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이며 왜 글을 쓰는가
5년 만이다.
2012년 노르웨이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었을 때 프랑스 여행을 했다.
이후 5년 만에 파리에 돌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지어 유학을 확정지을때만 하더라도,
내가 프랑스에 와서 공부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사실 되돌아보면, 프랑스는 내 가슴 한켠에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읽게 된 홍세화 씨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는 내 기억 속에 선명한, 프랑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프랑스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홍세화 씨의 책에서 보았던 "똘레헝스(Tolérance)," "바깔로헤아(Baccalauréat)," "대학 평준화" 등은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고,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이후 2012년이 되어서야 프랑스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에 꼭 가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유럽 대륙을 여행하는데 지리상 프랑스를 경유해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벨기에에서 시작해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헝가리를 거쳐 노르웨이로 돌아갔다. 이 당시 프랑스 그리고 파리에 대한 나의 인상은 썩 좋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영어로 물어봐도 프랑스어로 대답하는 사람들은 프랑스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일이다. 프랑스에 대해 더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된 것은 파리 지하철의 더러운 공기 때문에 목감기에 걸렸고, 유럽 여행을 하는 내내 아팠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프랑스와의 첫 만남은 유쾌하지 않았다.
프랑스를 떠올리게 된 세 번째 계기는 미국 보스턴에서였다. 2014년 미국 워싱턴 D.C.에 살 때 잠깐 보스턴으로 여행을 갔다가 한 프랑스 친구를 알게 되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잠깐 가르치고 있는 친구였는데, 교수라기보다는 조교(teaching assistant)였다. 그 친구와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참 똑똑하구나' '정말 영어를 잘하는데?'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학교를 물어봤더니 시앙스포(Sciences Po)에 다닌다고 했다. 그 친구도 아마 잘 모를거라고 했고, 난 그때 그 곳이 어떤 학교인지 정말 몰랐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시앙스포는 한국에서는 파리정치대학으로 알려져 있는 그헝제꼴(grands-ecoles) 중 하나이며, 사회과학 분야에서 프랑스 최고의 교육기관이라고 한다. 궁금한 마음에 시앙스포에서 하버드 대학교로 오는 프로그램이 있냐 물었고, 그 친구는 사실 학부는 다른 곳에서 나왔다고 했다. ENS(École Normale Supérieure)라는 곳이었다. 나중에 찾아봤는데 이 역시 그헝제꼴 중 하나로서 인문자연과학 분야의 최고라 한다. 그 친구와의 만남 덕분에, 몇 년 후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을 때, 2014년 처음 알게 된 시앙스포라는 학교를 가장 먼저 생각했고 지원할 수 있었다.
Connecting dots
최근에 내게 큰 감동을 주었던 말이다.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했던 연설의 일부이다.
애플을 만들고 아이폰 시리즈가 나오면서 유명해졌을 때, 그의 연설도 재조명되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가 얼마 전 그의 연설을 보게 되었는데, 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다시 말해서, 미리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지만, 뒤돌아 봤을 때 왜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젠가 각각의 점들이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감, 운명, 인생, 카르마 등 무엇이든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저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고, 제 인생을 남다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때로는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많은 노력을 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더욱 회의가 들곤 한다.
다시 방향을 잡아 나아가면서 뒤를 되돌아보았을 때,
겉보기에는 서로 관련이 없는 과거의 사건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무언가를 가리킬 때가 있다.
우리 어머니께선 늘 '순리대로 해라. 너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이 뜻인가 싶었다.
각설하고, 프랑스에 대한 나의 세 가지 경험들이 지금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를 만든건 아닌가 싶다. 홍세화 씨의 책을 통해 프랑스 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일었다. 하지만 2012년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의 나의 인상은 오히려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절대 ~안한다'는 말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미국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와의 만남은, 대학원 지원을 결심했을 때 프랑스 학교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찾아보게 된 계기였고, 결국 나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오게 되었다.
왜 이 글을 쓰는가
친구들에게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하면 다들 ‘낭만과 예술의 도시에서 공부하니 좋겠다’라는 말을 한다. 맛있는 디저트나 와인, 치즈 이야기도 곁들여 나오곤 한다. 하지만 내가 파리에서 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고 놀라웠던 것은 프랑스 사회였다. 어느 사회든 완벽하진 않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프랑스의 어느 한 모습만을 너무 보여주는 것 같다. 프랑스에 오기 전에 내가 가졌던 프랑스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2016년 8월부터 파리에서 살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자 했다. 거진 30개국을 여행하면서 도시를, 사람을 관찰하는게 나의 취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 사회의 여러 모습들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한다. 어떤 대상을 아는데 중요한 것은 시간의 양보다는 질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파리에 1년 반 밖에 살지 않은 것으로 인해 글을 쓰는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바라보는 프랑스 사회의 모습들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틀린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제 글을 비판적으로 보시는 것을 환영하며,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목에 (+)라 붙여있는 것은 프랑스 사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글을 뜻하며, (-)라 붙여져 있는 것은 프랑스 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본 글입니다. 비판도 결국 애정이 없으면 생길 수 없다고 하지요. 이런 점에서 (-)가 붙여진 글도 결국 프랑스에 대한 저의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