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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충호 May 19. 2023

하얀 목련처럼, 붉은 동백처럼

Yesterday, 향수 & 가시나무

비틀즈의 ‘Yesterday’를 향해 쏟아진 찬사 중 최고봉은 아마 대중음악을 클래식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판일 것이다. 그 영역을 서양에서 한국의 대중음악 쪽으로 옮겨온다면 그 타이틀은 ‘향수’와 ‘가시나무’에게 주어져야 한다. 더 나아가 나는 단언한다, 가사의 우아함과 멜로디의 완벽한 조화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 둘은 ‘Yesterday’를 능가하고도 남는다고. 

아직 팬플룻 초보자인 나에게  ‘향수’는 떠나온 고향처럼 아득히 멀다. 하지만 타향 살이를 하면서도 늘 고향을 생각하듯이 나는 훗날 이 노래를 나의 연주 목록에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가시나무’기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연주의 대가로 노랫말의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삼켜야 한다. 반주 없이 팬플룻의 음빛깔만으로도 노랫말의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향수 

  

넓은 벌판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며 휘돌아 가는 실개천이 보이고, 

해가 질 때면 얼룩빼기 황소가 금빛 게으른 울음을 풀어 집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하고, 

질화로에 재가 식어가고 빈 밭에서 불어온 밤바람 소리에 놀란 말이 달릴 때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은 채 엷은 졸음과 씨름하고,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운 사내가 함부로 쏜 화살이 이슬진 풀밭 위로 날아가고, 

여동생의 귀밑머리가 바다 위로 춤추는 밤 물결 같이 흩날리며 전설을 들려주고,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진 발 벗은 아내가 이삭 줍고 

여러 모양으로 빛나는 별들이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는 사이 

초라한 지붕 아래에선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은 가족이 도란도란 거리는 곳.

    

흙에서 자란 시인이 백 년 전(1927) 그려낸 고향에 쉽게 돌아가지 못할 만큼 우리는 먼 길을 걸어와 버렸다. 불편과 부족을 이기고 닿을 수 있는 고향은 이제 무지개 저 너머에 있다.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과 고향에 대한 아련함을 저마다 가슴에, 혹은 생활공간에 흙빛 사진이나 그림의 형태로 걸어두고 아련하게 바라보며 달랠 뿐이다. 

한 편의 시가 그려낸 로망, 먼 곳에 대한 그리움에 명치를 얻어맞은 독자는 이 시를 품고 달리는 선율에 휘청거리다 주저앉게 된다. 무지개 저편에 다다랐을 때 우리의 심정이 그러지 않을까. 경험하지 못한 시대와 공간을 이토록 아름답게, 슬프게, 그리고 온전하게 전달해 준 시인과 작곡가의 조합이 또 있을까, 들을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는 노래다.  

             

#가시나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훗날 작곡가는 자신의 종교심과 관련한 갈등에서 떠오른 악상이었다고 밝혔다지만, 그 부분을 모른 채 덮고 가더라도 이 곡의 완성도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는다. 정체성이 들켰다고 생각한 일반인이 나뿐일까. 

어둠과 슬픔 속에서 부대끼며 울어대는 나로 인해 쉴 곳 없고, 편할 곳 없는 그대. 

가시에 찔려 어린 새처럼 날아간 그대.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는 나.    

    

#가시나무새(The Thorn Birds)


‘가시나무’는 유사한 제목과 노랫말의 내용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콜린 매컬로(Colleen McCullough)의 소설 (그리고 이를 드라마로 옮긴) ‘가시나무새(The Thorn Birds)’를 떠올리게 한다. 창작의 순서를 따진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가시나무’의 창작 동기와  ‘가시나무새(The Thorn Birds)’의 스토리를 연결해 보면 테마 음악으로 쓰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과 고뇌가 훑고 지나간 자리에 어둠의 그림자가 내릴 때, 

슬픔이 이슬방울처럼 떨어질 때 

하얀 목련처럼, 

붉은 동백처럼 

새 한 마리 툭, 

가시나무 숲에 떨어진다. 




내 속에 너무도 많은 나로 인해 수시로 길 잃고 헤맸지만 행복했습니다. 

내 속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때문에 외로움에 갇혔지만 행복했습니다. 

내 속에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때문에 아픈 노래만 불렀지만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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