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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보는 방식》 3교 일기.

by 온정

* 교정교열 단계

1차 퇴고 - 목차 배열 후 2차 퇴고 - 1교 - 2교 - 3교(조판본) - 최종교


1.

그동안 한글 파일로 주고받던 원고가 처음으로 조판 위에 올라갔다. 책이 되기 위한 모양새를 갖췄다는 뜻. 대표님이 검토하신 뒤 보내주신 조판본(이자 3교지)과 표지 파일을 저장하고, 열기 전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표지 디자인 시안은 이미 몇 달 전에 처음 봤었다. 실은 표지가 너무 예뻐서 남은 작업을 더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마음에 쏙 드는 책 표지는 책 작업을 하는 중에 제법 큰 동기부여와 응원이 된다. 이 원고가 ‘책’이 되는 상상을 하면서 계속 집필하고 교정에 임하는데, 표지로 인해 그 이미지가 선명해지는 거니까.)

왠지 잡지 표지 같기도 하고 흔치 않은 디자인이면서도 내 책의 메시지를 잘 담은 표지였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듯 일상을 포착하고, 그것을 글로 적었다는 이번 책의 컨셉을 명확히 잡아주는 표지이기도 했다. 게다가 운 좋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키색 디자인이라 처음 표지를 보자마자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 모른다. 늘 예쁘게 디자인해 주시는 디자이너님께 감사할 따름.


이번에는 앞표지뿐 아니라 뒤표지, 책날개까지 모두 붙어있는 모양으로 파일을 받았다. 뒤표지에 선정된 문장도 아주 심플하고 명료해서 마음에 들었고, 책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내지 디자인 역시 뭐 하나 빠짐없이 마음에 들어서 더 설레었다.



<사물을 보는 방식> 표지 공개!


2.

보통 교정지를 받을 때마다 약간의 전투태세를 지닌 채 교정 작업을 시작한다면, 조판본을 받는 순간부터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진다. 책에 인쇄될 모양을 어엿하게 갖춘 나의 원고를 보면 갑자기 출간이 확 실감 난다. 이제 이 원고가 정말로 내 품을 떠나겠구나. 어쩐지 조금 감정적인 상태가 된다. 너무 지쳐버려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과, 아직 바깥세상으로 보내기 섭섭하고 불안한 마음이 공존한다. 이번에는 후자가 좀 더 컸던 것 같다.

출간을 앞두면 정말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든다. 그동안 했던 고생과 기쁨이 우르르 밀려와 내 감정의 문을 두드린다. 불안함과 부담감도 나를 짓누른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일단 걸쇠를 걸어 잠근 채 뒤돌아 외면한다.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생각보다 마지막 단계에서 발견되는 문제들이 많으니까.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다고 1교, 2교 때처럼 오류를 찾고 윤문을 하겠다며 바락바락 이를 갈면 안 된다는 것이다. 3교는 기존에 쓴 표현을 억지로 고쳤다가 오히려 더 어색해질 수 있는 위험한 단계다. 이미 조판 디자인에 올렸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수정하기 부담스러운 단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최대한 독자의 눈으로 원고를 읽으려 노력해야 한다. 독자의 눈으로 읽는데도 걸리는 부분이나, 조판에 올리고 나니 한글 파일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문제점 위주로 걸러낸다.



3.

3교에서 고친 문장들 사례.


* 소식을 전하려는 사람이 머뭇거리다가 메시지 전송 버튼을 누르는 용기. 소식을 받 사람이 기뻐하며 어떻게 답장할지 고민하는 시간.

-> 소식을 전하려는 사람이 머뭇거리다가 메시지 전송 버튼을 누르는 용기. 소식을 받 사람이 기뻐하며 어떻게 답장할지 고민하는 시간.

: ‘는’과 ‘은’의 차이로 시제가 바뀐다. 역시 한글은 예민한 글자.


* 사람의 감정은 연속적으로 변하는데, 말하고, 안 하고는 완전히 이분법적이잖아. 말을 안 하면 끊임없이 바뀌는 상대의 감정을 알 방법이 없지.

-> 사람의 감정은 연속적으로 변하는데, 말하고, 안 하고는 완전히 이분법적이잖아. 말을 안 하면 끊임없이 바뀌는 상대의 감정을 알 도리가 없지.

: 큰따옴표 안에 ‘연속적’, ‘이분법적’같은 딱딱한 표현이 많고, 특히 ‘이분법’, ‘방법’이 이어지기에 ‘도리’로 수정.


* 일에 조금 익숙해진 뒤 주변을 둘러보니 매니저와 친한 친구들은 확실히 일을 덜했다.

-> 일에 조금 익숙해진 뒤 주변을 둘러보니 매니저와 친한 알바생은 확실히 일을 덜했다.

: ‘매니저와 친한/ 친구들은’ 인데,

‘매니저와/ 친한 친구들은’ 으로 읽힐 가능성이 다분해보여 수정했다.

이렇게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소지’가 있는 표현들을 몇 개 발견하고 더 명확해지도록 수정했다.


* 백팩에 달 키링 하나만 건지자.

-> 가방에 달 키링 하나만 건지자.

: 외래어야 필요에 따라 종종 쓰게 되지만, 짧은 한 문장 안에 두 가지의 외래어를 남발하는 건 조금 별로라 수정했다.


이 외에 책 전반적으로 자주 쓰인 것 같은 표현들도 다른 표현으로 몇 가지 대체했다.



4.

<엄마 밥>이라는 꼭지가 있다.

몇십 번은 읽었는데도 읽을 때마다 눈물 난다.


엄마 밥이 진짜 제일루 최고다


5.

2번에 썼던 것처럼, 몰려오는 감정들을 애써 외면한 채 3교에 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벽이 되자 여러 감정이 큰 덩어리째 밀려와 쏟아졌고, 결국 내가 걸어둔 부실한 걸쇠는 풀려버렸다. 블로그에 아래와 같은 글을 쓰고 지금은 지웠다. 그중 일부만 3교 일기에 남긴다.


-

책을 쓰고 세상에 내는 걸 ‘아이 낳는 일’에 비유하곤 한다.

그렇게 치면 나는 몇 년 동안 몇 권의 책을 가슴으로 낳은 건가.

특히 작년에 이어 올해, 1년도 채 되지 않아 신간이 나올 예정이니 연년생을 낳는 셈이다.

글을 쓰는 것도 책으로 만드는 작업도...

그저 일로만 볼 수 없는,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작업이기에 어느 한 단계 진심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객관적으로 나의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최선 그 이상의 영역이 존재한다면 나는 늘 거기까지 가려고 노력했다.

나의 작은 그릇에서는 그 정도는 애써야 한 권의 책을 낳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쓰면서 참 행복했다. 뿌듯했고, 감사했다.

꿈으로 가는 열차에 나는 이미 타 있었다. 생생한 진행형이었다.

그 기분을 만끽했다. 누렸다. 그만큼 더 파고들었다.


또 그만큼, 소진되었다.

(...)

나의 일부를 떼어내어 책이 탄생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 싶다.

-


너무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그만큼 행복하고 또 행복한 만큼 힘들 때도 있다. 결국 감정에 이기지 못해 잠시 무너졌었지만, 출판사 대표님과 주변의 따뜻한 응원으로 금방 회복한 채 3교까지 무사히 해냈다.


정말, 이제 다 왔다.




조판본.



* 지면 밖의 온정 작가

linktr.ee/o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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