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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충호 May 28. 2023

그 상처, 방황, 두려움, 황무지들을 잊어야 하리

하와이의 선율: Ike La Ladana & Queen’s Jubilee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즉위 50주년(Jubilee)을 기리기 위한 노래라고 하는데 당혹스럽다. 축하나 흥겨움 대신 슬픔과 애틋함과 애잔함이 가슴을 파고든다. 내 마음이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Ike La Ladana(Weldon Kekauoha)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여왕이었던 릴리우오칼라니(Queen Lili’uokalani, 1838-1917)가 작곡했다는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쓸쓸한 기분에 빠져드는 걸 피할 수 없다. 그 적적한 선율에 첫눈처럼 우아하고 벚꽃잎의 흩날림처럼 평화로운 #하와이안 훌라의 춤사위라도 곁들여지면 알 수 없는 아련한 감정은 통제 수위를 넘어 범람 위기를 맞는다.

     

동생이 죽고 난 뒤 그녀가 왕권을 물려받았을 때 이미 하와이 왕국은 미국의 정착민과 사탕수수 농장주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왕 즉위와 함께 군주제의 권력과 주권 재건을 위한 노력을 시도하자 이에 위기함을 느낀 미국은 쿠데타를 일으켜 여왕을 전복시키고, 민병대를 투입해 하와이를 점령한 후, 미국 영토로 합병해 버린다.


작곡하는 것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재능 있는 하쿠 멜레(음악 작곡가)였던 그녀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알로하 오에(Aloha ’Oe)’를 포함 150곡 이상을 남겼다고 한다.      

    



#Queen’s Jubilee(George Winston)


사랑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고, 기다림은 블랙홀을 닮았다.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해석은 사랑이 아니라 기다림을 생각하게 한다. 여름날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서 듣는 매미의 떼창이 아니라, 한겨울 벌거벗은 채로 찬바람을 견디는 나목을 지켜보는 외로운 눈빛을 연상케 한다.


기다리는 마음으로 쓴 누군가의 편지를 담은 유리병이 바람 한 점 없는 망망대해에 닿으면 이렇게 울렁거리지 않았을까. 지금은 외부에서 오는 희망의 불빛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망의 불빛도 없는 캄캄한 시간대이다. 급하고 강한 바람은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무풍지대를 항해하고 있는 것은 기다림뿐이다. 갈급함이나 조급함은 위험하기에 허락되지 않는다. 낮에는 사막의 고운 모래 물결을 상상하고 밤에는 반달이 흥건히 잠긴 밤바다 위로 쏟아지는 별빛의 희미한 위로에 만족하며 그 상처, 그 방황, 그 두려움과 그 삶의 황무지들을 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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