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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의 노동 단가를 재조정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것은 솔직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 않나.

이제 논의의 초점은 대체 여부가 아니라, 가격의 문제, 즉 인간 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어떻게 재편되는가에 있다. AI는 단순한 자동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생산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존재로 등장했다.


기계가 산업혁명 당시 육체노동의 단가를 떨어뜨렸다면,

AI는 정신노동과 창의노동의 단가를 낮추고 있다.


즉, 인간의 GDP가 기술적 효율성 앞에서 체계적으로 디플레이션되고 있는 것이다. 왜 다들 본인의 GDP가 떨어질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가. 창의성이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낡은 믿음은 이미 붕괴됐다.


AI는 작곡, 디자인, 마케팅, 카피라이팅, 법률 문서 작성, 영상 편집 등

‘인간의 감정과 직관’을 전제로 하던 영역까지 신속하게 침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변화는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논리로 작동한다.


AI는 사람보다 빠르고, 저렴하며,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계약 분쟁이나 조직 내 갈등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 결과, 기업이 사람을 고용해야 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AI의 등장은 곧 인간 노동 단가의 하락을 의미한다.

시간당 임금, 경험의 축적, 숙련도의 가치가 더 이상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되지 못한다.


대신 시장은 이제 AI 대비 인간의 비효율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한다.

이 변화는 산업의 하위층부터 상위 전문직까지, 모든 직군의 소득 분포를 평탄화하며 일종의 인간 ‘프리미엄 가치’를 붕괴시키고 있다.


이제 경력의 깊이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와 전환 능력,

즉 기술 변화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새로운 도구를 얼마나 빨리 내재화하느냐이다.


AI 이후의 사회에서 부유해지는 사람은 단순히 높은 지능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젊어서 태생적으로 민첩한 자들이다.


기술을 불안으로 대하지 않고,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스스로 장악하며,

스스로의 직업 정의를 빠르게 업데이트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의 직업에 정착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의 역할로 고정시키지 않고,

AI의 속도에 맞춰 유연하게 변신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재정의한다.

이 시대의 전문가란 오히려 자신의 전문성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다시 조립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반면, 성실하고 착실하게 한 길을 걸어온 어른들은

시장의 변화 속도와 기술적 진보의 곡선을 감당하지 못한 채

서서히 도태된다.


그들의 몰락은 실패가 아니라 점진적 소멸에 가깝다.

그들은 경쟁에서 밀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을 뿐이다.


‘성실함’이라는 덕목이 더 이상 생존의 보증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는 인간의 적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정한 경쟁자이기도 하다.


감정이 없고, 피로하지 않으며, 배신하지 않는다.

그 단순한 특성만으로도 이미 인간보다 우월한 효율성을 갖춘다.

문제는 이 효율성이 인간의 노동 가치를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재조정한다는 데 있다.


AI는 인간을 몰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설 자리를 점점 더 값싼 구조로 옮겨놓고 있다.


이 시대의 진짜 잔혹함은

AI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격표를 점점 싸게 만들어간다는 사실이다.


AI는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인류 경제의 재가격화(Repricing)과정이다.


결국 부를 축적하는 사람은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AI의 속도를 자신의 속도로 전환시키는 사람이다.

그들은 단순히 새로운 도구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의 진화를 자기의 언어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다.


AI는 노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노동력을 가장 싸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의 경쟁력은 깊이의 축적이 아니라, 전환의 민첩성이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 경제의 기준을 다시 쓰는 존재다.

문제는 그 새로운 기준에서 너는 가격표의 어느 쪽에 설 것이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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