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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경영 회고

도대체 주주 업데이트를 왜 써야할까


창업 당시 아무도 나에게 투자자 업데이트를 쓰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몰랐다. 19살, 첫 회사를 세웠을 때 나는 경영이란 ‘성과를 보여주는 일’이라고만 믿었다.


투자자에게 예쁜 지표를 보여줘야만 신뢰를 얻을 수 있고, 힘든 현실은 가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땐 잘하고 싶었지만, 몰랐다. 어떻게 솔직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결국 그 무지와 미숙함이 회사를 당시 무너뜨렸다.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 도움을 받기는커녕, 결국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 처절하게 억울했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그건 내 업보였다.


배운 적이 없어도, 모른다고 해도, 결국 책임은 내 몫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걸 몰랐고, 그래서 더 아팠다.

하지만 그 아픔 덕분에 한 가지는 분명히 배웠다.

숨기면 신뢰를 잃고, 신뢰를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그때 이후로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숨기지 않겠다고.

그래서 2020년 4월부터 지금까지 빠짐없이 주주 업데이트를 써왔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보고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것은 거의 매달 한 번씩 회사의 재무제표를 새로 쓰는 일에 가깝다. 매출, 판매관리비, 통장에 남은 현금, 대출 잔액, 세금 납부 일정, 다음 달 예상 현금 흐름까지 — 숨김없이 적는다.


어떤 달은 숫자가 너무 작아 부끄럽고, 어떤 달은 마이너스가 빨갛게 도드라져 눈을 찌른다. 그래도 쓴다. 그게 내가 배운 경영의 기본이다.


기업의 신뢰는 ‘좋은 숫자’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 숫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숨기지 않는 정직함에서 온다. 나는 주주를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함께 회사를 경영하는 동료로 여긴다.


그래서 매달 업데이트를 쓸 때면 먼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번 달 업데이트를 읽는 주주가, 우리 회사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나의 방향을 정한다.


그때부터 글은 보고서가 아니라, 신뢰를 나누는 편지가 된다.

그래서 힘들면 힘들다고, 막히면 막혔다고, 심지어 “이번 달은 정말 망할 수도 있겠다”는 문장까지 쓴다. 이건 자책이 아니라 진심이다.


신뢰는 완벽함에서 생기지 않는다.

신뢰는 불안한 진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에서 자란다.


나는 스타트업의 경영을 ‘신뢰의 경제’라고 부르고 싶다. 제품이 완벽하지 않아도, 시장이 불완전해도, 신뢰만 있다면 버틸 수 있다.


다만 그 신뢰는 ‘피곤할 만큼의 투명함’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주주 업데이트를 준비하는 한 달은 작은 결산기와 같다.

경영지원팀은 재무 데이터를 다시 정리하고, 세무사는 잔액을 검토하고, 나는 회계 항목 하나하나를 직접 확인한다.


모두가 귀찮아한다.

하지만 그 귀찮음이 회사를 지탱한다.

피곤할 정도로 투명해야만 얻을 수 있는 신뢰가 있다.

숫자보다 더 큰 자산은 결국 그 신뢰다.


창업가는 언제나 초보다.

몇 번째 회사를 만들든, 매번 처음처럼 서툴다.

그래서 실수하고, 오판하고, 때로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마. 하지만 했다면, 숨기지 말고 욕먹고 공개해.”

숨기면 죄가 되고, 공개하면 교훈이 된다.

욕을 먹을지언정 신뢰는 남는다.


그 신뢰가 남으면, 언젠가 사람들은 다시 돕는다.

나는 그걸 여러 번의 위기 속에서, 정말로 체험하며 배웠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돈만 투자받는 구조’를 피했다.

어웨이크코퍼레이션의 주주 대부분은 단순한 자금 공급자가 아니다.

제품, 기술, 경영, 마케팅, 재무 등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자, 내가 약한 부분을 메워주는 선배들이다.


그들의 도움으로 회사는 단순히 성장한 게 아니라, 올바르게 자라났다.

돈보다 지식이 흐르고, 조언보다 신뢰가 쌓인다.

이건 단순한 투자 구조가 아니라, 일종의 공동 경영의 형태다.

나는 그 속에서 회사를 지키는 법뿐 아니라, 사람을 믿는 법을 배웠다.


돌아보면 지난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가 회사를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선배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어려울 때 등을 돌리지 않았고, 잘될 때 자만하지 못히게 했다.


그 신뢰가 회사를, 그리고 나를 지탱한다.

그래서 나는 매달 주주 업데이트를 쓴다.


그건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고백문이다.

어쩌면 내 안의 두려움과 교만을 매달 벗겨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쓸 때마다 늘 같은 질문을 남긴다.

“이번 달의 나는 정직했는가?”

그 질문에 부끄럽지 않게 답할 수 있는 한,

나는 아직 살아있는 창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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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minjoon/234

이 글은 2021년에 쓴 글이고, 주주 업데이트를 어떻게 쓰는지 버전 1이 담겨있다. 이 정도만 써도 충분할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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