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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Mar 17. 2020

여행과 나는 진정 운명인 걸까

이 시국에 여행을 못가도 슬프지 않은 이유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보다가 그 위를 유유히 날아가는 비행기를 발견했다. 비행기는 볼 때마다 반갑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마주하니 특히나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난 비행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꼬리를 응시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항공편이 급감했다. 심지어 며칠 전 김포공항은 국제선 비행기를 한 대도 띄우지 못했다고 한다. 해외여행이 굉장히 보편화된 우리나라였기에, 갑작스러운 상황에 여행 업계에는 비상이 걸려버렸다.

 나 역시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횟수, 1년에 무조건 세 번 이상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이다. 1년의 모든 어렵고 힘든 시간을 비행기 티켓만 쳐다보며 버티곤 한다. 그렇기에 지금쯤이면 이미 비상이 걸리고도 남았을 상황이다. 원래 패턴이라면 11월쯤에는 이미 상반기 여행 티켓을 끊어놓았을 것이며, 2월쯤에는 여름휴가 때 갈 여행지를 정해놓은 뒤 매일같이 비행기 티켓 가격을 찾아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아니, ‘무조건 다행’이라고 정정하고 싶다.) 코로나 사태로 비행기 티켓을 취소해야 해서 전전긍긍하거나, 여행을 가지 못해 슬퍼하는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난 작년 말 퇴사를 한 뒤에 올해 초 재취업 예정이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 휴가를 어디로 갈지 1년 치 계획을 모두 세워놓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저런 문제로 재취업이 무산되어버렸다. 아무리 내가 여행을 좋아한들,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여행을 가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취업을 뒤로하고 새로운 일을 도전하던 그 순간부터 난 자발적으로 여행을 포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각보다 포기하는 일이 쉬웠다.
 여행을 못 가게 하시는 부모님과 갈등을 빚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때의 나는 여행을 포기하지 못해 매일 가슴을 내려치며 울었었다. 여행을 위해 모아둔 돈도 있고 또 당장 시간도 있는데, 그러니까 충분히 여행이 가능한 현실인데도 부모님의 반대로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내 마음에 자물쇠라도 채운 양 갑갑하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모아둔 돈도 있고 시간도 많지만, 여행을 가기엔 나 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내가 자리 잡는 그 날까지 여행은 자제하기로 결심했고, 그럼에도 내 마음은 여름날의 호수처럼 잔잔했다.
  
  그러니까, 원래 같으면 비행기 티켓을 두 개는 가지고 있어야 할 시기이지만 지금 내 손엔 아무것도 없다. 손에 소중하게 쥐고 있던 티켓을 코로나 때문에 취소해야만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아마, 티켓을 바라보며 행복해했던 순간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난 많이 힘들어했을 것이다. 차라리 자발적으로 일찌감치 여행을 포기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이런 시점에서 엉뚱하게도 ‘나에게 여행은 정말 운명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운’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는 내가 여행만 가면 대부분 날씨가 좋은 것도. 지금까지 그 흔한 소매치기 한 번 만나지 않은 것도. 고대하던 여행을 취소하는 일 한 번도  않았던 것도.
 
 어쩌면 여행과 나 사이를 어떻게든 운명이라고 묶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난 그렇게 믿고 싶다. 여행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모든 좋은 일과, 또 안 좋은 일까지도 그저 운명 같은 일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고 싶다.

그래서 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정 행복하고 감사하다. 언젠가 이 소란스러운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나가고, 소란스러운 나의 상황도 안정을 되찾은 뒤에는 더욱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겠지. 벌써부터 그 날을 기대해본다.




친한 친구가 제 글을 보구 직접 써줬어요♡.♡


+ 우리나라에 애정이 별로 없었던 저인데.....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이 너무너무 자랑스러워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를 위해 싸워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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