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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충호 May 21. 2023

도피, 이런 시대에 살아남아서 꿈을 꾸기 위한

Mediterraneo(지중해), 도피하고 있는 모든 이를 위한

이런 시대에 살아남아서 꿈을 꿀 수 있는 길은 도피뿐이다.
- Henri Laborit

나의 직전 출간작은 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을 읽는 동안 내 마음에 도끼를 내리쳤던, 그래서 기쁘게 외우기도 했고, 계속해서 마음에 새기고 싶은 감성적인 글들을 모은 인문 영어 시리즈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3권(All-Star, Oscar Wilde, Ernest Hemingway)이다.

세 권 모두 영어 교과서 속 지루하고 훈계하는 내용들과는 거리가 먼 글들로 가득한 책이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어쩌면 독자들이 여태껏 한 번도 기존의 영어책에서 만난 적이 없었던 가장 감각적이고 도발적인 외침으로 만든 책이라고 지금도 (영어 교사로서도) 자부한다.

시리즈 중 첫 편 ‘All-Star’의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서 나는 딱 한 가지만 부탁했다. 첫 페이지의 글과 마지막 페이지의 글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은 편집자 마음대로 순서를 바꿔도 좋다고.

#Meditertaneo(Giancarlo Bigazzi, Marco Falagiani)

내가 첫 글로 골랐던 글은 앙리 라보리의 ‘도피 예찬’이었는데, 영화 지중해(Mediterraneo, 1991, Gabriele Salvatores)를 보다가 알게 된 문구였다.

영화 상영을 알리는 암전과 함께 관객들의 수군거림이 급히 작은 숨소리로 바뀌는 순간 큰 스크린에 이탈리아어와 한글 자막으로 된 문장 하나가 떴다. 위에 인용했던 앙리 라보리의 ‘도피 예찬’이었다. 시작하는 영화에 집중하려고 스크린 쪽으로 향하던 나의 몸은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다시 의자 등받이 쪽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영화의 내용을 한 줄로 설명한 감독의 의도를 알아채는 순간, 그 문장을 만난 내 눈은 낭떠러지를 만난 물이 폭포수로 변하듯이 급히 물을 불리며 떨어질 낭떠러지를 찾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울었던 경우는 이 영화가 처음이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다.

영화 ‘지중해’에서 보고 기억했던 문장을 30년 가까이 마음에 품었다가 내 책 속에 담을 만큼 나는 도피와 낭만을 빼면 아무것도 없는 생을 살았다. 모든 도피주의자는 낭만주의자다. 내 인생을 돌리는 단 하나의 추는 낭만주의를 중심에 두고 데카당스(décadence, 관능주의)와 탐미주의를 좌우로 오가는 흔들림밖에 모른다.

도피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바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웃다 울다 하던 나는 끝을 알리는 엔딩 크레딧이 음악과 함께 올라올 때 만난 감독의 진심에 다시 한번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불이 환하게 켜지고 청소하려고 직원이 들어오고 나서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나왔다.

내가 ‘All-Star’ 편 마지막 페이지에 실었던 글은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실존의 가장 큰 수확과 즐거움을 실현하기 위한 비결은 위험하게 사는 것이다!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그대의 도시를 세워라!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미지의 바다로 그대의 배를 내보내라! 그대에 필적할 만한 자들과 그리고 그대들 자신과 투쟁하라! ... 우리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