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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Sep 20. 2022

다시 만난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여행 (1)

"갔던 나라를 또 가는 건 싫어요. 아무래도 감흥이 떨어지잖아요."

얼마 전 지인이 내게 다. 옛날 같으면 그 말에 공감했겠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이미 여행했던 나라를 다시 가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전과 완전히 똑같은 곳 가는 건 아니다. 이전에 속초 여행이 마음에 들었다면, 다음에는 그 근처의 양양을 가보는 식.


어떤 나라를 맨 처음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남들 다 가는 경로를 따라서 여행하게 된다. 그 여행지들 중 어떤 곳이 더 내 마음에 들지, 직접 여행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마침내 여행을 떠나 이곳저곳 맛보기 하며 다니다 보면 그중에서도 유독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 하나, 둘 생긴다. 그 아쉬운 마음을 잘 간직해두었다가 다시 갈 때는 내가 좋아하는 곳만 골라서 구글 지도를 확대하듯 여행하는 것이다. 두 번째 여행이니 그 나라의 문화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고, 보다 친근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만끽할 수 있다. 이번 오스트리아 여행이 그랬다.


다시 찾은 빈의 골목길(2022)


5년 전, 연차를 끌어모아 약 열흘 간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여행했다. 여행 기간이 워낙 짧아서 최대한 효율적인 동선으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열흘을 반절로 나누어서 오스트리아를 닷새 정도 여행했고, 그 닷새 동안에도 크게 세 지역 정도를 돌아다녔으니 그야말로 겉핥기 수준이었다.


당시 잘츠부르크라는 지역에 갔다가 다양한 여행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잘츠부르크 카드'를 샀는데, 그 카드가 있으면 알프스 산(운터스베르크) 하나를 무료로 올라갈 수 있었다. 운터스베르크에 올라가는 케이블카 정류장에 가기 위해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버스를 탔는데,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아름다운 프스 풍경이 펼쳐졌다. 푸르른 풍경에도 눈이 부실 수 있다니. '알프스'하면 스위스만 떠올리던 내가 처음으로 오스트리아 알프스를 두 눈에 가득 담은 순간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운터스베르크에 올라간 것도 특별한 험이었. 아찔할 만큼 높은 곳에서 발 밑에 구름이 지나가는 걸 보는 것도 신기했고, 아기자기 모여있는 집들을 보는 것도, 너른 초원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도 좋았다. 알프스 너무 은 시간 발을 디딘 게 영 아쉬워서 여긴 꼭 다시 와야겠다고 말하며 산을 내려왔다. 뒤이어 알프스를 품은 호수 마을인 '할슈타트'에서도 하루를 머물렀는데, 오스트리아의 진가는 도시보다 자연에 있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알프스의 매력에 나는 풍덩 빠져버렸다.


여행을 할 때면 습관처럼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을 내뱉곤 하지만 그 말에 진심이 담긴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기에는 여행지까지 다시 오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돈이 너무 크니까. 하지만 오스트리아 알프스에 다시 와야겠다는 목소리는 마음의 꽤 깊은 곳에서 울렸다. 그 생각은 할슈타트를 나와서 버스를 타고 다시 도심으로 향할 때도 멈추지 않았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나는 자주 그곳을 떠올렸다.


알프스를 품은 호수 마을, 할슈타트 (2017)
운터스베르크 (2017). 구름과 세상이 나의 발 밑에 있었다.


결국 이번에는 알프스를 좀 더 제대로 볼 목적으로 다시 오스트리아행을 택했다. 하루하루를 '버텨낸다'고 표현해야 될 만큼 바빠서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때, 에라 모르겠다 하비행기 티켓을 샀다. 그 뒤로 알프스를 보기 좋은 지역들을 찾아 이동편과 숙소만 대충 예약해둔 채 딱히 계획도 짜지 않았다. 그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설레는 마음도 컸지만 코로나 때문에 걱정스러운 마음도 나를 많이 괴롭혔다.


사실 비행기 표를 사기 한 달 전쯤 남편 홍군이 코로나에 걸렸었다. 완치된 이후 한동안은 확진될 걱정이 없으니 여행 가기에 괜찮은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나는 홍군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밥을 같이 먹었는데도 끝까지 음성이 나왔다. 음성만 나왔다 뿐이지 증상도 조금 있었기에 '이미 지나갔겠거니,' 하고 생각했고, 해외여행을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 여행을 어떻게든 합리화할 핑계를 구석구석 찾아낸 뒤 자신을 억지로 안심시키고 비행기 표를 사버렸다.


하지만 막상 떠날 날짜가 다가오니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혹시나 여행 가서 코로나 확진되면 어떡하지. 열흘 간 못 돌아오면? 직장에 피해를 끼치면 어쩌지... 이미 결정한 일이니 걱정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아는데도, 여행을 생각하면 걱정과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떠올려보면 항상 그랬던 것 같다. 공항에 도착하여 게이트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근심은 모두 증발해버린다. 하지만 그전에, 여행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신경 써야 할 일이 한가득이다. 여행 세상에 뛰어들 때 현실에서 완전히 로그아웃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일들을 차곡차곡 잘 마무리해 게 먼저일 테니까. 그래서 이번에 나는 여행 계획보다 현실의 일상에 더욱더 집중했다. 모든 것들을 잘 정리하고 무탈하게 떠날 수 있도록. 오히려 여행과 관련된 일들은 한쪽에 제쳐두려고 노력했는데, 나름 익숙한 곳으로 갈 예정이니 여행 계획을 자잘하게 짜지 않아도 돼서 부담을 한결 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만 준비하여 휙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는 곳으로 가는 여행이 더욱더 반가웠다. 오랜만에 가는 해외 여행지를 오스트리아로 잡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오스트리아 초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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