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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Sep 05. 2021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당신의 기대일 뿐.

장애와 감사, 그 역설적인 관계

 우리는 기대(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림)한다. 내가 밥을 먹을 수 있기를, 숨을 쉴 수 있기를, 잠을 잘 수 있기를, 걷고 뛰어다닐 수 있기를,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들을 기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말들은 자주 할 것이다.     


“밥 먹는 것은 누구나 하는 거지.”

“숨은 자연스럽게 쉬는 거지.”

“밤이 되면 당연히 자는 거지.”

“사람은 두 발로 걷고 뛰는 것은 당연하지”

“성인이 되면 스스로 밥벌이를 해야 하지.”     


 그저 당위성(마땅히 그렇게 하거나 되어야 하는 성질)으로, 해야 한다는 말로, 기대를 대신한다. 아, 혹시 이것들이 당연하게 보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로 축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그런 당신이 부럽다.) 이 세상에는 이것들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당신과 먼 세상일 수도, 몸 담고 있는 세상일 수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위와 같은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아마 ‘장애(활동을 하는 데 한계가 있거나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가진 이’라는 것이다. 남들에게 쉬운 것이, 누군가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익혀 온 것을, 나만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좌절감을 느낄지 상상이 가는가? 상상이 어렵다면, 우리는 장애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경험해볼 수 있다.     


 당신이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으로, 왼손잡이라면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두 팔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많이 갑갑할 것이다. 다 아는 것인데도 어색할 것이며,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손이 버벅댈 것이다. 느려진 자기 자신을 보며 화가 나기도 할 것이고,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주로 사용하던 손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불편해서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면 책을 덮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앞으로의 글들은 당신을 더더욱 불편하게 할 것이다.) 즉,     


 팔을 다쳤다면 밥을 먹는 것이 힘들 것이고,

 호흡기를 다쳤다면 숨을 쉬는 것이 불편할 것이고,

 누워있는 것이 힘든 사람에게는 잠을 잘 수 없을 것이고,

 다리를 다친 사람은 걷거나 뛰는데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모든 것을 다시 해나가야 한다. 새로운 몸에 맞춰서. 장애의 세계에서 -신체적인 장애든, 정신적인 장애든- 우리는 수백 번의 경험을 다시 해나가야 한다. 다시 태어난 것처럼. 그 과정은 좌절의 연속이다. 살면서 끝없는 좌절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인간이 장애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이유는 어쩌면 좌절하기 싫어서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오른손잡이에서 왼손잡이로, 왼손만으로도 타자를 치는 방법을 익혔다. 그렇게 초등학교 때는 일기를,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대학교 때는 리포트를 작성할 수 있었다. (참고로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른팔을 다쳐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존재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 이미 아는 것을, 경험했던 것을 새로이 다시 배우는 것이 더 어렵다. 우리 모두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학습’보다 ‘복습’이 더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못 했을 때의 좌절과 답답함, 자기 비난이 더 심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왜 못하냐는 말소리를 스스로 내뱉고 있다. 그렇게 불행의 굴레에 빠져들게 된다. 장애인이 불행에 자신의 장애를 탓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끝없는 좌절 속에 계속되는 불행만이 존재한다.     


 불행함에서 벗어난다면, 할 수 있었던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얻는 이점이 있다. 세상 모든 일 중에 당연한 것은 없음을 아는 사람들만이 세상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된다. 그들은 수많은 좌절을 다시 경험하게 한 일을 다시 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다시 할 수 없어도 다른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살아가는 일 중 쉬운 일이 없음을 깨닫는다.


 장애를 얻게 된 당시, 필자의 경우에는 두 팔을 쓰는 것을 가장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왜냐하면 두 팔을 쓰지 못함에 슬퍼하고, 두 팔을 쓸 수 없어 큰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가장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이지 않을까? 그것을 떼어놓고는 당신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하다고 믿고 싶은 것만이 존재한다. 어쩌면 당위는 ‘마땅히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정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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