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부 여행 01. 세비야 - 스페인 광장에서 야경을!
둘째 날에는 세비야에서 꼭 봐야 할 관광지를 꼼꼼하게 살펴보며 저녁에 광장에서 야경 보는 일정을 세웠다. 숙소의 위치가 메인 관광지 쪽과 조금 거리가 있어서 15분 정도 걸어가야 했는데 그 덕분에 세비야 골목을 탐방하며 다니느라 즐거웠다. 오후의 더위 때문에 아침 일찍 나와 사람이 많이 없었는데 어제 보았던 하까란다 꽃이 땅에 우수수 떨어져 있어 거리 풍경이 낭만적이었다. 이 날은 다행히도 첫날보다는 날씨가 덜 더웠기 때문에 걸어 다닐만했다. 세비야는 말과 마차가 굉장히 많아 걸어 다니다 보면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나 손님을 태우고 달리는 마차를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이 더위에 말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타보지는 않았지만 경험자들로부터 좋은 후기를 많이 들어서 관심있다면 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대성당(Catedral de Sevilla)과 히랄다 탑(La Giralda)
첫 번째 일정은 구시가의 랜드마크인 대성당(Catedral de Sevilla)과 히랄다 탑(La Giralda)을 가는 것이었다. 이미 예매를 해 두었기 때문에 티켓 산 사람들의 줄을 찾아야 했는데 줄이 많아 약간 헤맸다. 대성당과 히랄다 탑은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투어를 했는데, 기독교와 무슬림의 합작품이라는 게 흥미로웠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에 성당의 외관은 고딕 양식을, 내부에서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도 확인할 수 있었다. 건설 시기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당시 유행하던 건축 양식을 하나의 건축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대성당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어 둘러보다가 지쳐서 중간중간 앉아서 쉬면서 다녔다. 제일 먼저 들어간 히랄다 탑은 대성당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탑이라고 하여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을 생각했는데 히랄다 탑은 특이하게도 계단이 아니라 오르막길로 되어있었다. 이유는 당시에 왕이 말을 타고 편하게 올라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32층으로 이루어진 히랄다 탑 꼭대기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전망대를 통해 세비야의 전경이 장관이었다.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히랄다 탑 정상에는 "히랄디요"라고 불리는 조각상이 있는데, 히랄디요는 스페인어로 "히랄다"라고 하는 풍향계를 귀엽게 부르는 명칭이라고 한다.
이후부터는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대성당 내부에서 포인트가 될 만한 곳들을 관람하며 다녔다. 대성당에 대한 내 첫 느낌은 '웅장하고 거대하다'였다. 사그라다는 포근한 느낌을 주로 받았었는데 이곳은 크기도 컸지만 다양한 조각들과 작품들, 성물로 가득해서 대단해 보였다. 대성당 내부에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콜럼버스의 묘였다. 그의 유골이 진짜 있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했고 관의 형상이 특이했는데 관이 공중에 떠있고 그 관을 4명의 사람 조각이 들고 있는 형태였다.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의 국왕들이라고 한다. 콜럼버스의 유언이 "스페인의 땅을 밟지 않게 해 달라, 신대륙에 묻어달라"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국왕들이 들고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 외에도 참사 회의실이나 성가대석, 은제단 등 볼거리가 넘쳐나서 대성당에서 3시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알카사르(Real Alcázar de Sevilla)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대성당을 마주하고 있는 알카사르로 향했다. 예전에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 궁전에 간 적 있었기 때문에 알카사르의 느낌을 예상할 수 있었다. 입구인 사자의 문(Puerta del León)을 들어서면 잘 정돈된 조용하고 평화로운 파티오(안뜰)가 보인다. 알함브라 궁전을 모델로 완성한 곳이라서 그런지 알함브라가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궁 안 곳곳에 정원들이 많고 쉴 수 있는 곳들이 많아 휴식을 취하며 감상하고 여유롭게 보냈다.
산타 크루스 지구(Barrio de Santa Cruz)
대성당과 알카사르 근처에는 산타 크루스라고 불리는 구시가지가 있다. 엣 유대인 거주지로 작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엮인 곳이다. 입구가 마치 동굴처럼 되어 있어 이상한 나라로 모험을 떠나는 느낌을 주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Vida, Muerta, Agua 등 독특한 이름의 골목들이었다. Vida는 삶, Muerta는 죽음이라는 뜻인데 당시에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이 두 골목으로 나뉘어 도망쳤다고 한다. Vida로 도망친 유대인들은 세비야 중심지로 들어갈 수 있어서 살았고 Muerta로 도망친 유대인들은 결국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의 골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당시 실제 살아가던 사람들의 히스토리를 곱씹으며 감상할 때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 같아 한 번 더 눈길이 가고 기억에 남는다. 이 외에도 좁은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들이 많고 집집마다 정성스레 꾸며둔 파티오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렀다.
오후에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세비야 대학과 황금의 탑, 마리아 루이사 공원을 둘러보며 한가롭게 보냈다. 세비야에서는 총 4박을 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구경하며 다니다 보니 짧은 일정인 것 같다. 오후에는 또 더위 때문에 제대로 관광을 하지 못하니 말이다. 나중에 론다 가이드님께 세비야를 관광하기 가장 좋은 때가 언제냐고 여쭤보니 11~1월이 가을 날씨라서 돌아다니기 좋은 날씨라고 하셨다. 물가도 바르셀로나에 비해 싼 편이기 때문에 나중에 스페인어 공부를 하러 오거나, 한 달 살이를 하게 된다면 세비야로 와보고 싶다.
저녁에는 드디어 기다리던 일몰과 야경을 보기 위해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예쁘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기대감이 한껏 올라간 상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마침 광장 안에서 어떤 사람이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소리가 건물 내부에서 울려 더 감미롭게 들렸고 공간과 잘 어울리는 멜로디 덕분에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어두워져 가는 하늘 아래에서 하나 둘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광장의 가로등을 건물 2층에서 바라봤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 세비야에서 저녁에 간 레스토랑을 꼭 언급하고 싶다. 세비야에서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던 레스토랑이다. 유명한 식당인지 웨이팅이 좀 있긴 했는데 기다릴만하다! 나는 바 자리로 안내받았는데 덕분에 직원들과 눈인사나 간단한 스몰토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식당 이름은 La Brunilda Tapas.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한번 더 가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근교 여행으로 가지 못했다. 다음번 세비야 여행에서 꼭 다시 와보고 싶다.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느낀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만족으로 작성하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