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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충호 Apr 21. 2023

짝사랑, 외사랑  & 나의 연애 세포

팬플룻이 열어준 신세계

          

친구에게 하룻밤 묵을 농가를 찾아보자는 말을 하고 있을 때 그는 바로 위쪽 공유지에서 한 소녀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바구니를 들고 있어 그녀의 구부린 팔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존 골즈워디(John Galsworthy)가 의 그의 소설 『사과나무(The Apple Tree)』 에서 런던의 청년과 시골 여성의 첫 만남을 묘사한 대목이다.



    

팬파이프(panflute)를 배우고 연습한 지 3개월이 지났다.

놀랍게도 내 안의 연애 세포가 온전히 재생되었다. 연애 세포가 끊임없이 뿜어내는 매혹적인 향기에 취해 허우적대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연애 세포를 대신할 다른 표현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

그렇다. 내가 독일(실은 서독)과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동안 거리에서 혹은 지하철역에서 팬파이프 연주에 넋을 잃고 서 있을 때도 시간이나 공간과 무관하게 늘 연주자들의 머리 위로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팬파이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도심 한가운데서 울울한 대숲을 가르며 부는 바람처럼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고 허무하고 담담한 달빛 같은 음색을 듣는 일은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도 황홀했다. 그때부터 줄곧 나는 팬파이프를 여신처럼 받들었으나 불행히도 그녀의 시선은 단 한 번도 내게로 향한 적이 없었다, 지독한 짝사랑이었다.

그 후로 30여 년이 흘러 지난해 말 팬플룻 강좌 개설 소식을 접했을 때 나의 심장이 얼마나 뛰었는지... 나는 그동안 무심했던 그녀에게 다가가 내 오래된 마음을 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무지를 방패 삼으며 용기를 내어 달려든 덕분에 수강 3개월 차에는 수강 동료들 앞에서 계이름을 외워(악보를 외운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뜻임을 상기하시길) #영화 ‘라스트 모히칸(The Last of the Mohicans)’의 OST-Main Theme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 연주 순간을 떠올리는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뒤죽박죽 허둥댄 것도 사실이지만 그 미약한 시작은 나에게 큰 배짱을 갖게 해 주었다. 사실 그 곡은 연습하는 동안 나의 마음을 건드려 눈물을 흘리게 했던 최초의 곡이기도 했다. 나의 연주 목록 1호에 달콤한 열매도 달렸다. 연습은 음악 공부로 이어졌고 새로운 노래를 시도할 때마다 계이름을 외우는 요령도 늘어 이제는 1시간 정도의 연습만으로도 족히 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사랑이다. 나의 사랑을 그녀가 알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내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 물론 내 고백(연주)이 대숲의 울림을 주기는커녕 가시나무처럼 그녀를 아프게 찌른다는 것을 알기에 항변할 생각은 없다. 모든 시작은 어려운 법이다. 사랑도 그렇다. 짝사랑으로 30년을 버텼는데 외사랑으로 30년을 못 버틸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쾌락과 만족, 자유와 책임 그리고 탐구하는 자세였다. 연애 세포가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향연과 비슷하지 아니한가.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주변 환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먼 곳의 배경에 불과했던 사람들을 줌인해서 끌어당겨 보면서 쾌락과 만족을 느낀다. 그리고 오롯이 둘 사이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동시에 저울에 올리며 균형을 맞춰나간다. 연애 세포가 작동시키는 가장 유익한 혜택은 배움과 창작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사랑을 통해 얻게 된 영감을 무기로 우리는 처한 환경과, 심지어 능력의 한계선마저 뛰어넘으며 깊은 배움과 창작의 오솔길로 들어가게 된다.

얼추 나의 삶도 고대 철학자가 말한 행복의 범주 언저리를 맴돌며 살아왔다. 팬파이프를 통해 생겨난 새로운 연애 세포는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행복을 굳히는 과정을 도와줄 것이다. 시나브로 내 삶의 마지막 계획을 단순 명료하게 세 개로 정리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덤이었다.

첫째, 한 달에 한 곡씩 나만의 팬파이프 연주 목록을 추가하는 것이다. 음악 공부와 연습은 쾌락과 만족을 경험하게 한 나의 신세계이자 새로운 놀이터가 되었다. 훗날 내 생이 다하는 날 나는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떠오르는 대로 한 곡 한 곡 연주하면서 온전히 자유롭게 되리라. 그때 내 마지막 연주에는 비록 활력이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부드러움은 지극히 풍부하리라.

둘째, 혼돈의 무지개 속에 갇혀 쓰기를 중단했던 소설을 마무리 짓는 일이다. 일생을 풍요롭게, 혹은 암울하게 했던 주유(周遊)의 나날들, 그 여정을 통해 얻게 된 지혜와 삶에 대한 통찰을 곱게 갈아 넣어 아주 맛깔난 소설을 써내리라.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모델로 삼고, 일흔다섯의 나이에 『삼국유사』를 완성했던 일연 스님을 기억하리라.

마지막으로, 내가 성년이 되면서 나의 통과의례로 삼았던 장기기증 약속(초창기에는 안구 기증만 가능)이 온전하게(각막, 뇌사 시 가능한 모든 장기, 해부 실습용 시신, 조직) 이뤄져 나의 육체가 헛되이 버려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내 장기가 절실히 필요했던 사람에게 온전히 쓰이고 난 뒤라면 나의 영혼은, 찌꺼기로 남은 나의 육체가 설령 쓰레기처럼 취급된다 하더라도 만족할 것이다.

삶을 정리하면 죽음이 두렵지 않고, 죽음을 정리하면 삶은 강해진다.   

  



나는 현재의 삶에 쉼표 하나를 붙여주고 ‘다시 가기’를 끊임없이 계속하리라.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마지막 강의』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현재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살짝 비틀며 가리라.    

     

은퇴한 노인이 감격해하며 ‘자신은 정말 여전하고’, 자신이 해 오던 것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나는 항상 불길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계속하기’는 활기찬 행동이 아닙니다. 노년에 필요한 것은, 정확히 단절, 시작, 신생입니다. “다시 태어나기”입니다. 나는 항상 같은 장소라는 불멸 속에 가두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합니다. 나는 자리를 바꾸려고, 나는 다시 태어나려고 애씁니다. 나는 여러분이 기다리는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불쾌한 불멸이고, 그것에 대해 신생은 항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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