐지부지 끝나 버린 시간. 남편 직장으로 해외 살이를 시작해야 하는 터라 마음의 여유 없이 후다닥 끝을 내버린 듯했다. 직장 생활을 끝내고 한국에서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컸던 터라 이런저런 송별회를 죄다 줄이고 도망치듯 떠나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일도 아니었는데 나에 대한, 내 지난 시간에 대한 예의 없이 그 시간을 그렇게 흘러 보내 버렸다.




직장을 떠나고 나니 내게 남은 건 누구의 아내와 누구의 엄마. 그게 전부가 되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거 같던 일들도 떠난 자리에 아무런 탈도 없이 새살이 돋았고 지겹게 울려 대던 핸드폰이며 문자도 스팸, 광고 전화만 가득하다. 해외 살이를 하며 굳이 한국 전화번호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매일 광고 전화와 문자를 바라본다.


내가 선택한 결정에 나는 왜 이렇게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걸까?  한국에서는 단호히 직장 생활을 그만 둘 용기가 나지 않아 입버릇처럼 외국 나가 살게 되면 그때 그만둬야지.아이 키우고 가족 챙기는 아내의 몫을 그때 챙겨 보리라...  나를 돌보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상하듯 나에게 집중하고 충실하자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막상 그런 시간이 현실에 주어 지니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을 못 잡고 있는 건지 답을 알 수가 없었다.


나를 괴롭히던 시간의 어느 날, 지금껏 직장 생활하며 지내온 시간들의 나와 직장을 떠난 후의 내가 다름을 알게 되었다. 직장에서의 나는 사회 관념에 맞춰진 모습이었다. 직장을 떠나고 나서 바라보게 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나를 모르며 살아온 시간, 만들어진 나에게 갇혀 있었던 시간이었나?


나를 만나는 시간이 두려웠다. 뭘 하고 싶어 할지,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아닌지... 그럼에도 내 마음속에서 이야기하는 앞으로의 시간들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듣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그 이야기를 글쓰기를 하며 듣게 되었다. 내 마음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글쓰기 하며 정리가 되고 있었다. 문득,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책상 밑에 꽂혀 있던 세계 명작 동화들을 읽으며 다락방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빨간 머리 앤을 만났고, 소공녀 세라의 이야기도 듣게 된 시간들. 글쓰기를 좋아해서 언제나 학교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던 나를 만나게 되었다. 잊고 살았구나.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당장의 돈벌이가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 잠시 나에게 시간을 주자.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온전히 내가 좋아하며 잘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자. 이제 와서? 이제라도... @myh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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