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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종 Apr 16. 2017

당신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5가지 센스 메이킹의 단계 

(본 글은 필자가 스타트업 미디어 비석세스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하여 발행되었음을 밝혀 둡니다. 전문은 비석세스 미디어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모든 인간은 사업가다. 우리는 동굴에서 살던 시절부터 스스로를 고용했다. 일용할 양식을 직접 찾아서 스스로에게 공급했으며 인류의 역사도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문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우리 안의 사업가 기질을 억눌렀다. 통치자들이 ‘너는 노동자다’라고 낙인을 찍자마자 스스로 ‘노동자’임을 자처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가 사업가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소액금융의 선구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nus) 총재의 말이다. 오늘날 전 세계 3억 명이 활용하는 비즈니스 인맥 관리 서비스 링크드인을 창업한 리드 호프먼(Reid Hoffman)은 그의 말을 빌려, 오늘날 우리가 직업의 세계에서 직면하는 수많은 도전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업가적 본성을 재발견하고 스스로를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살아 숨 쉬는 신생 벤처로서의 스스로를 지휘해야 할 사업가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조직이라는 안전망 밖의 세상은 녹록지 않다. ‘생존’이라는 대의 명제와 싸워 나아가기도 벅차다. 잘 나가는 기업의 전략들을 벤치마킹해보기도 하고, 최신 트렌드를 줄줄이 꿰기도 하며, 행동 경제학으로 소비자의 심리에 접근해 보기도 하고, 빅 데이터와 플랫폼 솔루션에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하지만 정작 나를 나이게 하는 신념과 열정은 희석되기 쉽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통해 업종, 제품, 산업을 막론하고 물어야 할 '업의 본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 ‘버둥거리며 뒤만 쫓는 대신 길목을 지키고 넓은 보폭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한 혜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덴마크의 한 허름한 5층짜리 목조건물에 자리 잡고 있는 컨설팅 회사 '레드 어소시에츠(Red Associates)'가 바로 그들이다. 레드 어소시에츠의 공동 창업자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Christian Madsbjerg)와 미켈 B. 라스무센(Mikkel B. Rasmussen)은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맥락 안에서의 경험에 주목하는 현상학(phenomenology)을 기업의 문제 해결의 기본적 프레임으로 활용했다. 그들은 멀고도 가까운 모든 것들에 대해 진실한 통찰을 얻는 ‘사물 그 자체로(to the things themselves)’를 강령으로 삼는다.


이들은 2004년 사상 최대의 적자에 시달리던 레고에게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가 아닌,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했다. 레고는 아이들의 삶으로 함께 들어가 깊이 있고 심층적인 인터뷰를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다시 브릭으로'라는 전략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레고는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했다.


오늘은 레드 어소시에이츠의 저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가 제시하는 ‘센스 메이킹(Sense making)’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우리의 본질, '명료함의 순간(The moment of Clarity)'을 찾아보도록 하자.


센스 메이킹의 5가지 단계: 프레임, 콜렉트, 룩, 크리에이트, 임팩트 


레드 어소시에츠의 공동창업자들은 숫자와 데이터에 기반하여 고객의 행동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숫자 더미와 스프레드시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그들은 지난 11월, 국내의 조선비즈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정말 인간이 숫자와 데이터로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숫자로 나타난 정보는 사람의 부분일 뿐, 아무리 이를 조합한다고 해도 완벽한 한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사는 커지면 커질수록 고객을 이해한다면서 각종 숫자와 데이터에 몰두하게 됩니다. 정작 고객은 만나지 않으면서 숫자와 데이터에 의지해 고객을 추측하려고 합니다. 경영자는 고객 대신 다른 경영자들을 만납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생기죠. 이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잘 들어보세요. 놀랍게도, 어떤 시점부터는 더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전문용어로만 대화한다는 의미). 이건 무언가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들은 현상으로서 문제를 재구성하는 프레임(frame)의 단계, 자료를 수집하는 콜렉트(collect)의 단계, 패턴을 살피는 룩(look)의 단계, 핵심 통찰을 창조해 내는 크리에이트(create)의 단계, 비즈니스의 영향력을 구축하는 임팩트(impact)의 총 5가지 단계로 구성된 ‘센스 메이킹’의 방법론을 강조한다.


2000년대 중반, 삼성의 텔레비전 부문 임원들은 안갯속을 헤매고 있었다. 당시 삼성TV는 최신 기술로 무장했지만, 경쟁사인 소니 등과 차별성을 찾지 못하고 대부분의 TV 생산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TV도 전자제품의 하나일 뿐입니다’라는 메시지만을 던지고 있었다. 끝도 없이 발전하는 기술의 행렬에 싫증을 느끼고 있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감지할 때 즈음, 삼성의 임원들은 문제의 재구성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즉 ‘어떻게 하면 TV를 더 많이 팔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가정에서 TV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설정된 프레임에 기반하여, 가정에서 TV라는 도구가 활용되는 다양한 방식들을 관찰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TV를 거실 구석에 둔다, TV를 사는 일에 여성들이 관여하기 시작한다, TV는 외관이 예쁘지 않다 등등의 자료를 수집하며, 팀원들은 'TV는 일종의 가구다’라는 핵심 통찰에 다가섰다.


그리곤 새롭게 개발하는 모델에는 전선이나 버튼과 같이 눈에 거슬리는 요소들과 스피커를 감추어 줄 받침대를 디자인하고, 자연물의 유기적인 형태가 떠오르는 이리데선트 화이트(iridesent white) 컬러의 유선형 디자인을 채택했다. 이처럼 삼성TV가 보유하고 있는 공학적 역량과 소비자에 대한 통찰이 결합하면서, 삼성 TV는 전년 대비 2배의 시장 점유율을 거두게 되었다.



센스 메이커 리더의 조건


레드 어소시에츠의 공동창업자들은 이처럼 새로운 관점에 기반하여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데이터에서 패턴을 발견하여 올바른 해석에 도달하고 그 해석을 행동으로 옮기는 센스 메이킹의 5단계에 능숙한 이들을 새로운 리더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정치학을 연구해 오며 위대한 정치 리더쉽의 특징을 찾아내고자 했던, 역사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의 견해를 인용했는데, 그에 따르면 탁월한 정치 지도자들의 능력은 보편적인 규칙이나 프레임워크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숱한 나비 떼가 주위를 가득 날아다니듯이, 너무도 방대하고 변덕스러우며 뒤죽박죽이어서 정체가 무엇이며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다채롭고 일시적이며 부단히 중첩되는 방대한 데이터들의 혼합물을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비범한 능력과 관계가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벌린은 그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절한 데이터와의 직접적이고, 가히 실감 날 정도의 접촉’이 수반되어야 하며, 무엇과 무엇이 들어맞는 지, 무엇과 무엇이 어떤 인과관계인지, 무엇이 무엇으로 추동해주는지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레드 어소시에츠가 규정한 센스 메이커 리더의 조건이란 이처럼 방대한 데이터, 느낌, 사실, 경험, 의견, 관찰의 바다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그 패턴을 하나로 통합된 '명료함의 순간(The moment of Clarity)’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센스 메이커는 문제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야 하고 수 많은 점을 인지하며 방정식을 넘어선 패턴을 발견해야 한다.


(본 글은 필자가 스타트업 미디어 비석세스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하여 발행되었음을 밝혀 둡니다. 전문은 비석세스 미디어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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