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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 May 19. 2018

(-) 프랑스인은 모두 하나다?

프랑스 사회의 금기어: 인종

"우리 학교 내의 성평등은 어떤가요?" 

프랑스로 유학온 첫 학기, 국제인권법 수업에서 교수가 질문했다.

나중에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교수진의 경우 약 30%가 여성 교수진이었다.

첫 학기에 내가 듣는 수업 중에서 여성 교수진의 비율도 그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이후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 구성원들의 인종 비율은 어떨까?"


사실 이 질문은 오리엔테이션 날부터 시작되었다.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을 때나, 파리의 중심에 위치한 샤뜰레(Châtlet)역을 가보면 제2의 미국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리엔테이션 행사를 위해 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와는 많이 달랐다. 열의 일곱, 여덟은 백인이었고, 아시아인, 흑인, 라틴계 등 유색인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교가 시작한 후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이 수업시간에 비로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Châtlet 역 (왼쪽), 학교 오리엔데이션 (오른쪽)

정확한 통계치를 알기 위해 학교 행정처에 문의를 했다.

학교 구성원들 (교직원과 교수, 그리고 학생)을 성별과 인종으로 나눈 통계자료를 부탁헀다.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내 질의에 대한 답변


법률에 따라 인종에 따른 통계를 만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니...

프랑스에서 받았던 문화 충격 중 가장 큰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질문을 race로 했지만, 답변은 ethnicity로 왔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프랑스에서 race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어감이 강하다.)


나는 처음에 사실이 아닌 줄 알았다.

나중에 프랑스인 친구들에게 묻고서야 이게 진짜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 다음과 같은 주제로 발표를 했다.


왜 프랑스에서는 인종에 따른 통계가 금지되었을까?

인종에 대한 이야기는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혁명 이후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1조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사회적 차별(distinction)에 제한을 두는 것에서부터 인종의 금기시가 시작되었다고 많은 학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프랑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이라는 단어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금기화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래한다. 독일 나치 정부에 의한 점령기 동안, 프랑스에서는 비시 정부가 탄생한다. 1940년 10월 3일, 비시 정부는 "유대인의 지위에 대하여"라는 법률을 제정하는데, 동법 1조에서는 누가 유대인인지 친절하게(?) 정의를 내린 후, 2조에서는 해당 법률에서 명시하는 권리와 의무가 유대인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대인 증명서

이에 따라 유대인들에게는 위와 같은 증명서가 발급되었고, 후일에 비시 정부는 유대인들을 강제 이주시켜 홀로코스트에 일조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적 비극을 겪은 후, 프랑스에서는 인종 자체에 대한 금기화가 진행되었다. 1946년 제정된 제4공화국 헌법 전문에는 "프랑스는 인종과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바탕으로 한, 해외에 있는 국민들과 결합된 공동체이다."라 하였다. 이는 1958년 제정된 제5공화국 헌법에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헌법 전문이 아닌 조항에 삽입된 것이다. 헌법 1조에 따르면, "프랑스는 비종교적· 민주적· 사회적· 불가분적(indivisible) 공화국이다. 프랑스는 출신· 인종·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시민이 법률 앞에서 평등함을 보장한다. 프랑스는 모든 신념을 존중한다. 프랑스는 지방분권으로 이루어진다."


오늘날 공공기관을 비롯한 단체에서 인종 수집을 하지 못하는 법적 근거는 1978년 "정보처리와 자유에 대한 법률" (Loi Informatique et Libertés) 에 있다. 동법 8조 1항에 따르면 "1) 인종이나 출신민족, 2) 정치적, 철학적, 종교적 의견, 3) 개개인의 노동조합 가입여부, 4) 건강과 성생활을 직간접적으로 밝히는 개인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것은 금지된다." 


그렇다면 인종에 따른 통계가 공식적으로 금지된 프랑스에서는 인종 차별이 없을까? 이건 또 다른 문제이다.


프랑스에서는 인종차별이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다."

국가 차원에서 인종이라는 단어를 금기시하고 해당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해서 일상 생활에까지 똑같이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일례로, 거리를 걷다보면 가끔 듣게 되는 ping pong 이라든가, 아시아인들의 찢어진 눈(les yeux bridés)를 흉내내는건 예사이다. 모든 아시아인을 중국인 취급하는건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에서 백인들을 미국인이라 여기는 것과 흡사하다)


문제는 프랑스의 인종차별도 미국이나 영국처럼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위협을 가하거나, 사회적, 경제적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세 가지 사례를 들고자 한다.


1. 국가비상사태가 해제되기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 경찰이나 총을 든 군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어떤 사람이 수상스럽다면 즉시 가방이나 몸을 수색하곤 하였다. 지금까지 총 3번 보았는데, 그 대상은 전부 아랍계나 흑인이었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바닥에 강제로 눕히거나 벽에 밀치곤 해서 깜짝 놀라곤 했다.


2. 한 매장에서 일하는 친구 이야기이다. 신입 직원 채용을 위한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내 친구는 면접위원 중 한 명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면접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흑인 후보자가 가장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친구의 상급자, 그러니까 면접위원 중 직급이 가장 높은 사람은 "우리 고객층이 주로 백인이니까 백인 문화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흑인 후보자를 고용하지 않았다.


3.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서, 학교의 구성원들이 인종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했기에 조사를 해보았다. 경비원들이 보기에 학생, 교수, 교직원 내 인종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인터뷰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학교 경비원들은 한국 학교의 경비원과 다르게 출입문에서 학생증 또는 교원증을 일일이 검사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누가 학생이고 교수인지, 교직원인지 알게 된다. 인터뷰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거의 흡사했다. 약 80%의 학생들이 백인인 것 같다고 경비원들은 답했으며, 교직원의 경우 유색인종은 단 한 명만 보았다고 하는 경비원도 있었다.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도 2년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백인이 아닌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적은 없었다.


인종에 따른 통계수집에 대한 찬성과 반대 논거

이쯤 되면 프랑스의 편에 서서 해명할 기회를 줘야할 것 같다. 사실 프랑스는 인종에 따른 통계자료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것을 금지했을 뿐이지 지속적으로 반인종차별주의 정책을 추진해왔다. 예를 들어 1972년에 제정된 법률에 따르면, 혐오발언(hate speech)을 금지하고 있으며, 인종적 멸시나 증오 또는 폭력에 대해서는 형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 1990년에는 소위 가이소트 법률(la loi Gayssot)을 제정함으로써 혐오발언 조항에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종차별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인종에 따른 통계자료를 수집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계속되어 왔다.


패트릭 시몬(Patrick Simon)은 그의 논문 "The choice of ignorance: the debate on ethnic and racial statistics in France"에서 프랑스 내에서 인종에 따른 통계를 반대하는 측의 논거를 상세히 분석하였고, 이에 대해 날카롭게 반박했다. 여기에 내 생각을 덧붙여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논거들이 인종에 따른 통계를 반대하는 주장을 지지한다.


1. 미국과 영국의 경우 인종에 따른 통계를 수집하지만 이들 나라에서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2. 인종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짓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

3. 제2차 세계대전 비시 정부 당시 자행되었던 역사적 비극을 생각해볼 때, 인종에 따른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부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4. 어떤 사람이 어느 인종에 속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5. 인종에 따른 통계자료는 자칫 극우파들의 정략적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박은 다음과 같다.

1. 우선 앵글로 색슨 국가들을 인용하는 프랑스인들의 태도가 모순적이다. 많은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과 프랑스는 서로 다른 사회이기 때문에 미국의 인종정책을 배울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똑같은 사람들이 미국 내에서 계속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인종차별주의를 인종에 따른 통계를 수집하는 것이 틀렸다는 명백한 증거라 이야기한다. 만일 미국과 프랑스가 완전히 다른 사회라면, 미국 내 현존하는 인종차별주의를 프랑스의 인종정책의 지지근거로 삼는 것이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두 사회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미국 사회가 실패했든 성공했든 프랑스에 미치는 영향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이 인종차별을 퇴치하는데 실패했다고 해서, 인종에 따른 통계를 수집하는 것이 유용하지 않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미국의 반인종차별주의 정책의 실패로 보는 것에 합당해 보인다. 즉,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정책의 집행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인종차별을 해결하는 첫걸음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이는 의사와 환자의 상황에 비유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몸이 아프다고 가정해보자.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자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면 당신은 그 의사를 믿을 수 있을까? "세균과 바이러스도 당신의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 저는 당신을 진단할 수 없습니다." 


2. "인종에 따라 사람을 구분짓는 것이 또 다른 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나의 반박은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다른 구별짓기는 어떠한가? 예를 들어 성구별과 성차별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날 어느 나라에서나 성차별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성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으니까, 성별에 따른 통계를 수집할 필요가 없다." 이런 류의 생각은 사실 인종에 따른 통계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생각와 흡사하다. 하지만 단순히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라는 생각만으로는 인종차별을 제대로 파악하고 없앨 수 없다. 


3. 비시 정부 당시 자행되었던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는 두려움 - 이것은 프랑스인들의 인종에 따른 통계자료에 대한 거부감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인종에 대한 통계를 수집하는데 있어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익명의 표본에 기반한 조사는 인구 등록이나 행정 기록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비시 정부의 협조 하에 나치가 유대인들을 색출해서 홀로코스트를 자행했을 당시 그들이 사용했던 통계 자료는 개개인의 이름까지 명시된 인구 등록이었다. 따라서 개인을 특정화하지 않은 익명의 통계조사는 비시 정부의 통계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4.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사람이 스스로가 어느 인종에 속하는지와 제3자가 그 사람이 어느 인종에 속하는지에 있어 상당할 정도로 의견이 수렴된다고 한다.


5. 2000년대 프랑스에서는 우파 정당인 공화당(Les Républicains)에서 인종에 따른 통계 자료를 수집하는 것을 합법화하기 위해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작년 대통령 선거 때에는 마힌 르펜 (Marine Le Pen)이 있는 극우파 정당 국민전선(Front National)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내며 통계 자료를 만들고자 적극적이었다. 이런 점에 주목해서 몇몇 사람들은 인종에 따른 자료가 정치적으로 오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견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인종이라는 이슈가 이렇게 사회적으로 구성된 원인은 비단 극우 정당이나 우파 정당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인종 이슈를 이렇게 정치적으로 프레이밍하도록 방관하거나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지 못한 좌파 정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슈를 선점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명하는지는 정당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용 가능성의 경우 좌파 진영의 적극적인 이슈 프레이밍으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핵심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이 주제를 가지고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 발표했을 때 발표문의 제목은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한 평등인가, 무지의 선택인가? (L'égalité par l'invisibilité ou le choix de l'ignorance)"이었다. 즉, 인종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여 모두가 평등하다는 입장과 차이와 차별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는 입장, 둘 중에 어느 것이 프랑스의 인종의 금기화에 좀 더 가깝냐는 것이다.


현재 프랑스 정부의 공식 입장은 전자이지만, 사회 현실은 후자에 가깝다. 제5공화국 헌법 1조가 밝히고 있는 '모든 프랑스인들은 평등하다'는 문구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다. 프랑스 정부도 이를 잘 알기에 인종차별주의를 퇴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현실이 어떤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정책을 남발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지는 의문이다. 이는 마치 의사가 환자의 질환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진단하지 않은 채 온갖 처방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인의 평등이라는 이상을 추구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이 차별로 변질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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