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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Feb 17. 2024

<샤를리는 누구인가?>

엠마뉘엘 토드 지음, 2016년 출간.


2015년에는 프랑스의 좌익성향 풍자 신문 <샤를리 엡도>를 덮친 테러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내가 샤를리다'라는 구호가 프랑스를 뒤덮었던 당시, 엠마뉘엘 토드는 테러 규탄 시위에 참여한 계층을 면밀히 분석한다. 


토드는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류학 분야에서 드물게 인구 통계를 적극 사용하는 학자이다. 가구원 수 숫자만 가지고 소비에트 붕괴 시점을 거의 맞추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치사회문화적 분석에 있어서 진보와 보수, 젠더와 노동, 환경 정도의 분류기준만 접하다가 이 책을 펼치면 흑백 텔레비전에서 3D 칼라텔레비전으로 옮겨온 느낌이 든다. 그만큼 토드의 분석기준은 편향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매우 심층적이고 스펙트럼이 넓다.  


(아쉽게도 이 책은 현대 프랑스의 정치 사회 지형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역주의 역할이 아쉬운 부분이다. 프랑스의 무종교 성향을 분석하는 개념틀인 '좀비 카톨릭'에 대한 설명도 역주가 필요해 보인다.)


이 책에서 토드는 이슬람에 대한 설명을 부가한다. 통념보다 이슬람은 평등을 지향한다는 것인데, 여성의 지위는 논외지만 남성들 간의 지위는 의외로 평등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대개 태어나자마자 사촌끼리 결혼하는 이슬람권은 아버지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작다. 그래서 형제들은 서로 평등한 관계에 놓인다. 문제는 이러한 평등한 관계가 분쟁을 일으키기 쉽다는 것이고, 보편을 지향하거나 적어도 지향한다고 믿는 프랑스의 독특한 풍토는 이와 충돌하기 좋다.


"형제들이 평등하면 사람들도 평등하고 민족들도 평등하다(180쪽). (중략) 평등주의 '선입견'이 유발하는 논리적 결과를 끝까지 따라가 보기로 하자. 말하자면, '인간들은 어디서든지 같다. 그런데 우리 땅에 들어온 이방인들이 정말로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들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논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181쪽)


평등과 보편의 지향이 오히려 차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토드는 카톨릭에 대한 향수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을수록 샤를리 시위 참여도가 적다는 것도 지적한다. 한마디로 내 종교가 중요하면, 남의 종교도 그만큼 존중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카톨릭, 개신교, 이슬람은 야훼라는 같은 신을 모신다) 종교에 대한 중요도와 관심도가 떨어질수록 샤를리 시위 참여도는 높아진다. 토드는 이제 신성모독은 현대 프랑스인의 권리이자 필수 의무가 되었다고 풍자한다. 남의 신을 모독하는 일은 이제 취향이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하면서 자신이 현대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의 증명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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