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콩이와 가족이 된 뒤로, 2년이 넘도록달콩이와 하루 이상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달콩이를 입양했기 때문에 달콩이를 두고 어디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웬만하면 그럴 일을 만들지 않기도 했다. 출근해서 일하는 몇 시간 동안에도 집에 있는 달콩이를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어떻게 며칠씩 떨어져 지낼 수 있을까. 필요에 따라 서로 떨어져 있어 보는 연습도 분명 필요했다. 살다 보면 부득이하게 달콩이를 두고 어딘가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일 테니.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 연습을 계속해서 미루기만 했다.
그러던 우리가 작년 추석에는 오스트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자그마치 열흘씩이나. 그 시기에 해외여행을 가는 건 여러모로 큰 결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고 있긴 했지만 혹시라도 직장에 폐를 끼칠까 봐 머리가 아팠고, 무엇보다 달콩이와 처음으로 오래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사실 달콩이와 가족이 되기 전 나는 여행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 첫 에세이 <<미서부, 같이 가줄래?>>에도 이런 문장을 썼었다.
"여행에 눈뜬 뒤로 나의 세상은 여행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나에게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뭐냐고 물으면, 난 고민 없이 여행이라고 답하곤 했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단연코 '세계여행'이라고 답할 정도였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터지고 달콩이와 가족이 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우리 부부는 집에만 콕 박혀 지냈다. 가끔 견디지 못하고 애견 동반이 가능한 에어비앤비를 찾아 떠났지만, 숙소에만 머물다가 돌아오는 여행에는아쉬움이 조금씩 남았다.
그렇게 여행을 거의 포기하고 지낸 지 2년 반. 막혔던 하늘길도 점점 열리고 있었고, 이제 달콩이도 제법 컸으니 드디어 용기를 내보기로 한 것이었다. 달콩이를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하고 아끼지만, 올바른 방향의 사랑이라면 나다운 모습 또한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여행 동안 부모님께서 기꺼이 달콩이를 맡아주시기로 했다. 실외배변, 식이 알러지, 분리불안 등 달콩이가 여러모로 케어하기 쉬운 강아지는 아니었기에 우린 떠나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마음을 졸였다. A4용지에 온갖 주의 사항을 적어서 부모님께 드린 뒤에야 달콩이를 두고 떠날 수 있었다.
여행 중에는 웬만하면 사진첩 속 달콩이 사진을 보지 않았다. 보고 싶은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까 봐. 우리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달콩이는 부모님 댁에서 씩씩하게 잘 지내주었다. 2-3일에 한 번씩 유치원에도 갔고 유치원에 안 가는 날에는 부모님께서 산책도 시켜주셨다. 그 덕에 우리 부부는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했다. 한참 잊고 지내왔던 감각들이 되살아났다. 우린 자유로웠고, 현실의 걱정들로부터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멀어질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오늘과 내일만 생각하며 지냈다.
그렇게 꿈같던 열흘을 보내고 귀국을 앞둔 공항. 나는 나 자신이 완전히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지를 떠날 때면 나의 얼굴은 늘 죽상이 되곤 했었다. 짧은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 한국 땅을 밟는 순간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두려움, 하나의 목표가 끝나버렸으니 이제는 또 무슨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나 허탈한 마음 때문에.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잘 놀았으니 이제 우리 달콩이 보러 집으로 가자!"
나는 웃으며 기꺼이 비행기를 탔다. 여행의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남긴 채.
여행지를 등지고도 쿨한 내가 낯설었다. 미서부 신혼여행 후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나머지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던 기억이 났다. 그 정도로 나는 집이 주는 안정감보다는 바깥세상을 갈망하던 사람이었다. 여행과 현실을, 잘 분리하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젠 아니었다. 두 팔 벌려 안으면 품속에 꽉 차는 복슬복슬한 털, 스노우볼처럼 세상을 담아낸 채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 그 위에 길쭉하게 뻗은 속눈썹, 촉촉해서 뽀뽀를 부르는 검은색 코, 발바닥과 배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 그 모습이 그리워서. 나의 집이, 사랑하는 달콩이가 날 기다리는 그 공간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여행을 여행으로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달콩이와 가족이 되기 전과 후의 삶은 분명히 달라졌다. 특히 우리는 2인 가구라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더 많다. 달콩이와 함께하는 한, 내가 세계여행을 꿈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충동적으로 훌쩍 떠나거나 마음 편히 여행 가는 날도 없을 것이다.여행은커녕, 밤에 달콩이를 혼자 두고 둘이 밖에 나가서 술 한잔 기울이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집을 사랑하게 되었음에, 집과 가족이 주는 안정감을 온전히 느끼게 되었음에, 달콩이의 존재가 참 고맙다.
앞으로도 나는 나다운 모습을 지키려 노력할 것이다. 달콩이가 있어 어려운 상황에서도가끔은 여행을 떠나고 공연을 보러 갈 것이며 남편과 데이트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달콩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