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참 다양한 관계들이 생긴다. 어떤 이는 인사만 나눈 스침으로 남고, 어떤 이는 자주 마주치며 익숙해진다. 또 어떤 이는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마음을 나누는 각별한 존재로 자리 잡기도 한다. 이처럼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결로 확장된다.
하지만 관계가 확장될수록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의 깊이도 함께 커진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얽혀 있는 삶은 때때로 감정의 소용돌이처럼 느껴진다. 사람 사이의 파도에 휘청이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이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이 온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인위적으로라도 관계의 폭을 줄이려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선택인 셈이다.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나를 누군가는 차갑다, 미성숙하다 느낄지 몰라도,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작은 방패 같은 것이었다.
특히 예전에 각별했던 사람과 멀어지는 결정을 할 때면 고민이 많아진다. 이게 과연 내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닌지,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는 건 아닌지 자책하기도 한다. 상대에게 상처를 준 건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때론 내가 과하게 예민한 건지, 아니면 진짜 그만큼 내 마음이 다친 건지 헷갈린다. 기분 나쁘지 않아도 될 일에 왜 자꾸 마음이 쓰이는지, 그 감정이 정당한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마음속에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자꾸 고개를 든다.
시간이 지나도 그런 감정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어진다. 때로는 불편함이 증오로 변하기도 한다. 그 사람이 밉다기보다는, 그 사람과 엮이는 나의 변화되는 감정이 싫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근황을 알게 되는 것조차 꺼려지게 됐나.
결국 차단이라는 행동까지 하게 된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건 단순히 관계를 ‘끊음’이 아니라 ‘피함’이었다. 내가 그 사람을 더 증오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 마음을 더 다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최소한의 방어기제였다. 하지만 피한다고 사라지는 감정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른다. 그 시절, 함께 웃고 울던 기억들이. 지금은 멀어졌더라도, 그 시간은 참 따뜻했다. 그 인연이 ‘시절인연’이었을지라도, 그 시절에 나와 함께해 준 그 사람들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그들의 존재 덕분에 내 스물여섯 짧지만 순간순간이 빛날 수 있었을테니까.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 잊히더라도, 또는 정리되더라도 불편한 기억이 아니라 좋은 추억으로 남는 사람. 떠나간 인연들이 나를 떠올릴 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관계는 끝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끝이 아닐걸 안다.
그래서 이제는 멀어짐에도 감사하려 한다. 모든 관계가 영원하지는 않지만, 모든 인연은 나를 조금씩 성장하게 했다. 지금은 내 곁에 없더라도, 그 시절 함께했던 친구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그들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 그걸 잊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