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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 Feb 19. 2019

(-) 개똥

파리의 길거리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것

수업이 개강한지 얼마 안 된 작년 이맘때였다.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프랑스' 또는 '프랑스인' 하면 떠오르는게 무엇이 있는지 

쪽지에 써보라고 했다.

나는 그날 아침 학교를 오다가 개똥을 밟을 뻔했기에 주저없이 이를 썼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날만이 아니었다.



파리의 길거리. 비교적 깨끗한 사진으로 골랐다.


파리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학교에 아침수업을 들어 상쾌하게 길거리를 나서다보면 길거리에서 언제나 마주치는게 이 개똥이었다. 길을 나서기 시작한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최소 1개 이상은 보게 된다. (과장이 아니다.) 프랑스의 도보가 좁은 곳도 많을 뿐더러, 서둘러 가는 날이면 '아차'하는 순간에 밟았던 경험이 있다. 


이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게 서툴렀던 내게 프랑스 친구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프랑스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길거리를 가다보면 어김없이 나에게 "조심해(attention!)"라고 소리치곤 했는데, 열에 아홉은 차가 아니라 개똥 때문이었다. 한 친구는 나와 대화하면서 가는데도 너무도 그것을 잘 피해 걷다보니, 언젠가 한 번은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 친구는 곧 익숙해질거라고만 했다.


그 친구가 옳긴 했다. 2018년 프랑스어 수업 시간때 '개똥'을 써내었을 때는 나도 여느 프랑스인들처럼 휴대폰을 보거나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길거리를 걸어도 이를 피하며 자연스레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왜 파리의 길거리에는 개똥이 이렇게 많은지 알 수가 없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프랑스 근처에 있는 룩셈부르그나 벨기에, 독일에 가면 길거리의 개똥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전세계 강아지 배변봉투의 판매량 순위(2015년)은 프랑스인들이 개똥을 치우지 않는다는 것을 일정 정도 보여준다. 이 조사는 전세계 43개국에 반려동물 물품을 수출하고 있는 Beco Pets라는 영국계 회사가 실시하였는데, 배변봉투 판매량 결과는 다음과 같다. 1위가 이탈리아(792,000개), 2위가 미국(417,000개)이며, 한국이 13위(16,000개), 그리고 프랑스는 16위(3,600개)로 꼴찌를 차지했다. 물론 애견주들이 동 회사의 물품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 조사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국을 제치고) 프랑스가 꼴찌라는 사실은 다소 놀랍다.


다시 프랑스어 수업시간으로 돌아와서, 교수님은 내 쪽지를 보더니 "프랑스에서 개똥을 안 치우면 벌금을 매기는 법률이 있는거 아니?"라고 되물었다. 나는 그런 법률이 존재한다는거 자체가 놀랍기도 했거니와, 그렇게 법이 존재하는데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애완견의 배변을 치울 것을 장려하는 표시판. '나는 우리 동네를 사랑합니다'라고 위에 써 있고, 아래에는 '나는 줍습니다'와 함께 벌금형이 가능하다고 한다.


수업이 끝나고 이에 대해 좀 더 찾아보니 교수님의 말씀이 맞았다. 2007년 9월 개정된 형법 R632-1조에 따르면 쓰레기, 오물, 배설물(déjections), 폐기물, 및 길거리에서 소변을 보는 것은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한다. 영국 일간지 The Guardian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 법률상 애견의 분변을 치우도록 규정한 조항이 최초로 포함된 시점이 2007년인데, 영국의 경우 1996년(the Dogs (Fouling of Land) Act)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는 상당히 늦은 편이다.


프랑스 형법 R632-1조의 '배설물'이란 단어는 2015년 개정되었을 때 삭제되었다. 그럼에도 지자체에서는 조례 또는 규칙의 형태로 강제하고 있으며, 도시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파리시는 2016년 12월부터 시작된 현장 단속반을 운영하면서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강아지의 분변을 치우지 않는 것과 같은 "시민답지 않은(uncivil)" 행동 65,103건을 적발 및 벌금조치를 취했는데, 2017년 10월 Anne Hidalgo 파리시장에 따르면 동 수치는 2016년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배 이상이 증가한 것이라 한다.


가설 1: 준법정신의 부족?

그렇다면 파리의 길거리에 가득한 개똥이 제도의 문제라기보단 준법정신이 부족한게 문제라고 혹자는 제기할 수도 있다. 개똥과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프랑스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은 현지인이고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행자이다. 이처럼 '법을 어겨도 걸리지 않으면 되지'라는 생각 떄문에 개똥을 치울 것을 의무로 만든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노력이 효과가 없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필자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무단횡단을 금하거나 개똥을 치워야 한다는 법률이 존재한다. 흥미로운건 무단횡단은 다반사로 이루어지지만 길거리의 개똥을 찾아보긴 힘들며 필자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본 견주의 절대 다수는 그 자리에서 애완견의 분변을 치운다. 


가설 2: 정부에 대한 지나친 의존?

앞서 언급한 Beco Pets 회사의 CEO인 Toby Massey는 프랑스의 견주들은 스스로 분변을 치우는 것을 꺼리며 지자체의 환경미화원이 치우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에 기반해 혹자는 프랑스인들이 모든걸 국가가 해주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예컨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시의 경우도 배변을 치우는데 시 공무원을 할당했는데 미국인들이 정부가 모든걸 해주길 바라는건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갔을 때를 되돌아보면 '샌프란시스코의 길거리'라 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건 개똥이 아니라 마리화나 냄새였다.


가설 3: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

다시 프랑스어 수업 시간으로 돌아가서, 당시 교수님은 '개똥'을 썼다는 사실에 웃으시면서 법이 있는데도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하셨다. 마치 이건 별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요 근래 프랑스인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왜 프랑스인들은 개똥을 치우지 않아"라고 물어봤을때 이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한 친구는 견주들이 분변을 치우는걸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Je croient qu’ils pensent juste que ce n’est pas important de ramasser)이라고 답했다. 다른 친구도 [분변을 치우는게] 아직 습관화되지 않았고, 이것이 최근에서야 문제로 붉어졌기 때문(Parce que c'est pas dans les habitudes, ça ne se fait que depuis récemment)이라 말했다. 즉, 길거리의 개똥이 문제화되지 않았거나, 그렇게 된지 비교적 최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론: 습관화 그리고 타자화

사람은 환경에 쉽게 익숙해진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겨우 2년밖에 살지 않았던 필자조차 프랑스어 수업 직전에 개똥을 밟을 뻔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프랑스에 대한 다른 편견을 쪽지에 썼을 것이다. 프랑스에 정착한 지 한두달 정도는 길거리의 개똥이 엄청난 문제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어느새 이에 익숙해지고 요리조리 잘 피해다녔으며 개똥이 큰 문제라고 더 이상 말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에게 이는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프랑스인들이 둔감해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은 환경에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게 있다. 예를 들어 찌개류를 각자의 숟가락으로 먹는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그래도 요즘은 많이 바뀐 것 같다.) 외국인들은 문화적 충격이라고 말했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매 순간 숨쉬는 것처럼 환경에 익숙해지고 습관화하는게 각자가 할 일을 완수해내는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번 글을 쓰면서 당연시하거나 습관화된 것을 제3자의 시각에서 타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필자 본인도 결국에는 적응했지만, 파리 길거리의 수많은 개똥은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사진 1 출처: 
https://www.thelocal.fr/20150526/paris-ten-unforgettable-streets-to-walk-down

사진 2 출처: http://www.dogjaunt.com/2010/10/je-ramasse-dog-poop-in-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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