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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die Kim May 29. 2023

바르셀로나에서 두 달 살기 #20

스페인 남부 여행 02. 협곡 위의 도시 "론다"와 하얀마을 "사하라"



스페인 남부로 여행을 간다면 꼭 가보고 싶었던 소도시가 있었다. 바로 깊은 계곡 위에 세워진 다리와 그 주위의 건축물들이 장관을 이루는 도시 "론다(Ronda)"다. 스페인 관련 여행 정보를 찾다가 알게 된 도시라서 방송에 나왔던 도시인지 몰랐는데, 꽃할배에서 나왔던 곳이라고 한다. 다리 위에서 보는 야경이 신비롭다고 해서 하루를 묵을지, 당일치기로 할지 고민하다가 세비야에서 투어로 가는 상품을 발견하게 되어 당일치기로 편히 다녀오기로 했다. 내가 가는 투어는 론다에 가기 전에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사하라(Zahara de la Sierra)"에 잠시 들려 구경했다가 가는 일정이었다. 혼자 가는 근교 여행이었다면 사하라까지는 못 갔을 텐데 이 기회에 다녀올 수 있어서 괜찮은 일정인 것 같았다.


투어 당일,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아침에 집합 장소에 가니 나밖에 없어서 시간을 착각했는지 또는 위치를 잘 못 찾은 건지 우왕좌왕 거렸는데 알고 보니 그날 신청한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어쩌다 보니 프라이빗 투어가 돼버리고 말았다. 원래는 최소 3인 이하면 투어가 취소되는데 투어 전날 밤에 어떤 가족이 갑작스레 투어를 취소하게 되었고 공지하기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냥 투어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인 가이드님과 현지 가이드님, 그리고 나. 처음에는 차 안에서 어색해서 너무 숨막힐 것 같았는데 어색함을 풀려고 스몰토크도 많이 해주시고 스페인 생활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많이 말씀해 주셔서 괜찮았다. 생각지도 못한 장점은 나밖에 없다 보니 사진 스팟도 많이 알려주시고 스팟에서 내 사진을 정말 엄청 찍어주셔서 오히려 좋았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예쁜 하얀 마을 사하라(Zahara de la sierra)

올리브 나무와 아몬드 나무, 해바라기 밭을 구경하다 보면 금세 사하라에 도착한다. 작은 시골 마을같아 보이지만 학교도 있고 작은 병원도 있고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곳이며 세비야에서 자전거 투어로 왔다가 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등산로까지 올라가지는 않았고 호수 전경이 잘 보일 수 있는 전망대 같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했는데 커다란 호수와 그 주위를 감싸는 산 봉우리, 작고 귀여운 올리브 나무들, 그 사이에 보이는 하얀마을의 조화가 인상 깊었다. 사진으로 꼭 남기고 싶었는데 사진으로는 역시 그 느낌이 다 담기지 않아 눈으로 감상하기 바빴다. 사실은 호수지가 아니라 저수지인데 호수라고 불리는 거라는 설명을 듣긴 했지만 아무렴 어떠냐 싶다. 이렇게 예쁜데. 마을이 정말 작기 때문에 넉넉하게 1시간 반 정도면 금방 둘러볼 수 있다.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작은 상점들도 구경하고 마그넷도 샀다. 혼자라서 그런지 가이드님이 계속 신경을 써주셔서 덕분에 편하게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전날 세비야에서 하루종일 돌아다니기도 했고 세비야 올 때부터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로가 좀 쌓여있었는데 이렇게 지쳐있을 때 오면 너무 힐링되는 곳이다.

전망대 위에서 본 하얀마을 사하라
푸른 호수와 하얀 마을, 그리고 나

 


협곡 위에 우뚝 선 도시 론다(Ronda)

사하라 마을에서 잠시 쉬고 우리 투어의 메인인 론다로 향했다. 사하라에서 1시간 정도 더 이동한 후에야 도착했던 것 같다. 론다의 가장 큰 매력은 구시가와 누에보 다리(Puente Nuevo). 말 그대로 누에보 다리는 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누에보 다리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누에보 다리는 구시가와 신시가를 이어주는 다리로 론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협곡 위의 다리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협곡은 아찔할 정도로 높고 깊다. 직접 보니 왜 이 풍광이 유명한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다리도 신기하고 멋지지만 다리 주위에 우뚝 선 건물들이 더 신기했다. 어떻게 여기에 건물을 지을 수가 있는지,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살 수가 있는지. 흥미로운 점은 다리 한가운데에 문이 있는데 옛날에 그곳에 죄수를 가둬놨다고 한다. 탈옥은 꿈도 못 꿀 높은 곳에 혼자 갇혀있거나 나와서 탈옥을 시도하다 떨어지거나 선택은 둘 중 하나밖에 못하는 감옥이라고 한다. 다리 위에서 협곡을 구경을 하다 다리가 중심인 전경을 보기 위해 다시 걸었다. 다리를 건너기 전 왼쪽으로 내려가면 유명한 뷰 포인트가 나온다. 그곳에서 한껏 사진 찍고 구경하고 시간을 보내며 난간에 앉아 협곡 아래를 또 구경했다. 시간이 많았다면 누에보 다리가 만들어지기 전 구시가와 신시가를 이어주던 비에호 다리(Puente Viejo)에도 가보고 아랍 목욕탕에도 가봤을 텐데 당일치기라 가보지 못해서 아쉽다.

구시가와 신시가를 이어주는 협곡 위 누에보 다리


한참을 풍경에 빠져 멍하니 감상하다 보니 점심즈음이 되어 가이드 일행과 헤어져 자유시간을 가졌다. 가이드님이 추천해 준 식당에 가서 론다에서 유명한 소꼬리찜과 화이트 와인을 먹었는데 갈비찜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내 입맛에는 우리나라 갈비찜이 좀 더 단 것 같고 론다의 소꼬리찜은 달지는 않고 담백했다. 소꼬리찜은 처음 먹어봤는데 고기가 너무 부드러워서 맛있었다. 함께 마신 화이트 와인도 잘 어울렸고. 일하시는 종업원 아저씨가 되게 친절하시고 위트 있으신 분이었다는 게 기억난다. 농담도 잘하시고 식후에는 달고 맛있다며 마셔보라고 식후주를 주셨다. 무슨 술이냐고 물어보니 술 이름은 안 알려주고 맛있으니 빨리 마셔보라고 해서 과일주정도로 추측하고 마셨다. 직원말대로 정말 맛있고 너무 취향이라 너무 맛있다고 하니 웃으며 한 잔 더 주셨다. 분위기도 깔끔하고 음식도 맛있어서 이 글을 보는 분들 중에 나중에 론다에 간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너무 친절하고 유쾌해서 기분이 좋았다.


+ 나중에 검색해서 찾아봤는데 왠지 오루호(Orujo)라는 술일 것 같다. 색깔도 비슷하고 이것도 식후주라고 해서 맞을 것 같긴 한데 확실하지는 않다.

소꼬리찜과 식후주


시간 여유가 있어 길거리를 활보하며 구시가를 구경했다. 론다도 작은 시골 마을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구경하는 내내 평화로운 안정감을 받았다. 여행기에는 쓰지 않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챌린지 중이었던 1일 1 젤라또 챌린지를 위해 론다에서 유명한 젤라또 집에서 젤라또를 사 먹으며 투우장을 찾았다. 정보 없이 왔기 때문에 론다가 투우로 유명한 도시인지 몰랐다. 스페인에서 만든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있는데 거리 한가운데에 하얀색의 둥근 외벽의 건물과 그 앞에 소 동상이 있기 때문에 찾는 게 어렵지 않다. 내부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투우장 앞에 근대 투우의 창시자인 프란시스코 로메로와 스타 투우사들의 얼굴과 이름이 바닥에 세겨져 있는 공원을 보며 론다의 투우에 대한 관심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당황스러웠던 점은 투우가 굉장히 잔인한 경기라는 것이다. 소와 사람의 싸움이고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나는 경기라는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경기 룰에 대해 설명을 듣다 보니 너무 잔인한 고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론다의 투우장
햇볕을 즐기는 거리의 까만 고양이들


론다를 걷다 보니 어느새 세비야로 돌아갈 때가 되어 차에 올랐다. 사실 다리 전경 외에는 하루 머무를 정도로 볼 게 많을까 싶었는데 이쯤 되니 후회된다. 한국에서는 야경에 크게 감동받은 적이 없어서 스페인 여행에서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론다의 야경이 너무 궁금했다. 1박을 할 걸 그랬다. 아직 못 가본 곳도 많은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이드님한테 아쉽다고 징징거리며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한 잠자고 나니 세비야에 도착해 있었다. 덕분에 안전하고 편하게 여행하면 론다와 사하라의 명소들을 알차게 다녀온 것 같아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Puerta Grande 푸에르타 그란데
- 소꼬리찜이 유명한 식당
- 위치 : C. Nueva, 10, 29400 Ronda, Málaga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느낀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만족으로 작성하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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